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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Nov 28. 2019

2008년의 후유증에 관하여

<허슬러> 로렌 스카파리아 2019

 2007년, 데스티니(콘스탄스 우)는 뉴욕의 한 스트립 클럽에 일을 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그곳의 인기 스트리퍼인 라모스(제니퍼 로페즈)와 만나 친밀해지고,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한다. 월스트리스트의 남자들을 상대하던 이들은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손님들이 끊기고, 일거리는 줄어들며, 스트리퍼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자 라모스는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떠올린다. 월스트리트의 남자들을 클럽 밖에서 헌팅하여 클럽으로 데려오는 것. 데스티니가 딸을 낳고 일을 그만둔 사이 라모스는 다른 동료들인 메르세데스(케케 파머)와 에나벨(릴리 라인하트)과 함께 그 일을 시작하고, 클럽에 돌아온 데스티니 또한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사업’이 점점 커지면서 여러 문제들도 따라오기 시작한다.

 영화 <허슬러>는 뉴욕 스트리퍼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월스트리트의 남자들을 통해서만 이야기되어온 2008년 금융위기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제작자로도 참여한 아담 맥케이의 <빅 쇼트>나 라민 바흐러니의 <라스트 홈> 등 비슷한 시기를 다룬 다른 영화들과 전혀 다른 결을 취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에서는 소위 ‘강간 약물’로 다뤄지는 약물을 통해 여성들이 월스트리트 남성들의 돈을 빼앗는다는 점이다. 캐릭터들이 소개되는 초반부를 제외하면, 클럽 안에서의 카메라가 대부분 남성인 관객들을 향해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이 영화는 결국, 월스트리트라는 거대한 금융 착취 집단에 균열이 일어나자 이들에 대한 일종의 반격을 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영화의 배경인 2007년부터 2015년까지를 수놓은 클럽 뱅어 히트곡들의 향연과 함께, 영화의 주인공들은 착취자들을 착취한다. 영화 후반 등장하는 경찰들이 이들의 범죄를 “황당한 일”이라 이야기하며, 이들에게 당한 남성들을 “등신 같다”라고 묘사한다. 이들의 치안력이 지키는 것은 기존의 착취 구조이고, 착취자의 위치에 놓인 이들이 역으로 착취당하는 순간은 어리석은 이들의 실수라 불린다. 데스티니와 라모스는 각자의 딸과 자매가 된 서로를 위해 ‘사업’을 이어간다. 그것은 아마 월스트리트의 남성들도 지닌 유사한 동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욕망을 해소할 공간이 주어진다. 데스티니나 라모스와 같은 이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공간을 그들은 소유하고 있다. 그 공간에서의 역습은 그들이 쌓아 올린 자본주의적 착취의 역습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영화는 엘리자베스(줄리아 스타일스)라는 저널리스트가 데스티니를 인터뷰하고, 그 인터뷰를 통한 회상장면으로 영화가 전개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는 데스티니와 라모스의 행적을 시간 순서대로 쫓는다. 2007년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쳐 인터뷰가 진행되는 현재로 수렴한다. 국가적인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위기 직전의 호황과 위기 이후의 기나긴 후유증을 남긴다. <허슬러>는 그 후유증을 다루는 작품이다. 데스티니와 라모스 사이의 애증의 로맨스적 관계, 착취 구조의 균열과 착취에 대한 역습,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어떤 피해자들은 모두 그 후유증과 연관된다. 인터뷰라는 형식은 데스티니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떨어져 나와 그 후유증을 볼 수 있게 한다. 금융위기의 전말을 탐구하고, 일이 벌어진 이후를 다루기보다 이후의 일을 통해 사건의 전말에 다가가는 다소 추리극적인 택하던 다른 작품과 <허슬러>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허슬러>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와 <빅 쇼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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