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금방 다녀올게요
회사 회식 자리에서 MBTI 이야기가 나왔다. 아직도 서로의 MBTI 이야기를 하다니 한심스럽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으나 사실 MBTI를 좋아하는 나는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면 말하고 싶어 안달이 난다. 조용한 줄 알았던 동현님이 시작해 버렸다. 밖에 며칠 안 나가면 병이 난다고. I라 생각했던 동현님은 사실 파워 E였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며칠 밖에 안 나간다고 병이 난다고? MBTI에 환장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말하고 싶은걸 꾹 참았으나 나는 사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저는 평생 집안에만 가둬두어도 행복한데요. 제발 누가 저 좀 집에 가뒀으면 좋겠어요'
나는 맛은 잘 모르지만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재료를 쫑쫑쫑 썰어가지고 순서대로 삶고 볶고 비비고 하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된다. 옆에서 잘 먹어주는 사람도 있다면 이렇게 즉각적으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또 없다. 게을러서 집은 지저분할 때가 많지만 정리하는 것은 좋아한다. 줄 세우고, 숨겨두고, 더 효율적인 동선을 생각해서 배치를 바꾼다. 집안이 정리되는 만큼 마음도 정돈된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정리와 청소만큼 좋은 일은 없다. 청소를 끝내고 편안히 앉아 책이라도 보고 있으면 인생에 그런 사치가 또 없다.
나는 육아도 좋아할 것 같다. 말은 무슨,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작은 사람의 하루 전부를 내가 관리해야 한다. 귀여운 아기와 먹고 자고 싸고를 같이 하다 보면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클 테고. 하루가 다르게 할 줄 아는 것들이 많아질 거다. 살면서 이만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회사 일 열심히 해서 회사 매출이 몇백억 몇천억이 늘어났대도 나에겐 시원치 않을 일이다. 혼자서 해낸 일도 아닐뿐더러 내 돈도 아니고 일만 더 많아질 거다. 내가 좋아하는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더 줄어들겠지. 퇴사하면 나도 잊히고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낡고 오래된 재무제표에 숫자로만 남을 그런 일은 나에게 그리 행복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어찌저찌 사회생활 해내고 있으나 역시 나에게는 가정주부가 천성이다.
사람들이 공동육아니 독박육아니 하는 말을 많이 한다. 애초에 이런 말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인간은 한 가지 일만 하기엔 적합하지 않은데,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육아만 한다. 한 가지만 하고 살면 사람은 병이 난다. 그리고 이렇게 한 가지만 하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또 안타깝다. 육아는 본래 좋은 것이어야 하는데, 세상에 싫은 것들만 넘쳐나서 어떻게 되려나.
주부가 천성인 나는 일만 많이 하던 일상에서 잠시 육아만 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육아 휴직이 당연하기보다는 감사한 일이 되고, 일을 쉰다는 것이 한 켠으로는 불안함이 된다는 점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육아휴직을 통해 이렇게라도 균형을 맞출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