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전 10시.
아내는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난다.
임산부의 하루는 느리게 시작된다.
아침엔 산책을 나가고
리클라이너에 몸을 깊숙이 묻고 책이나 만화를 본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워 보인다.
밤 12시까지 야근하는 것보다는 몸이 좀 무거운 게 낫지
진심으로 내가 임산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하다 말고 중간에 거실로 나가보면
아내는 여전히 리클라이너에 파묻혀 있다.
만화책을 보거나, 간식을 먹거나 한다
“행복해?” 하고 물으면 대답한다
“꽤나 괜찮아.”
표정은 무심한 척하지만,
말투엔 여유가 넘쳐난다.
살짝 얄밉기도 하다.
오전 일과는 아침 산책.
오후 일과는 없는 것 같고
저녁 일과는 저녁 산책과 명상
밤 10시가 넘으면 자러 간다
가끔 낮잠도 자니,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루 동안 꼭 해야 할 일은
간식 잘 챙겨 먹기,
영양제 잘 챙겨 먹기,
밥 잘 챙겨 먹기.
부럽긴 하지만 사실은 또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하다.
무리해서 또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큰일이니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는 안된다.
아내는 컨디션을 챙기고, 에너지를 아껴두는 게 하루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다.
게으름이 미덕이 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곧 잘하고 있는 것이 되는 시간이다.
잠깐의 평화로운 시기라 생각하니 벌써 그리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