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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일기(5) 발레를 또 시작하다

잘 안될 것 같아도 시작하기

by 교사맘

브런치북 제목을 '일기'라고 붙여가며 최대한 가볍게 글을 써보려는데 잘 안된다. 많은 정보를 담는 글을 쓰고, 그래서 더 많은 구독자를 모으려는 목표는 없다. 출간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10년, 20년이 되도록 꾸준히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이다. 그러려면 담백하고 가볍게 써 내려가야 할 것 같다. 자꾸 대단한 정보를 담아야 할 것 같고, 멋진 성찰을 담아야 할 것 같지만, 그런 마음은 버리려고 한다고 버려진다기보다는, 그냥 자꾸 쓰면서, 부족하고 맘에 안 드는 글을 눈 딱 감고 업로드하는 연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야 할 것 같다.




또 발레를 시작했다.


처음은 스무 살 때였다. 대학교 체력단련실이라는 곳에서 저렴하게 발레 강습이 있어서 처음으로 해보았다. 가난한 나도 등록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다. 발레는 뭔가 고급져 보였다.


어렸을 때 시골 초등학교에 부임한 선생님 덕분에 2년 정도 기계체조를 했었다. 앞돌기, 뒷돌기, 물구나무서서 걷기 등 온갖 것들을 다 성공했던 이력이 있다. 다리 찢기는 기본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무료였다. 시간만 들이면 참여할 수 있었다. (요즘 이런 어린 시절이 떠오를 때마다,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하는 일이 참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발레에도 자신감이 좀 있었던 걸까? 나는 구기종목은 잘 못하지만, 체조나 유연성, 체력 등은 좋다고 생각하며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이걸로 '체육 잘하는 나'라는 자기 인식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의 경험이 얼마나 긍정적인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지!)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서 발레를 하고 보니 유연성이 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는 1순위가 교회활동, 2순위가 학교 공부였는데 문제는 이 교회 활동에 들이는 시간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기숙사 내에 있는 기도실을 팽개치고 매일 버스를 타고 대학부 사람들이 모이는 새벽기도를 가기도 했고, 일주일에 다섯 번이 저녁 모임인 경우도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완전히 팽개치고 교회활동을 했고, 그랬기 때문에 결국 발레는 가다 말다 하다가 포기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가 된 다음에도 취미 발레를 자꾸 등록했다. 육아 휴직마다 등록해서 다녔다. 문제는 이렇게 되니 만년 초보라는 것이다. 늘 레벨 1 수업을 신청해서 3~6개월 정도하고 1년 이상 쉰다.


무언가를 지속하려면 조금씩이라도 잘해지는 경험이 쌓여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경험상 외국어공부나 발레, 악기 연습에서의 발전이나 성장은, 결국은 우상향이어도, 계단식이라, 어렸을 때 생각 없이 하며 즐기는 것이 아닌 이상, 어른이 되었을 때는 정체된 듯한 구간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계단을 오르기 직전에 자꾸 그만뒀던 것 같다. 뭐 그 구간을 견딜 정도로 흥미롭진 않아서였겠지만.


요즘 취미 발레가 많이 유행이 된 것 같다. 대학생이었던 20여 년 전과 비교하면 가르쳐주는 곳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옷도 엄청 많다. 10년 전만 해도 발레복을 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요즘은 정말 쉽게 살 수 있고, 예쁜 것도 많다.(그만큼 비싼 것도 많다.) 접근성도 높아졌고, 싸고 저렴한 학원인데 잘 가르쳐주는 곳을 등록해도 오래 다니질 못했다.


우리 집에서 1분 정도 거리에 주민센터가 있는데, 다자녀 가족인 경우 거기서 하는 강좌 2개가 무료이다. 이럴 수가!!! 무료인 것을 알고 휴직과 동시에 시작하려고 했지만, 그동안 다른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무료 혜택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복직하기 전까지 약 3개월 남았는데 그 기간만이라도 발레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복직하면 못할 것 같아서, 또 포기하는 상황이 생기는 게 싫어서 하지 않고 있었는데, ‘무료인데 3개월만 하면 어때?’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발레는 주민센터에서 하는 수업 중 가장 비싼 과목이었다.




2시간 수업이라 엄청 긴장하며 갔다. 발레 수업은 빡세게 하면 1시간도 너무 힘든데.


시간대가 오후 4시~6시라 당연히 내 또래보다는 10살 정도 많아 보이는 분들이 가장 많았고 60~70대로 보이는 분들도 계셨다. 처음 왔다고 귀여워해주시는 분들, 환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감사했다. 나도 60,70대가 될 때까지 발레를 하고 싶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어르신들을 볼 때와 같은 감정이다.


다들 수준이 다양해서, 무레벨 수업이라 정신이 없었다. 동작 순서도 기억 못 하겠고, 여전히 몸은 뻣뻣하다.


그래도 발레복과 타이즈를 버리지 않은 나 자신을 칭찬하면서, 입을 때 기분이 좋았다.


제대로 한다는 기분은 안 들었지만 코어에 힘주고, 어깨 내리고, 발바닥을 딱 붙이고, 발가락에도 힘주고, 되는 데까지 다리를 돌려가며 용을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다시 쪼르르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차렸다. 와, 나 진짜 휴직자 맞구나. 발레 수업을 2시간이나 하고 와서 배달 음식을 시키는 게 아니라 낮에 준비해 두었던 반찬을 꺼내서 영양소에 맞게 밥을 차리다니. 이런 여유로움.


발레수업이 있으니 남편이 먼저 와서 밥을 차리기로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본의 아니게) 나보다 늦게 왔다. 근무 중이었다면 늦게 온 남편 때문에 내가 밥을 차린다는 불만이 있었을 것 같은데, 휴직 중이니까, 일하고 온 남편이 밥을 안 차려도 되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복직해서도 어떻게든 여유를 확보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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