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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박동수 Feb 14. 2020

뒷심이 부족한 코미디 전략

<정직한 후보> 장유정 2019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그는 할머니 김옥희(나문희)가 살아있음에도 사망했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하는 사람이다. 4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유세가 한창인 시기, 상숙이 정직해지길 바라는 옥희의 소원은 현실이 된다. 상숙이 더 이상 거짓말을 못하게 되었고, 상숙은 각종 선거유세와 인터뷰 등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상숙의 보좌관 박희철(김무열)과 남편 봉만식(윤경호)은 이러한 상숙의 상황에 당황한다. 동명의 브라질 영화를 리메이크한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을 못하게 된 정치인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지닌 코미디이다. 일상에서만 거짓말을 못해도 생활이 어려워지는데, 거짓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를 잃어버린 정치인의 이야기는 가장 아이러니한 소재일 것이다.

 물론 <정직한 후보>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적극적으로 끌어와 정치인에 대한 사유를 선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대신 그 상황을 취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오락영화다. 이 영화가 얼마나 성공적인가는 그 상황극을 얼마나 밀도 있고 균형감 있게 만들어 내는지에 달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어느 정도 성공한다. 후보자 토론회에서의 발언들이 거짓이라는 게 상대 후보와의 회식 자리에서 곧바로 드러나고, 거짓말을 통해 주상숙의 캐릭터가 빠르게 소개된다. 20평 아파트가 아닌 외진 곳에 위치한 고급주택에 아파트 주민 몰래 거주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 것과, 오프닝 시퀀스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옥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정치인 상숙이 거짓으로 쌓인 껍데기에 가깝다는 것을 간단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는 옥희의 소원이 실제가 되면서 뒤집어진다. 이 영화는 정직하지 못한 후보인 상숙이 거짓의 껍데기가 하나씩 뜯겨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코미디는 여기서 나온다. 정치인 상숙은 물론 생활인 상숙마저 거짓말을 못하게 되며 벌어지는 갈등은 10일 정도의 시간만을 남긴 선거 때문에 전면화되지 못하고 상숙과 인물들 사이를 맴돈다. 그렇게 맴도는 갈등이 상숙의 입으로, 희철이나 만식의 슬랩스틱으로 승화되며 영화의 코미디가 완성된다. 

 하지만 중반부를 지나며 영화는 힘을 잃는다. 가장 큰 문제는 상숙, 그리고 영화 앞에 놓인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상숙은 사학비리, 아들의 병역과 이중국적 문제, 재산 문제,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나 살아 있는 옥희 등의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상숙의 아들 은호(장동주)가 극에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는 여러 문제들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분리해 하나씩 처리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코미디는 앞서 등장했던 것들을 반복할 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과장된 슬랩스틱이 도리어 웃음의 흐름을 끊기도 한다. 영화가 벌려 놓은 에피소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상숙의 ‘정직한 입’은 점점 코미디의 힘을 잃고, 예정된 안전한 결말을 향해 간다. 상숙 앞에 놓인 과제들을 조금 가지치기하고, ‘정직한 입’을 통한 코미디의 패턴을 조금씩 변주해가며 영화가 마무리됐다면 개운한 코미디가 되지 않았을까? <걸캅스>에 이어 제 옷을 입은 것처럼 연기하는 라미란이 인상적이지만, 너무 많은 에피소드가 뒤섞인 후반부는 정리가 필요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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