뽀모도로 타이머와 함께 집중하기
내가 존경하는 인물 중 원탑인 세종대왕이 행했던 정책 중 '사가독서'라는 것이 있다. '임금이 내려준 독서 휴가'라는 뜻으로, 뛰어난 관료나 젊은 선비들이 유급으로(!!) 학문과 연구에 집중할 시간을 갖는 걸 의미한다. (보통 1년 전후)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핵심인데 관리들이 업무에 치여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만든 제도라고 하니, 멀리 내다보면서 현실적인 제도를 마련한 세종대왕의 혜안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비록 무급의 육아 휴직 중이지만, 그래도 이번 해를 '내 인생의 셀프 사가독서 기간'으로 삼고 있다. (지금은 남편이 버는 돈으로 다섯 식구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니 남편에게도 언젠가 이런 시간을 꼭 주고 싶다.)
그런데 막상 휴직을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집안일도 은근히 많고, 저녁에는 아이들의 집공부로 내 공부에는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고요엘 작가님의 『독학력』이라는 책을 읽고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새롭게 세팅했다.
『독학력』정리 노트 중 일부를 옮긴다.
독학의 반대는 협학이 아니라 무학이다. - 여러 사람들이 쓴다는 방법론, 유튜브 강의와 커뮤니티를 브라우징 하거나, 자료들을 스크랩만 해 두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피상적인 공부는 공부를 하지 않는 '무학'과 같다.
가장 많이 생각하면서도 가장 안 할 수 있는 것이 공부다. - 공부가 안 될 때는 5분만이라도 하는 게 좋다.
삶에는 실전보다 공부의 순간이 더 많다. 공부를 할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공부하고 있는가?”
실제로 공부라는 걸 하기 위해 뽀모도로 시간 관리법을 써 보기로 했다. 뽀모도로는 '토마토'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인데, 이 시간 관리법을 만든 프란체스코 시릴로가 토마토 모양의 요리용 타이머로 공부 시간을 쟀던 데서 이름이 붙었다. 뽀모도로, 뽀모도로 - 소리에서 귀여운 느낌이 난다.
뽀모도로 시간 관리법은 간단하다. 25분간 집중하고, 5분을 쉬는 것이다. 이게 한 세트다. 4세트를 반복한 후에는 30분 정도 길게 쉰다.
무소음 뽀모도로 타이머도 검색해서 구입했다. 토마토 모양의 타이머는 없어서 아쉬웠다. 아이들이 쓰는 다이소 타이머보다 시각적으로는 좋지만 중간에 멈출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멈춤 없이 집중한다는 의미를 살리려고 하는 것이니 선뜻 구입했다.
막상 뽀모도로 타이머로 공부를 해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다만 저녁 시간에는 아이들이 말을 시키거나 갑자기 도움을 줘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는 데, 이때 타이머를 멈출 수 없고, 원칙적으로는 집중이 깨지는 것이다. 하지만 타이머가 흘러가게 두고 잠깐씩 아이들의 필요에 응답한 후 다시 집중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공부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우선 하루의 첫 뽀모도로를 기도로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30분 정도 기도시간을 갖는 것이 다른 시간대보다 더 집중하기 좋다. 그러고 나서 화상 영어 수업에 1 뽀모도로. 운동에 2 뽀모도로 정도 쓴다.
이 외에는 철학책 읽기, 영어 공부, 일본어 공부, 브런치 글 읽기, 브런치 글 쓰기, 신문 읽기, 경제 책 읽기, 교육 관련 책 읽기, 역사책 읽기 등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각종 공부를 뽀모도로 타이머와 함께 집중해서 하고 있다.
친구 엄마가 둘째에게 “엄마 휴직하고 잘 쉬고 계셔?”라고 물었다고 한다. 둘째는 “저희 엄마 새벽에 기도하고 운동하고, 매일 영어 공부하고, 책 읽고 엄청 바빠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다 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부지런하고 성실한 것은 아이들에게 이런 점을 물려주고 싶다거나 교육적인 차원에서 시전 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는 늘 이런 엄마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도 비슷하게 살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나의 이 부지런함의 기원은 어릴 적 부족했던 지원 환경과 결핍, 그것을 채우려는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의 나는 예전에 비해서 한결 널널하다. 초등 고학년 무렵부터 배우고 싶은 것도,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가정 경제가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늘 노력해야 했다. 작은 것 하나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엄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기본적인 욕구는 채워졌지만, 성취와 자아실현의 욕구에 늘 목말랐다. 그러나 집안 형편 상 의식주 이외의 돈 - 책을 살 돈이나 음악회에 갈 돈,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에 대한 돈(재봉틀 사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 재봉틀도 길에서 주워서 낑낑거리며 들고 온 것이었지만) 등을 마련하기 위해 늘 요리조리 궁리를 해야 했던 것이다. 그 돈 만들 궁리를 위해서 용돈 기입장도 썼고, 저축도 했지만 말이다. (지금도 가계부를 늘 작성한다.)
일찍부터 원하는 삶을 개척해야 했던 습관 때문에 지금도 늘어져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한다. 자녀를 위해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며 저축하는 엄마를 보며 자란 영향도 크다. 바쁘게, 열심히 사는 것은 자신 있지만 쉬엄쉬엄 살아가는 건 여전히 어렵다. 물론 이런 습성은 사회생활에서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은 한계가 있어, 결국 나는 번아웃을 심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번아웃을 겪으면서 왜 이렇게 쉼 없이 살아왔는지 오래 고민했다. 긴 시간 상담도 받았다.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내면뿐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사회 구조도 있었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늘 더 유능한 부속품이 되려고 애쓴 건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편안하게 살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달래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지런한 내 모습도 긍정적으로 받이들이려고 한다. 일종의 자기 화해다. 평일 중 4일은 마음껏(?) 부지런하게 살고, 하루쯤은 친구, 부모님을 만나거나 가볍게 책을 읽으며 뽀모도로 없는 날을 갖는다. 휴직이든 무직이든 어차피 이번 생에서 게으르게 사는 삶은 틀린 것 같다. 대신 부지런한 날들 속에 정기적으로 게으른 날을 하루 끼워 넣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지런함조차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단순한 진리의 길 위에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어느덧 연말을 신경 쓰게 되는 10월. 아이들이 겨울 방학을 하면 휴직도 휴직 같지 않으니, 나의 온전한 휴직 생활은 이제 3개월 남짓 남았다. 공부할 때는 집중하고, 하루 정도는 널널하게 보내야지.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