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을 접하게 된 계기 및 공연 후기
최근 보러 간 뮤지션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유명세 이후 늦게, 한 다리 건넌 경로로 접하게 되었다는 것.
시작은 건축가 Christopher Alexander의 The Nature of Order(NOO)였다. 이걸 읽고 공부하면서 복잡한 시스템은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은지, 어떻게 창작물을 더 살아있게 만들 수 있는지(중의적으로 나와 창작물 모두) 익히고 적용해 볼 즈음이었다. (나는 그 시절 이 관점으로 전시 공간도 만들었었는데, 그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모임에서 Brian Eno의 인터뷰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가 Fred와 협업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특히 놀라운 방식으로 곡을 만드는 것을 보았기에 그 이후로 자신의 작곡법도 바뀌었다는 맥락의 말이었다. 작곡 방식은 NOO에서 이야기하던 핵심 사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Fred는 어떻게 그 영역에 다다를 수 있었을까 궁금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작곡의 과정 및 결과물과 공연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달랐다. 장르적 특성상 즉흥적으로 곡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날것의 느낌이 존재한다면, 앨범에 수록되는 과정에서 다듬어지는 부분도 많을 것이고, 라이브에서는 공연 구성과 즉흥적인 연주 및 편집을 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음악적 요소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면서는 정말 퍼포밍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취향이랑은 약간 거리가 있나 싶기도 했다. 장르는 조금 다르지만 건반 연주에서는 Nils Frahm이, 비트에서는 Olafur Arnalds와 그의 Kiasmos가, 실험적인 사운드에서는 Thom Yorke의 솔로작업들이 더 생각났다. 그런데 앰비언트 사운드도 정말 잘 쓰더라. 음압과 텍스쳐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시작은 놀랍게도 Pink Floyd였다. 17년 10월, 런던으로 그들의 50주년 기념 전시를 보러 갔을 때였다. V&A에서 전시를 본 후, 매일 다양한 미술관에 들려 전시를 보던 와중에 런던 중심부의 한 공간에서 Arthur Jafa의 영상 작업을 봤다. 《Love is the Message, the Message is Death》7분 정도 되는 영상인데 이걸 한 시간 넘게 계속 반복해서 봤었다. 이 작업의 배경음악이 그의《The Life of Pablo》앨범 수록곡인 <Ultralight Beam>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후 Ye의 음악을 찾아보면서 그가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들을 듣는다는 것과, 그것들을 기상천외하게 샘플링한 것을 보고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특히 King Crimson의 <21st Century Schizoid Man>, Steely Dan의 <Kid Charlemagne>, The Alan Parsons Project의 <Ammonia Avenue> 같은 곡은, 힙합은 관심 없고 Progressive Rock을 좋아하며 기타를 취미로 치는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 할 등장이었다.
그의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힙합 씬 때문이었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한 때 힙합 프로그램이 인기였을 즈음, 미디어에 비쳤던 국힙의 모습들을 보면 Ye에게도 알게 모르게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Ye의 음악, 의상, 무대연출들이 레퍼런스 중 하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Ye와 Virgil Abloh와의 만남 즈음은 시각적인 표현의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무언가의 생산자, 디자이너로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려는 과정에서는 그가 공연으로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가 점차 선명해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리스닝파티, 공연 등의 연출은 '어디까지 하나 보자'와 같은 궁금증이 생기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이후의 한국 공연들에선 여러 제약과 사건사고로 인해 원하는 것을 그대로 구현해내지는 못하는 듯했다.
음악을 만드는 프로세스에서는 Rick Rubin의《The Creative Act: A Way of Being》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NOO와 맞닿아있는 지점들이 꽤나 있다. Rick Rubin과 함께한 아티스트들의 말을 보면 곡을 엄청 써오라고 했다는 공통된 증언이 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하니,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