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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녀책빵

[읽고] ‘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 그리고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by 친절한 마녀


"시는 강력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것이다: 그것은 고요 속에서 회상되는 감정에서 비롯된다."(poetry is 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it takes its origin from emotion recollected in tranquillity)

- 윌리엄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위 문장은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유명한 시론(詩論)이다. 감정의 원천은 뜨겁지만,

시를 만드는 손은 차분해야 한다,는 워즈워스의

시관(詩觀)이 담겨 있다. 시는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강렬한 감정이 고요한 사색 속에서 다시 떠올려질 때

탄생한다는 것인데, 풀어서 생각해 보면 시는 단순히

순간의 감정 폭발이 아니라, 그 감정을 시간이 지난 뒤

평온한 상태에서 되새기며 언어로 다듬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고요가 충만한 평온한 상태에서 되새겨 보니 그렇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에는 언어로 승화시킬 여력이

없다. 감정에 충실하느라 쏟아낼 곳을 찾거나

쏟아내지 못해 쩔쩔매거나 우왕좌왕 댈 뿐이다.

감정의 폭풍이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에야

기쁨, 슬픔, 분노, 절망, 희망, 사랑, 감사의

감정들이 나의 언어로 나답게 흘러나온다.


그렇게 이해를 했어도 '시'는 여전히 어렵다.

시인의 마음으로 글을 읽지 못해서일까,

시인의 언어로 글을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시는 아름답지만 항상 많은 것을 품고 있어

그 많은 뜻을 헤아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시집, 이랄까


오랜만에 두 권의 시집을 품에 안았다.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찾은 이지선 시집,

<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와

친구가 선물해 준 고선경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

시집 제목들이 가슴 한편을 두드려

가까이할 수도 있겠는데, 싶었다.


하지만 이내...... 친구야, 미안해

나는 이 시를 감당할 그릇이 못돼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은

토마토를 좋아하는 내가 다 소화하기엔

너무 이색적인 질감과 리듬감을 가졌어

꼭꼭 씹어지지가 않아 시인이 정성 들여

지은 언어들을 질질 흘려버렸네. 미안해


그리고


강렬한 제목에 이끌려 펼친 짙은 사색의

<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는 보다 현실적

이라 시가 어려운 나를 조금 더 안심시켜

주었다. 지옥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

덜하지도 더 나을 것도 없는 내 마음에

'은행에서 본 남자'의 흠칫 놀란 눈물이

내 손에 뚝뚝 떨어지며 맴돌다 자국을 냈다.



시인의 마음을 담은 시인의 언어를 어찌

요약할 수 있으랴. 내 작은 그릇으로는

그러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두 시집을 읽어볼 기회가 있길 추천하며

읽는다면 나에게 말을 걸어 주길 소망한다.

너는 왜 시인의 감정을 읽고 시인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느냐고, 혼쭐을 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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