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나와 세상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관계 속에서 숨 쉬고 자란다. 그렇기에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와 관계해야 한다. 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가장 눈에 띄는 방식은 언어다. 말과 글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전달하며, 세상과 이어진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말로는 부족하고, 글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그 자리에 비언어적 표현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비언어적 표현’이라고 할 때, 보통은 표정, 몸짓, 시선과 같은 신체적 표현을 떠올린다. 그러나 조금 더 시선을 넓혀보면, 사물 또한 말 없는 언어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꽃을 건네는 행위, 오래된 시계를 간직하는 마음, 혹은 결혼식에서 주고받는 예물은 모두 말 한마디 없이 관계를 드러내고 감정을 전한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했다. 사물에는 태어날 때부터 부여된 본질적 속성이 있을 수 있다. 컵은 물을 담기 위해 만들어졌고, 연필은 글씨를 쓰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 사물이 본래 지닌 기능이나 목적보다, 우리가 그것과 맺어온 경험과 관계가 더 큰 의미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사물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어떤 기억을 덧입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된다. 다시 말해, 사물의 본질은 고정된 속성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탐구하고자 한다. 사물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어왔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살펴보려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사물학은 물건의 이야기를 넘어, 삶의 방식과 인간의 실존을 들여다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처음 산 물건, 선물로 받은 물건, 간절했던 물건, 남들에게 숨기고 싶은 물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물건, 누군가 떠난 뒤 남겨진 물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물건, 나를 바꿔놓은 물건까지 여덟 가지 주제를 통해 살아오면서 만나온 사물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려 한다.
그 속에는 내가 발견한 소중한 의미와 추억, 그리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독자 역시 자신만의 사물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