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 드는 것
휴직 초기에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고 새벽 수영을 갔다. 수영을 한 후 수영장 근처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러닝을 하기도 했다. 직장 다닐 때 못했던 각종 활동을 하느라 하루 종일 신나게 움직이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자꾸 늦게 자게 되었다. (체력이 좋고 에너지 자체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늦게 자는 데도 자는 시간이 아까워 알람을 맞춘 후 자꾸 새벽에 일어났다. 보통은 밤낮이 뒤바뀔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 나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결국은 잠자는 시간만 줄어드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퇴근해서도 아이들 공부를 봐주고 가사일을 하다 보면 내 시간이 워낙 부족하니까, 자꾸 늦게 자는 것에 대해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밤 9시 정도부터 겨우 내 시간이 생기는 데,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결국 매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수면 부족의 삶이었다.
우선은 휴직이 시작되자마자 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했다. 새벽 수영하기, 한강 러닝 하기, 실컷 책 읽기, 화상영어 수업 듣기, 일본어 공부하기, 한자 공부와 시험 응시, 아이들 집공부 여유롭게 하기, 미술관 가기, 독서 모임 가기, 브런치 글쓰기 등... 휴직 중인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복직이 가까워오니 나에게 묻는다. 내년부터는 이 모든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는데 어떤가? 아쉽다. 하지만 복직하지 않고 계속 이런 삶을 이어간다면 어떤가? 그것도 아쉽다. 교사의 일이 싫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휴직 중에도 연수를 들으며, 복직해서 가르칠 생각을 하면 기대가 되고 기분이 좋다.
그런데도 복직이 두려운 이유는 뭔가? 교사는 좋은데 지금 근무하는 학교가 싫은 걸까? 그것도 (아직은) 아니다. 내가 두려운 것은 '일을 하면서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있는데 그 느낌이 싫은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왜 나를 잃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그 느낌이 결국 나의 '의식주 생활의 경시'에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는 먹는 것과 잠자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으니 몸이 상쾌하지 않고, 정돈되지 않은 많은 물건들과 책에 둘러싸여 있으니 집에 있으면서도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11월부터는 의식주 생활을 우선순위에 두는 삶을 시도하고 있다. (다행히 하고 싶은 것들을 9개월간 원 없이 했기에 이게 가능한 것 같다.)
(1) 아무리 늦어도 11시 이전에는 잔다. 그리고 잘 때는 스마트폰을 책상에 두고 침대 옆에 두지 않는다.
(2) 원래 설교 말씀이나 모닥불 소리, 외국어 음원 등 무언가 듣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외부 소리에 의존하며 잠을 잤다. 그런데 스마트폰으로 뭘 틀고 잘까 하다가 자꾸 자는 시각이 늦어졌다. 지금은 휴직 중이라 스트레스가 적은 상황이니까, 이럴 때야 말로 '내 힘으로 잠을 자 보자. 난 할 수 있어!'라고 외치며 스스로 잠자기를 시도하고 있다. 놀랍게도 3주째 성공하고 있다. 나를 믿고, 내 힘으로 잠을 자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성공하는 게 이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가.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편 127:2
이 성경구절은 재산, 지식 등 모든 것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가져보았던 솔로몬이 한 말이다. 이 구절을 떠올리며, 잠에 드는 일이 신의 사랑을 받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3) 기상 알람을 맞추지 않는다.
나는 원래 가능한 일찍 일어나도록 기상 알람을 맞추고, 그때 컨디션 100프로로 일어났다는 가정 하에 할 일들을 가득 계획해 두는 사람이다. 적게 자고도 일찍 일어나는 내가 이상적인 내 모습이다. 문제는, 그렇기에 내가 얼마나 자야 충분한지 모른다. 학창 시절부터 나에게 충분한 잠을 허락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출근을 해야 한다면 모르겠지만 휴직 중이니까 기상 알람 없이 일어나 보려고 한다. 11시에 자면 새벽 4~5시쯤 한 번은 깨지만 '일어나서 기도하자! 공부하자!'가 아니라 '좀 더 자자!'라는 선택을 하는 내가 낯설다. 기도나 공부는 푹 자고 일어나서 해도 된다는 단순한 사실을 요즘에 처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원래 '2. 잘 먹기'까지 쓰려고 했는데 잘 시간이다. 완성되지 못한 기분이지만 오늘도 업로드를 해보자. 여기까지 쓰면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