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을 갔다.
예정된 어제의 가족 여행은 예기치 않은 동규의 불장난(집 안에서 실제 불장난)으로 취소되었다.
그는 혼났고 잘못을 뉘우쳤으나 우리의 여행은 갈 수 없다는 결론으로 사전에 예약한 숙소까지 모두 포기하며 그의 잘못을 정확하게 각인시키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오늘, 어제 잘못의 뉘우침과 전부터 가고자 했던 여행을 산책이란 이름으로 정선으로 출발했다.
2박 3일 리조트를 어제 지인에게 그냥 준 것을 잠시나마 후회하며.
우리의 첫 목적지는 정선역사박물관이었으나 문은 닫혀있었고 졸지에 안경다리 마을에 있는 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리 없이 아이들과 산책하기 좋은 코스였다.
그리고 더워질 즈음 계곡에 발 담그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막상 오고 나니 여행의 욕심이 나기 시작한 것은 나였다.
아이들은 계곡에서 아내는 그 옆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좋다고 했지만 난 아니었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와서 역사가 있는 지역박물관은커녕 계곡에서 올챙이만 잡고 가기엔 너무 아쉬웠다.
그나마 근처에 있던 캡슐공원에 가서 운탄고도에 대한 맛보기를 하며 멋진 산세에 감탄했다.
뒤이어 저녁을 먹기 위해 정선의 5일장이 연다는 걸 알았기에 정선아리랑시장으로 향했다.
이제 아이들은 차 타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다.
꼬불꼬불한 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달려 시장에 도착해서 춘향이가 탔을 듯 한 그네를 타고 시장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시장 구경보단 가게 곳곳에 집을 지은 제비집에 더욱 신나라 했다.
나 역시도 오래간만에 아니 아주 오랜만에 봐서 신기했다.
감탄만 하고 사진을 못 찍은 건 이제 와 보니 못내 아쉽다.
동규가 제비 어미가 집으로 오는 걸 모르고 내 쫒자 나경이가 놀부라며 큰일 났다고 했다.
다시 하늘 위를 빙돌고 집으로 돌아온 제비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절하게 안녕이라 말하고 가는 동규.
뭔가 좀 안심이 된 듯 한 표정이 귀여웠다.
우린 저녁을 먹고 신호등 앞에서 우연히 본 연극 포스터를 봤다.
예정은 저녁 먹고 집에 가는 것이었으나 동규, 나경이 정선에 와서 광부에 대한 얘기를 아내에게 듣고 난 터라 공연을 꼭 보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막상 거리도 10여분 거리라 나 역시 연극을 좋아하기에 핸들을 돌렸다.
목적지에 다다랐지만 야외무대는 안 보이고 멋진 기암절벽과 산세만 보였다.
아이들과 감탄하며 늘 마주하던 야외무대를 생각하며 더 깊이 산속으로 들어갔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 물어 들어갔지만 여전히 공연장은 나오지 않고 포기할라치면 연극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오기로 쫒고 쫓아 결국엔 개천도 건너고 오솔길을 따라 산 끝에서야 공연장을 마주했다.
아내와 아이들이 산 너머에서 울리는 공연소리를 듣고 서야 말이다.
공연은 보통의? 연극 방식은 아니었으나 지금 집에 와 생각해 보니 각각의 스토리를 옴니버스식으로 엮은 구성이었다.
처음부터 보지 못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각각의 배우들이 각자의 스타일로 광부들의 삶을 노래하고 해석하며 세월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내 해석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린 공연 막바지에 나의 집에 가고자 하는 조급함에 공연 끝자락의 길놀이와 소원지 태우기를 하지 못하고 집으로 향했다. (애초에 공연 판플렛에 관련 식순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아내와 차를 빼기 위해 다시 돌아온 나만 그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로만 전해주게 되어 무척이나 미안했고 또 나의 그 찰나의 인내심을 갖지 못한 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후회했다.
지금 역시도.
배우들과 준비하신 분들을 생각했다면 중간에 일어서지 말았어야 했는데 공연 끝나기 5분 차이로 가장 뜻깊은 자리를 만끽하지 못했고 박수를 전하지 못했다.
다음부턴 절대 그러하지 말아야지.
아내는 오면서 그 마지막 팡파르를 아이들에게 보여줬어야 했는데 하며 그녀 역시 무척 아쉬워했다.
난 행여나 더 늦어지면 길이 좁아 나오는 데만 한참 걸릴거란 생각에 조금이라도 서두르자고 한 건데 생각해 보니 남한테 숙박권을 주고 나는 숙박할 생각도 못한 채 당일여행 아니 당일산책이란 명분에 쫓겨 집에 갈 생각에 마지막 일정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마냥 좋아라 했고 집으로 향하는 정선 어딘가에서 재잘재잘되다 슬며시 꿈나라로 향했다.
꼬박 3시간 10분. 근 12시가 되어 집에 도착했고 아이들을 방에 눕히고 씻자마자 오늘을 되돌아보며 일기를 쓴다.
모처럼의 가족여행이었고 모처럼의 시간이었으며 모처럼의 공연에서 모처럼의 열정을 다시 배웠다.
무대에 서기까지의 노력과 준비,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 방식에서 과연 작품의 메시지는 누구의 몫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은 무척 피곤했지만 돌아보니 아쉬운 점도 좋은 점도 있었던 것 같다.
다음에 다시 모처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조금은 더 유익하게 아니 조금은 느긋하게 여행을 즐겨야겠다.
욕심을 좀 내려놓고.
이제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