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리 Jul 01. 2021

동물농장 2021(1/10)

<제1화> 옵핸드영감과 그의 시종들(1)

동물 농장의 주인 지쟈스 씨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왔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그가 진흙이 묻은 장화를 벗다 말고 쓰러지듯 잠이 들어버렸을 때, 농장 안 쪽의 D동 헛간에서 웅성거리며 퍼덕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모두들 헛간의 돼지우리 쪽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었는데, 돼지우리 수장 수퇘지 옵핸드 영감이 "AI(Animal Intelligence) vs. AI(Artificial intelligence): 동물 지능 대 인공지능의 대결, 우리 동물의 생존 가능성은?"이라는 주제로 야간 농장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AI, 머신러닝, 빅데이터와 같은 소위 디지털 혁명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온갖 분야에 별책 부록으로 끼어들고 있었다. 정부 보조금으로 농장을 꾸려가고 있는 지쟈스 씨가 '정부는 호구된' 바우처 사업을 따오기 위해 인공 지능 시스템 도입을 검토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몇몇 동물들이 이 변화가 종국에는 동물 전체를 대체하고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 선동했고 농장 전체에 공포와 위기감이 쌓여가고 있었기 때문에, 동물들은 모두가 한 시간쯤 잠을 덜 자더라도 기꺼이 이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했다.   


옵핸드 영감은 과학 명문 캐스트 훈련소를 나온 수재로, 특히 기술에 대해 떠드는 것에 뛰어났다. 꼬레아 최대 규모의 셋별농장 출신으로, 여러 차례 다이어트에 실패하고 요즘에는 뚱뚱하게 살이 쪘지만 여전히 총명한 눈빛을 가진 돼지였으며, 듣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혼자 두어 시간은 자기 자랑에 몰입할 수 있는 뻔뻔함과 스태미나를 두루 갖춘 자칭 일류 돼지였다. 


동지 여러분, 오늘 여기 모여 제 강의를 듣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자, 자기 자신을 향해 박수를 쳐주세요. 짝짝짝짝짝, 오늘 이 날의 제 강의가 여러분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릴 것이고 오늘 이 자리에 있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이니까요, cool 쿨쿨쿨!! 


박수를 이끌어 내던 옵핸드가 좌중을 조용히 시키고 말을 이어 나갔다. 


"AI라는 건 인공지능입니다. 인공 지능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인공(人工)이란 사람이 하는 일 이란 뜻이에요. 기계를 인간만큼 사고하도록 만든다는 얘기죠.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우리 동물들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 수준의 것이라는 거예요. 뭐가 무섭다는 겁니까? makes sense?(메잌스 센스?)" 


옵핸드 영감은 아무 문장이나 끝에 영어를 갖다 붙이는 말버릇이 있었다. 그는 특히, 유노왈암셍(You know what I'm saying)이나 쿨쿨쿨(Cool), 메잌스센스(makes sense) 같은 것들을 갖다 붙이고 대단한 말을 한 냥 우쭐거렸다. 


"인간들도 이건 잘 알고 있어요. 오죽하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는 말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겠습니까? 이번에도 우리 동물들이 먼저 대단한 걸 만들기 시작할 겁니다. 인공지능은 동물 지능에 의해 대체될 겁니다. 


제가 지금 구상하고 있는 중개 플랫폼이 있어요. 흔히 얘기하는 마켓플레이스라고 하는 거죠. 여기 계신 분들, 모두 저와 NDA(비밀 서약서)를 체결하셨죠? 안 한 사람은 나가주시죠. 이건, 이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아주 중요한 사업이 될 테니까요. "


비밀 서약서를 체결하긴 했지만, 거대 개소리의 스멜을 느낀 암컷 기린 마릴린이 눈에 띄지 않게 낮은 포복 자세로 헛간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하자, 개미 핥기 조태기가 긴 주둥이로 문을 막아섰다. 


마릴린 님. 다 듣고 나가시죠. 옵핸드님의 명령입니다. 


개미 핥기 죠태기는 옵핸드 영감의 심복으로 헛간 명문 소울 동물 훈련소 출신이었다. 나이는 한참 어렸지만 두뇌가 매우 명석해서 D동 헛간 돼지우리의 창립 멤버로 스카우트되었는데, 다른 창립 멤버들이 모두 나간 후에도 옵핸드 영감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부수장 이름표를 달았다. 조태기는 헛간의 모든 기술 관련 업무를 도맡아 했는데, 연구자답게 끈질기게 파고드는 성실함과 치밀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마릴린은 성질대로라면 조태기의 빼빼 마른 얼굴을 긴 목으로 후려쳐서 농장 밖으로 날려 버릴 수도 있었지만, 15년 이상의 동물원 생활에서 얻어먹은 눈칫밥으로 비굴하고 슬기롭게 상황을 무마하였다.    


"나가다니요. 아휴 이 기럭지로 어떻게 몰래 나갈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요? 저는 그저 옵핸드 님의 말씀에 감동해서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된 것뿐입니다요."   


옵핸드 영감이 계속 꿀꿀거렸다. 


"우리 플랫폼에서는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아니, 이 플랫폼을 쓰면, 여러분의 매출이 20배가 늘어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가 쓰지 않겠습니까? 먼저 사람들이 공짜로 쓰게 만들어서 락인을 시킬 겁니다. 그러고 나서는 구독형으로 서비스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죠. 매달 돈을 내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20배의 매출이에요. 우리 플랫폼을 쓰지 않고서는 1/20 매출이란 말입니다. 사람들이 쓰지 않고 배길 수 있겠습니까? 유노왈암셍?" 


아직 정확하게 이 중개 플랫폼으로 무엇을 하게 되는 것인지,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환호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마귀 죰센긴이 바람 재비 역할을 하며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더 많은 동물들이 흥분해서 "암요, 암요"를 외쳤다. 


기술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도 한 것이 없지만 동물들은 뭔가 대단한 것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아무도 무엇을 만드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것이 동물 지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어떻게 매출이 20배가 늘어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이 없었다. 


세미나는 곧 신흥 사이비 종교의 부흥회와 같은 모습으로 변질되었다. 




To be continue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