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완 지음 ㅣ 북로망스
글쎄다. 그 좋은 말들이 내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주 종종
용기와 힘을 주는 말들을 건네받지만
내 마음은 건네받질 못한다.
당신이 내 속을 어떻게 알겠냐
같은 상황이라도 같은 마음일 순
없으니 이해는 가지만. 씁쓸한
내 속은 제자리로 돌아오질 않는다.
건네는 쪽의 마음이야 말이야
모르지 않지만, 옹졸하고 궁색한
내 마음은 내 말은 건네받고
속에서 버무리질 못하니 딱할 따름이다.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에 한가득
펼쳐진 좋은 말들이 내 딱한 사정을
알아주지 못했다. 처음 몇 장을 읽고서는
'이런, 어쩐다.' 일방향이다.
옹졸하고 궁색한 내게 올 책이 아닌데
왔구나. '당신'을 부르며 '당신'에게
있는 힘껏 용기와 행복을 빌어주는
말들이 와닿질 않는데... 어쩐다?
내 속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몇 장을 지나오니 작가는 자기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인 듯 독백하고 고백한다. 꼭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이.
듣거나 보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와 눈이 쏠린다.
청개구리 마냥 들으라 할 때는 안 듣다
보라 할 때는 안 보다 듣고 본다.
삶이라는 게 참 그렇다. 이제 조금 숨통이 트이나 싶으면 다시 또 뒷덜미를 콱 잡힌 듯 멈춰 세게 되고,
편안함에 다다랐다 싶을 때 털썩 주저앉게 될 만큼의 고된 일이 어깨를 짓누른다.
- 느린 기쁨 편 중에서
이맘때쯤이면 퍽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했을 어린 날의 나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갖는다.
...
이상하리만큼 반복된 실패. 그로 인해 습관으로 자리 잡은 주눅. 나보다 몇 걸음 앞서는 시간의 재촉에
끌려다니는 삶. 하루의 행불행을 결정짓는 일 앞에 주체성을 완전히 잃은 듯한 태도까지.
- 슬픔이 가난했으면 편 중에서
언젠가부터 나만의 고독을 연습하는 시간이 늘었다. 누구의 연락도 받지 않고,
일부러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멀어진 곳을 찾았다.
- 혼자 걷는 연습 편 중에서
요 며칠은 아무래도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하나의 작은 목표를
위한 지루한 반복. 가까이에 있는 이 목표를 지나고 나면 나는 또 무엇을 위해 열심히어야 할까.
늘 그렇듯 불안은 시간의 흐름을 질 좋은 양분 삼아 몸집을 지나치게 키워댄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될 때면 누군가 내게 당부처럼 건넸던 말을 떠올린다. 지루한 반복.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일상의 지루한 반복을 습관처럼 해내는 일.
- 지루한 반복이 쌓이면 편 중에서
사실 난 하나도 괜찮지 않다. 줄곧 버티는 삶이었다. 잘 살고 싶은 염원만 꼭 쥔 채로 괜찮은 척을
성의껏 해왔다.
- 잘 살고 싶다 편 중에서
때로는 한 사람의 응원과 격려의 말보다
한 사람이 지나온 경험과 생각, 지루한 반복이
조용히 마음속에 쏟아져 알맞게 버무려진다.
'그러게. 베스트셀러인 이유가 다 있어.'
결이 맞는 사람이 참 귀하다. 내가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온 힘 다해 내 삶을 견인해 주는 사람. 취향과 가치관이 같은 방향으로 뻗은 사람. 알게 모르게 서로를 보살피고 다정의 영향 아래 쑥쑥 성장해 가는 관계. 취향과 가치관 중 하나만 들어맞아도 어쩌면 이 사람과는 평생 갈까 싶다. 그만큼 손발 딱딱 맞출 수 있는 사람과 가까이 머물기 힘든 세상이니까."
- '우리들의 천국' 편 중에서
친구야,
너와 결이 맞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아.
너와 결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해.
그런데 말이야, 그 맞지 않는 부분까지도
서로 인정하려 노력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너와 함께 평생 갈 거란 생각을 해.
그게 결이 맞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친구야,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소심하고 이따금
한심하지만, 여전히 부지런하고 대범하고
이따금 잔소리하는 네가 내 곁에서
나란히 다른 결로 흐르며 같은 곳을
바라봐 주어 참으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려.
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점점 작아지는 나를 홀로 외롭게 마주했을 거야.
우리가 절친해진 계기는 희미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마음 오래 가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금처럼 서로를 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항상 같은 모습으로 응원할 테니. 너의 더한 행복을 바란다고. 아프지 않기를, 덜 울고 자주 웃기를 바란다고. 너랑 친구일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 '그냥 너라서 참 고마운 사람' 편 중에서
친구야
네가 내 친구여서 참으로 고마워.
나는 종종 심장을 쓸어내려.
너와 함께 평생 갈 거란 생각에
마은 한켠이 자그맣게 빛나기도 해.
따듯하고 평온하기도 하지.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도 해.
네가 잘되고 나도 잘되어
발맞춰 앞으로 계속 걸어가기를
뻔히 보이는 그 사람의 약점을 내 옷가지로 황급히 가려줄 수 있어야 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길인들 뒤처지지 않는 템포로 발맞춰 걸어줄 수 있어야 한다.
오래 익을수록 가치가 커지는 마음. 도리어 사랑보다 더 사랑 같은 것. 당신이 좀처럼 빛을 내뿜지 못하고 있을 때도 아랑곳 않고 곁을 채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곧 당신과 가장 날것의 사랑으로 얽혀 있는 인연이다. 대가 없이도 서로의 성공과 행복을 소망할 수 있는.
-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편 중에서
세 번째 낙원을 건너며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연인보다 친구에 대한 사랑, 우정이란 것에서
지금껏 보고 듣고 경험하고 있는 우정의
냄새, 질감, 소리, 모양을 대입해 보았다.
내 친구가 없었다면, 무색, 무취, 무음의 세계가
더 짙게 배지 않았을까.
네 번째 낙원으로 건너며 조금 더 색이 입혀진
세계를 기대한다.
뜨거운 열기에 맥이 빠지고 지난한 시간에
시들해져 게으름과 싫증이 매미소리 마냥
하늘을 찌른다.
얽히고설킨 관계 속
반복되는 지루함
무의미한 오고 감
8월의 여름은 권태롭다.
계절과 나
계절 속 사람들과 나
얼기설기 그런대로
흘러가는 게 영 마뜩잖다.
뭘 할까, 할 수는 있을까
해서는 뭘 할까
애쓰는 것이 별로다
애써야 한다는 것은 더욱더.
계절을 피하고 사람들을 피하니
오래 품었던 꿈도 관계도 아스라이
어른거리다 하나둘 스러져간다.
세상 심간 편한데, 세상 참 적막하다.
인간관계는 창밖으로 멋지게 쏟는 장대비와 같다. 집 안에서 편안한 차림으로 내다볼 때는 그저 음미하기 좋은 낭만이지만,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이겨내고 헤쳐 가야 하 는 악천후가 된다. 관계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서는 꿈꾸고 이룩하고자 하는 이상에 도달할 수 없다. 몸과 마음으로 부딪혀 이겨내고 헤쳐 가고자 하는 노력과 그에 따른 실천이 필요하다.
......
권태를 보란 듯이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찰과 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잊지 않고 손을 잡아야 하고,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한다. 어찌해도 조화를 유지해야 하며 오가는 애착이 식도록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음으로써 우 리는 여전히 우리임을 인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깊은 바다에 빠져버리지 않도록.
- 관계와 권태 편 중에서
안 되겠구나, 나도 같이 스러지겠구나
나의 낙원에는 활기가 영영 사라지겠구나
다시 문을 열고 8월의 여름 속으로 나가
어이 여기 보소, 인기척을 내어 활기를 찾아와야겠구나.
무엇보다 잘 지내고 싶다. 이 유행하는 날들 속에 못 지 내는 건 참 슬픈 일이지 않나. 무언가 괴롭히는 것들이 많아도 보란 듯이 잘 살고 싶다. 척이더라도 쌓이다 보면 정말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아도 될 괜찮은 삶이 내게 올 것을 안다. 매미 울음이 제철인 팔월인들, 우리는 울음보다 웃음 이 잦기를 바라고 있다.
- 팔월, 깊은 온도 속에서 편 중에서
네 번째 낙원- 사랑이라는 머무름-을
건너면서도 내내 나는 '사람'에 골몰했다.
관계 속에 있는 나와 당신, 그리고 또 당신
8월의 여름을 건너는 나의 낙원에는
기어이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며
안부를 전하는 작가의 팔월의 이야기에
나의 팔월의 이야기로 답장을 써 본다.
.
.
.
8월의 여름,
태양이 그리는 긴 문장이
느릿느릿 마지막 구절을 향해 다가선다.
소란스러운 매미 합창이 스러지고 나면
뜨거운 태양이 쉬지 않고 써 내려가던
긴 문장 위에 땅거미가 살며시 내려앉는다.
땅거미진 문장들은 이어달리기를 멈추고
어스름 속에서 숨을 고르며 반복되는
말들을 천천히 뱉어낸다.
계절의 무게가 대지에 닿으면 8월의
긴 문장은 마침표를 찍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른 색연필이 써 내려갈 이야기를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
.
.
작가의 12월의 안부 끝문장처럼
"이제는 좀 행복해져도 되는 우리지 않나.
부디 더할 나 위 없이 완벽한 십이월의 시작이기를."
이제는 좀 행복해지는 완벽한 9월의 시작을 맞고 싶다.
- 삶은 책, 읽어가는 날에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를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