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자! 나도 CC 해보고 싶었다.
25년 10월 16일 08시 56분
비가 오는 아침. 난 비가 오는 아침 소리를 좋아한다. 이렇게 비가 오다 가도 딱 출근하러 나갔을 땐 멈춰 주는 비. 이런 비는 나의 최애 비다. 오늘도 아침에 빗소리를 들으며 어제 먹은 숙취가 남았다는 핑계를 대며 일어나기를 거부했다. 자꾸 울려 되는 알람의 경고를 무시하며 계속 누워 있었다. 빗소리가 좋았고, 핑계 건수 하나 잡았으니, 그냥 쭈욱 누워 있었다. 그러다 일어난 게 7시 50분쯤. 딸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일어났었고, 식탁에서 각자의 아침을 먹으며 오늘을 준비했다. 비가 좀 많이 오는 관계로 그리고 내가 쉬고 있는 특권으로 오늘은 딸아이를 차로 학교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리고 지금 컴퓨터를 켰다.
어제는 오랜만에 첫 직장 상사분을 만나 저녁을 먹으며,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20년 전 일부터 최근 일까지. 이런 걸 보면 우리는 추억을 양분으로 삼아 지탱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같은 공간에 있었고, 같은 조직에 있었던 것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고 아직까지 끈끈한 유대감을 발휘한다는 것이 이 얼마나 대단 한가.
K 소개를 한다 하면서 정작 하지 않았다. 이건 K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한 배경지식을 쌓는 시간이었다 보시면 되겠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K를 소개해 보겠다.
K는 부산 출신이었고, 여동생이 있었다. 여러 번 동생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한 번도 보지는 못했다. 나와 비슷한 체격에 탤런트 김정균을 닮았다. 어떻게 보면 송강호를 닮은 거 같기도 하다.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입에 욕을 달고 살았고(특히나 후배들과 이야기할 땐 욕이 아주 찰 지게 잘 나온다.) 술도 자주 마셨으며, 리더십이 있었다. 이런 K와 나는 2년 반을 같이 보냈고, 졸업하고 서도 종종 얼굴 보며 지낸다. 주로 내가 출장을 갈 때면 K를 찾아가서 점심 먹으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한다.
K랑 학교생활을 같이 하는 동안은 하루하루가 시트콤 같았다. 매번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그것 때문에 술 마시고. 이런 루틴이 계속되는 학교생활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저 술값 어떻게 다 감당했나 싶다.
K는 만담꾼이다. 말을 기가 막히게 잘하고 막힘이 없어, 그의 논리에 모두 설득되고 만다. 직장인이 되지 않았다면 사기꾼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 이유가 이런 거다. 너무 그럴듯하게, 모두가 속아 넘어가게 끔 말을 잘한다. 적절한 데이터 수치를 써가면서. 그걸 듣고 있는 순간 그 데이터의 정확도를 누가 체크할 것인가? 혹시 누가 체크해서 그거 아닌데요 이러면 제가 착각을 했나 봅니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 위기를 모면할 위인이었다. 내가 K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개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나랑 코드가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걸 알고는 K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순정, 순애보, 또는 짝사랑으로 불리는 단어들이 우리 둘의 삶의 영역에 교집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입학했을 때 97년도 선배들의 생활을 조금씩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 K가 한 여자 선배를 좋아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K는 그 여자선배 P를 좋아했고, 순정을 다했지만, 그 P선배는 자퇴를 하고 타 학교로 재입학했다는… K의 슬픈 사연을 듣고 나랑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생활 중 가끔 나타나는 P선배를 볼 때마다 K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며, 어릴 적 내가 M(어린 고모)에게 했던 행동과 비슷함을 찾을 수 있었다. 니가 큰소리치고 후배들한테 욕하고 맨날 술 먹고 다녀도, 너도 별수 없구나. 한 여인 앞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동성에게는 아주 강한 남 자였을지 모르나 이성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남자였다. K가 P 선배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도움이 되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다들 아시잖나, 나도 이 분야는 젬뱅인데, 내가 뭘 어찌 도와줄 수 있겠나? 그래서 난 K를 돕기보다는 차라리 K를 놀리기로 했다. 그래서 P선배 이름에 착안해서 별명을 만들었고, 그 별명은 P선배가 나타날 때마다 K앞에서 큰소리로 외치면 K를 놀려대곤 했다.
그런 K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매번 남자애들과 어울리고, 후배들에게 큰소리는 생활을 하느라 이성친구를 만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이놈은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총무 F와 썸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배신자! 나도 너 따라다니고, 다른 후배들한테 큰소리치고 다닌다고 연애는 절대 꿈도 꾸지 않았는데, 휴대폰 사라고 어머니가 주신돈으로 술 사 먹는다고 다 쓰고, 중고폰 사서 생활하는 등 남자들의 의리를 위해 이리 노력을 했는데, 넌 썸을 타고 있었다. 참고로 내가 복학했을 때 캠퍼스 커플을 정말 싫어했다. 나도 CC가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그럴 바엔 CC들을 저주해야겠다는 아주 철부지 없는 마음으로 CC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과는 CC도 많았다. 그래서 언제나 질투반 시기반으로 CC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K가 CC 비슷한 걸 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공식적으로 K와 F가 커플이라는 선언은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K와 F가 커플이라는 것을. 항시 둘이 붙어 다니고, 우리랑 밥도 잘 안 먹고, 뭐 좀 같이 하자하면 내 빼는 것이 이전의 우리의 K와는 달랐기에 우리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나도 학생회 인원이었기에 둘과 자주 만났다. 회의 때마다, 행사 때마다 우린 같이 했지만, K는 그 와중에 썸을 타고 있었다. 이런 걸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 잡고 뭐 그럼 건가. 썸도 타고 학생회도 하고. 역시 난 놈이다 생각했다.
P선배에게 보이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K에 모습에 역시 사랑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배신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다른 마음으로는 너무 부러웠다. 나도 CC 해보고 싶었다.
98년 입학했을 때 난 동기 중 한 명을 좋아했다. 호감이 있었고 가끔씩 이야기도 나누며 그냥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가, 학기말에 둘이 차 한잔 마시고 있을 때.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사겨 볼까?" 그러자 B는 장난치지 말라며 이야기했었고, 나도 멋쩍은 듯 웃으며 넘겼었다. 하지만 난 진심이었는데, 나의 진심이 B에게 닿지 않았던 거라 생각한다. 그 후 2학기부터는 예전 M(어린 고모)에게 했던 패턴과 비슷하게 B 주위에 어슬렁거렸지만, 예전처럼 말도 잘 못 건네고, 차도 한잔 마시지 못했었다. 그리고 난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했고, 전역해서 돌아오면 다시 용기를 내어 말해보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다짐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B가 휴학을 했고 다음 해에 00학번으로 타 대학교에 입학을 해 버렸다는 사실. 이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이런 연유로 학교 CC들을 증오했는지 모른다. 내가 CC 해보고 싶었는데 B가 떠나버렸다. 짝사랑이었지만 너무 슬펐고 힘들었다. 가끔 볼 수 라도 있으면 좋았으련만. 그 후로 B를 볼 수가 없었고, 종종 동기 중에서 친했던 친구를 통해 가끔씩 B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B 소개를 다음에 해야겠다.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 있는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