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영어의 달인 M
25년 10월 10일 아침 06시 33분
연휴가 끝난 일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금요일. 샌드위치 데이라서 연차를 사용하는 직장인들이 많을 거 같은 그래서 연휴의 연속일지도 모르는 금요일이다. 나도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을 만나러 간다.
어제 M을 소개했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어, 잊어버리기 전에 먼저 소개하고 넘어가겠다. M과는 필리핀 어학연수를 같이 갔었다. 어학연수를 가려고 출국 전날 M의 형이 머물고 있는 서울의 자취방에서 하루를 신세 진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M의 형님을 뵌 적은 없지만 가끔씩 M을 통해서 형님 안부를 묻곤 한다.
우리는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필리핀의 여러 도시 중 일로일로란 곳을 추천받아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그곳으로 우리는 떠났다. 참고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 M과 나 그리고 학과 동생 P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를 탔고, 마닐라에서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해서 일로일로행 비행기를 탔다. 아침에 출발한 우리는 오후 3~4시쯤 일로일로 공항에 도착했던 거 같다. 그때 국제선이며, 외국에서 환승을 하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모든 게 두렵고, 설렜다. 우리는 실수 없이 무사히 일로일로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이름표를 큼지막하게 써서 환영한다는 사람은 없었다. 공항 풍경을 보면 되게 흔해 보이 더만 그건 우리에게 허락되지는 않는 이벤트였나 보다. 누가 봐도 딱 한국 사람 같은 학원 매니저가 나와 있었고, 우린 서로를 바로 알아보며 이국 땅에서 한국말로 인사하며 무사히 도착했음을 인지했다. 매니저와 같이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이동했고, 방배정을 받았으며, 짐을 풀고 앞으로 펼쳐질 어학연수 생활이 순조롭고 재밌기를 기원했다. 마침 그날 우리가 군대로 치면 새로 전입을 왔다면, 내일 전역하는 연수생이 있었다. 어쩌다 그분과 저녁에 당구 한게임 치며, 맥주를 마실 기회가 있었고, 어학연수는 어땠는지, 뭘 주의하면 되는지 등 약간의 코치를 받았다. 먼저 귀국하는 연수생은 정말 전역하는 사람처럼 이 모든 게 처음일 우리를 신병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대해줬다. 필리핀 생활을 달관한 듯한 표정, 그리고 얼마큼 늘었 을지 모르는 영어실력으로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로 주문하는 모습은 우리가 나중에 귀국하게 될 때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출국과 필리핀의 첫 입국의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큰 목청으로 울어 재끼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수탉 울음소리에 아침을 맞이했고, 잠시 후 복도에서 아침 식사를 하라는 소리에 여기가 한국이 아닌 필리핀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빵과 음료로 아침을 먹으며, 기숙사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아침에 학원으로 갔다. 그리고 레벨테스트를 받고 수업을 선택하고 본격적인 어학연수에 돌입했다.
나와 P는 영어 수업을 보통 수준으로 따라갔던 거 같은데 우리의 M은 조금 부족해 보였다. 수업시간의 열정, 그리고 튜터들과 허물없이 지내며 언제나 대화를 하고 있기에 영어실력이 쑥쑥 늘어나고 있다고들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 현지인과 대화를 할 일이 있거나, 주문을 할 일등이 있으면, M이 도 맡아서 많이 했다. 지금 소개하려는 건 그때의 일화이다.
학원과 기숙사 사이에 로컬 시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파는 것 중에 우리에 이목을 항상 집중시키는 것은 닭과 오리 요리, 둘 다 생긴 게 비슷한 친구들이 훈제되어 팔리고 있었는데 이 둘의 체격차이가 이렇게 큰 줄을 미처 몰랐다. 작은 체구는 닭,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형 같아 보이는 친구가 오리였다.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고 어학연수 생활에 재미가 붙을 때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 들어온 P의 룸메이트와 간단하게 축하파티를 하려고 했었고, 마침 맥주는 사 왔으나, 안주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시장에서 훈제 닭을 사 와서 먹기로 하고 M에게 미션을 부여했다. 닭이 100페소 정도 했나 그 정도의 돈을 주며 닭 한 마리 사와 달라고, 너의 일생회화를 늘려야 하니 가서 연습도 할 겸 다녀오라고 특명을 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어 도착하긴 했지만, M은 미션을 완벽히 수행하다 못해 오버해서 완수했다. 사온 닭의 사이즈가 형아처럼 큰 체격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다. 뭐가 이상하다 싶어 M 너 이거 닭 사 온 거 맞냐? 이거 사이즈가 오리 같은데.
너 가게 가서 뭐라고 했냐? 했더니 M이 닭이 아닌 오리를 사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M은 혼자 가게에 도착했고 한국말로 닭을 주문했단다. "Give me the 닭"으로 했는지 뭔 영어로 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한문 혼용체를 쓴 것도 아니고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M만의 영어를 구사하며, 현지인에게 닭은 주문한 것이다, 그래도 이게 스토리가 되려는 지 가게 주인은 닭을 덕(Duck)으로 알아듣고, M에게 오리는 내주었고, M이 내민 돈은 닭의 금액이라 돈이 부족했다. 그런데 또 이걸 M이 어찌저찌해서 외상으로 사 왔다는 거다. ( M은 우리보다 생활영어를 훨씬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너를 몰라보고 과소 평가해서 미안하다.) 그래서 내일 학원을 갈 때 외상값을 그 가게에 줘야 한다는. 우리는 M의 이야기를 듣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고, 어쩐지 우리가 생각 한 거보다 큰 오리가 우리 앞에 부끄럽게(오리가 우리의 말을 알아들었다면 잘 못 팔려 왔음을 분명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이날 이후로 덕, 닭 우리말과 영어 비슷한 게 이런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겠다 싶어 조금 더 신중을 기하며 영어를 배웠던 거 같다. 누가 닭과 Duck으로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이건 M이 아니면 절대 불가하다. M 인정한다. 넌 정말 세계 어느 오지에 데려다 놓아도 살아남을 놈이란 걸.
이 일화를 바탕으로 M은 우리를 대표하는 현지인과의 전용 대화 창구였고, 마트며, 식당이며, 가는 곳마다 거의 주문은 M이 도맡아 했다. 아주 디테일한 주문 같은 건 P가 주로 했었고.
이렇게 셋이 처음 간 어학연수를 생각하니 그때가 그립고 또 가 보고 싶어 진다. 가끔 그때의 향기가 날 때가 있다. 동남아 식당을 지나간다던 지, 마트의 세제코너 등을 갈 때 치면, 그때 맡았던 향과 비슷한 향들이 전해져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중에 결혼하면 애들을 데리고 어학연수를 단체로 와야지 생각했었는데, 지금도 여건만 된다면 우리 가족 모두 6개월에서 1년 정도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
친구들을 소개하다 문득문득 M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M의 영어 이름 Dash가 생각나는데 왜 Dash가 되었는지는 다음에 소개하겠다. M이 필리핀에서 Dash 인 D가 된 사연을 기대해 주시라. 뭐 그렇다고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 길래 하며 큰 기대를 하실 것까지는 아니고. 이 이름 하나로 나는 M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M을 놀리는 마음도 있고.
아침이 밝아온다. 다들 일상으로 빨리 돌아오라. 평일에 놀고 있는 나로서 연휴가 길어지니 불편한다. 맛집 탐방을 해보려 해도 사람들이 많고, 여유를 느낄 수가 없었다. 오늘 아니 다음 주부터 이전과 같은 여유로움 속에서 나의 실직을 즐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