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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술램프 예미 Jun 24. 2016

길 위에 있을 땐 모릅니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신림동에서 고시공부를 오랜 시간 했었다. 나에게 고시란 사회적 지위를 업그레이드 시켜줄 유일한 방법인 줄 알았고, 나를 깔보았던 사람들을 그리고 세상을 깔아뭉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그것들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가졌을 때, 권력을 가졌을 때 그건 나에게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무기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당장은 나의 소원을,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신이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그건 나를 위한 것일 때가 많다. 


달달한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떼써봐도 그 안에 들어있는 각종 계면활성제, 나쁜 화학성분들 때문에 사주지 않는 부모가 지금 당장은 원망스럽지만 그것이 나의 건강을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처럼, 나에게 지금 당장은 유익할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나를 해치는 것이었음을 느끼는데 역시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나는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다. 그 누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까라면 까고, 위계서열 지키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한 때 군인이 되고 싶었고, 세상의 모든 권력을 가지고 싶었다. 애국심으로 포장했지만, 정당하게 누구 위에서 군림할 수 있는 자리가 군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무기를 신은 나에게 주지 않았다. 고 3때 사관학교에 지원했을 때도, 고등고시 공부를 했을 때도 신은 내 손에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휘둘러댈지 모를 그 무기들을 쥐어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보다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요즘에나 심리학이 뜨는 학문이지만 예전에는 공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과가 심리학과였고, 나와서 뭐 되려고하나 안쓰럽게 바라봐지곤 했던 사람들이 심리학도였고, 심리학자였다. 그렇게만 생각되던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었단 생각이 든다.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내 상처에 대해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사색하고 또 글을 쓰게 하며 나를 인간답게 해주었고,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과 눈을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나의 삶을 움직이고 내 삶의 주인이 되려고 했을 땐 괴롭기만 했지만, 나를 만든 창조주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긴 순간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며칠 전에 꿈을 꾸었다. 어느 친구에게 가서 마구 따지는 꿈을 꾸었다. 그 친구는 심리학 박사이고 모 사이버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이버대학 교수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친구는 한 때 나에게 자신이 가진 무기를 마구 휘둘러 아직도 맺힌 게 많았던지 꿈 속에서라도 더 따져야했나보다.


심리학 수업 시간에 교수가 내 준 과제가 어렵게 느껴져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이런 연구를 해 본 적이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순간, 그 친구는 내 앞에서 친구가 아니라 교수가 되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과제를 내 준 거냐며 어디를 다니고 있는 거냐, 평생교육원을 다니는 거냐 대학원을 다니는거냐하는 멘트로 비아냥거리기 시작하더니 교수가 너한테 하라고 내 준 과제가 아니냐며 급기야 내가 석사만 되도 알려주겠는데 교수라서 못 알려주겠다는 멘트를 날렸다. 알려주고 안 알려주고는 마음이고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내가 너 다니는 학교 학생도 아닌데 교수라서 못 알려주겠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친구 앞에서 웬 교수질이냐며 뻐큐를 날렸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나 이래봬도 어디 다니는 여자야라고 말하기엔 그 친구 학력이 나보다 더 높았다. 그 때의 말투와 말의 내용들이 내 자존심에 강하게 흠집을 내었다. 물론 자존심 상하라고 한 말이었을거다. 굽실거려야 했는데 물어보는 주제에 너무 당당했던 거다. 살면서 가장 자존심 상했던 순간이어서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한 시간은 족히 울었다. 그 순간, 내 안에 숨어있던 권력욕이 순식간에 다시 머리를 쳐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장학사가 되는 법을 알아봤다.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무엇이 되어 누구를 깔아뭉개고 싶은 욕구가 아직도 내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정말 더 잘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만약 고시에 합격해서 한 자리 하고 있었다면 나도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자신이 가진 위치를 내세웠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디 그정도 위치에 있는 자가, 이제 겨우 심리학 공부 시작한 주제에 교수인 나에게 친구인척 하냐는 것과 똑같이.


순간, 그 친구가 불쌍해졌다. 같은 교회를 15년을 넘게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도 그렇게 뻐기는 정도라면 밖에서 교수랍시고 잘도 뻐기고 다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 그릇된 욕심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 불쌍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누가 고시에 그냥 패스를 시켜준대도 싫다. 하루종일 남의 사건사고에 감나라 배나라 해야하며 그 골치아픈 남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들어 함께 정신없이 굴러가야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것, 답답한 조직문화에서 누구 눈치나 보면서 굽실대며 살아야하는 것. 영업하느라 하루 웬종일 뛰어다녀야 그토록 원했던 부를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 그게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는 것을 지금은 알고 있고, 그런 삶을 살고 싶지도 그런 삶이 전혀 부럽지도 않다. 고시패스하고 인생이 더 힘들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널리고 널렸다. '증'이든, 고위직이든 그걸 획득하는 순간, 삶에 비단길이 확 펼쳐질 것 같지만, 수 년을 전에 없이 바닥을 기어다녀야 하는 삶이 펼쳐진다는 걸 알고 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그 노력은 충분히 칭송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뻐기는 것은 또 잘난 체는 남한테 한다. 


교수랍시고 남편을 무시하고 친구한테 나 교순데 감히 나한테 그깟 것을 도와달라 하냐며 친구를 조롱이나 할 줄 아는 삶이 뭐 그래 대단한 삶이고 칭송받을 삶인가. 무엇이 되었다고 뻐기지만 결국은 친구한테 교수 이전에 사람이나 되라고, 무엇이 되었다고 교회 와서 무엇인 척 하지말라는 목사님 설교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냐며 욕이나 먹고 있는 자신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는 말이다. 친구한테 뻐기면 친구도 세상 사람들처럼 굽실댈 줄 알았냐는 말이다. 돌아오는 건 욕이요, 자신이 못나빠진 인간임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지 않느냐 말이다. 심리학 박사면 뭐하느냐는 말이다. 그 동안 남편에게, 친구에게 또 사람들에게 너무 교만했나보다 고백하며 미안하다고 한들 이미 남의 얼굴에 물을 뿌려놓고 그런 말들이 무슨 소용이냐 말이다.


무엇이 되면 큰 무언가를 얻을 것 같지만, 무엇이 되어 얻게 된 기쁨은 잠시 뿐이고 그 무엇으로 뻐기는 삶을 살기를 선택하는 순간 남에게 들이대었던 칼 날은 결국 자신을 향하고 만다.


고시생활은 나에게 큰 외로움을 주었고 동시에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주었지만 그 실패로 인해 내가 가질 수 있었던 칼끝같은 차가움을 거두어 주었다.


아마 그것을 가졌다면 하루하루 내가 왜 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고만 있었을 것이다. 아직도 치열하게 경쟁 한 가운데 있었을테고, 삶의 다른 풍요로움은 미처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채 더 차가운 인간이 되어 누군가를 짓밟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끼고 우쭐대는 못나빠진 인간인 채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향했을 것이고, 웬만한 남자는 성에 차지도 않아 결혼도 못 했을 것이며, 지금 누리고 있는 알 수 없는 행복감도 느끼지 못한 채 하이애나처럼 살고 있었을테지. 무엇이나 된 줄 알고선 말이다.


그리고 인생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지 않느냐.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비단길이어도 곧 척박한 돌멩이 가득한 길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며,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이 험한 길이어도 곧 꽃길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지 않느냐. 길 위에 있을 땐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알 수 없다. 길이 끝나는 자리에서 누가 울고 누가 웃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러니 그대, 지금 잘 나간다고 누구 앞에서 뻐기지 마라. 그러다 외로운 인생으로 마감하게 될 것이니.



그리고 그것이 당신이
현재 외로운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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