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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비안 Apr 15. 2020

사랑하기 좋은 계절에, 이묵돌

이묵돌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쓰는 나보다 훨씬 잘 알고 더 익숙해 할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 그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쓴 수십 편의 단편글을 모아 출판한 <시간과 장의사>를 동생이 지난 달에 주문했는데 동생보다는 내가 먼저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새로운 글은 없었지만 내가 놓쳤던 글들을 볼 수 있었고, 읽은지 오래됐지만 1년이 좀 넘는 시간의 글타래를 한 호흡으로 읽어내는 건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에> (이하 사계)에 대한 글을 쓰려는데 <시간과 장의사> 이야기만 하다니, 아무튼 묵돌의 이름으로 검색을 했는데 이런 책도 발견했다.


그래도 <시간과 장의사>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다. 한 편, 한 편, 몇 달에 한 편씩 또는 한 달에 몇 편씩, 묵돌의 계정에 올라오는 글의 끝에는 한 장의 그림이 있었고, 그 그림과 함께 제목이 쓰여 있었다. 인상적인 글과 그림과 제목이 내 감정을 때릴 때면 아무 생각 없이 눈물이 날 때가 많았는데 이 글을 읽고서 그 그림의 작가를 찾았다. 그는 사계의 주인공, 묵돌의 연인인 연이었다. 애초에 작가라는 직업이 흔하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발견하기 쉽지 않은 두 작가 연인이라니, 난 그것만으로 이들이 충분히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매일 싸우고 화해하는 두 작가들. 아니, 그냥 매일 싸우고 화해하는 두 사람. 사랑하는 사람끼리 싸우지 않는 건 당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이 없는 거고, 그렇게 관심이 없어지고 당신으로부터 멀어진다며, 계속 화해하자는 약속을 건네고 받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는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부럽고, 사랑스러웠고 아름다웠다. 


읽으면서 함께 들은 올라프손의 건반음악만으로 내 감정은 위로 아래로 들끓었고, 거기에 묵돌과 연의 이야기를 얹으니 내 과거의 기억들과 내 낭만의 세계와 내 바람을 한데 묶었고, 그 어느때보다도 다시 사랑이 하고 싶어졌다. 


묵돌과 연은 각자의 글과 그림으로 서로의 세계를 탐험하고, 본인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쳐서 과거를 안아준다. 물리적인 상처도, 감정적인 상처도, 10년 넘도록 깊게 눌려있던 아픈 자리에도 키스해준다.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재에 감사를 표하고, 다시 죽도록 싸우고 비합리적인 모습으로 웃으며 화해한다.


둘은 함께 오래도록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나같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하고 미소 짓게 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보는 내내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바흐 음반을 들었다. 요즘 아주 각광받는 이 피아니스트의 음색은 지나치게 초연하면서 동시에 세속적이다. 바흐의 건반음악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은 참 쉽지 않아서, 연주자가 곡의 빠르기와 강약을 어떻게 조절하는지를 듣곤 한다. 하지만 올라프손의 바흐 음악은 거기에 음색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추가한다. 물론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른것처럼 다양한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 피아노 소리를 듣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피아노의 음이 들리지 않는다. 모순적이지만 따뜻하고 차가운 음색이고, 강하지만 연하디 연한 세기의 바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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