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지루해서요
태아는 보통 임신 18주 전후부터 소리를 듣기 시작하고, 24~26주쯤 되면 외부 소리에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쫑알이는 27주 차니 이제 듣기는 꽤나 잘하게 되었다고 이해해도 되겠다. 21주부터는 조기진통으로 다인실에 입원해 있는 시간이 많아서 심심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인실에서는 소곤소곤 얘기했으니 내가 말하는 것도 잘 안 들렸을 텐데 이제라도 좋은 소리를 많이 들려주기로 했다.
배 속 아기의 세계는 어떨까. 어둡고 따뜻하고, 모든 게 느리게 흐른다. 빛은 흐릿하고, 소리는 먹먹하다. 쉬지 않고 울리는 엄마의 심장 소리. 숨 쉴 때마다 올라갔다 내려가는 부드러운 파동. 아기가 가장 처음 듣는 ASMR이며, 엄마의 몸이 들려주는 자장가다. 여기에 멜로디를 좀 더 얹어주기로 했다.
태교라 하면 보통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트 효과'라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은 아기들의 뇌 발달이 남달랐다는 연구가 있다고도 하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음악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이 얼마나 특별한지는 모르겠으나 어른에게도 어떤 음악이든 좋은 음악이라면 뇌에 좋은 영향을 줄거니 클래식이라고 특별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아무리 아기라도 하루 종일 클래식만 들으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아기의 첫 사운드트랙은 클래식 일색은 아니었으면 했다. 본격적으로 태교를 준비했다.
스피커를 사고 CD 플레이어를 장만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렇게 잘되어 있는 시대에 굳이 CD를 사다 듣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사실 스트리밍이 편리해진 이후로 음악을 오히려 ‘안 듣게’ 되었다. 웬만한 음악이 손끝 하나로 재생 가능한 시대인데 뭘 들어야 할지 모르겠고, 몇 초만 들어도 넘기게 되고, 플레이리스트는 끝없이 바뀌는데 그 안에 내 마음을 채우는 음악은 별로 없다. 그래서 CD를 샀다. CD를 꺼내고, 케이스를 열고, 기기에 넣고, 딸깍,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그 기계적인 준비 과정이 ‘듣는다’는 행위의 일부다. 요즘은 비효율은 낭만의 다른 말이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 태교를 핑계로 내 사심을 채우고 말았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딱딱한 단어 대신, 아기와 함께하는 첫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그럴듯하다. 덕분에 나는 요즘 ‘아빠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며 진지하다. 전부터 좋아하는 음악. 예컨대 '브로콜리 너마저' (계피가 보컬인 1집이어야 한다)라든가 제이레빗이라던가. 그리고 예전에 전혀 듣지 않던 재즈도 처음 듣기 시작했다. '챗 베이커 Sings 라든가 빌리 홀리데이도 좋다. 빌리 홀리데이를 듣고 있으면 오래된 영화 한 장면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 있자면 이 좋은걸 어쩌다 잊고 살았나 싶다.
나도 어렸을 적 엄마 취향으로 김광석 노래를 듣고 자랐다. 덕분에 좀 더 괜찮은 취향은 갖게 된 것 같다. 좋은 노래는 대를 이어서 들어주어야 하기에 김광석 4집도 '아빠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뒀다.
그래서 쫑알이는 브로콜리 너마저와 챗 베이커, 김광석을 듣고 자라는 중이다. 물론 본인은 아직 무슨 노래인지도 모를 테지만. 그리고 태교라기보다는 아빠의 취향 주입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좋은 음악은 들어서 나쁠 건 없지 않나. 나중에 쫑알이가 커서 어쩌면 “아빠, 우린 왜 옛날 노래만 들어?” 하고 따질 날이 올 수도 있지만, “우리 아빠가 이거 좋아했대” 같은 말 한마디면 그걸로 '아빠 플레이 리스트'는 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