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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ntie J Dec 07. 2018

노 부부의 최종 정착지

: 돈 버는 곳이 고향이다.

여러 사정 상, 이곳저곳 떠돌며 살다 보니 때론 절실하게 세월의 깊이를 느끼며 우직하게 ‘정착’해 살아보고 싶어 진다. ‘정착’이 줄 ‘익숙함’, ‘익숙함’이 줄 ‘편함’이 그립다.


한 동네에 오래 살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경험을 일상에 끼워 넣고 싶어 지는 거지.

엘리베이터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주 발이 가는 동네 단골 가게가 생기고, 그렇게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다 보면 어느 날 의도한 바 없이도 ‘마음’을 주고받을 일이 생기게 될 테고. 그 ‘우연’이 한 번 두 번 쌓여 익숙해질 즈음, 나는 그냥 ‘이 동네 사람’이 되는 거다.


뭐 별 다른 기준은 없다만, 순전히 내 기준으로 최소 5년은 좀 짧고 요즘 세상에 10년은 너무 긴 것 같고. 그 중간 어디 정도는 눌러살아야 한 곳에서 좀 살았다.. 말할 수 있지 싶다.  


아쉽게도 난 ‘동네 사람’이 될만하다 싶을 즈음이면 어김없이 들썩들썩 현대판 노마드 생활을 해야 했다. 덩달아 짐을 싸고 푸는 속도는 몰라보게 빨라졌는데, 새로 자리를 편 동네에서 ‘마음’을 푸는 일은 몰라보게 느려졌다. 동네가 어디든, 어떤 집이든 무슨 상관. 그저 잠시 머물다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데.


엄마, 아버지 모두 경상도의 어느 촌보다도 더 촌 같은 시골 구석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하신지 50년이 넘으셨다. 50년 서울 살이 동안, 초 중반 30여 년 동안만 내가 알고 있는 이사 경력이 십여 번이 넘는데 이 정도만 얼핏 계산해봐도 3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하신 거다. 반 지하에 아파트, 일반 주택, 상가주택, 빌라에 다세대까지, 전세에 월세, 자가까지 형식과 내용 모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형태의 집은 두루두루 경험하셨다 하겠다.  


이사의 이유 또한 스펙터클하게 다양해 전세 기한에 맞춰 2년만 살다 떠난 곳, 뜻하지 않은 경제 사건, 사고로 어쩔 수 없이 6개월, 1년만 살다 정리하고 다른 전세로 옮긴 경우, 기우는 가세 탓에 친구의 집을 빌려 산 적도 있으니 상당히 불안한 형태의 거주를 하신 분들이다. 가족이란, 특히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매우 미묘해 서로의 사정을 시시콜콜 알아야 할 것도 같지만 한편으론 적당히 감추기도 하고, 적당히 모르는 척, 혹은 진짜 모르고 넘어가도 아무렇지 않게 얼굴 보고 함께 살아지니, 단순해 보이지만 한편 제대로 어려운 관계가 맞다 하겠다. 즉, 나는 나의 부모님께서 어떤 사정으로 이사를 수도 없이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시시콜콜 알지 못했다. 애써 알려주시지 않는 거 굳이 알려하지 않았던 거다.


엄마 아버지가 기약 없는 유목민 생활을 청산하실 수 있었던 건 예순이 지나서였다. 지금 동네에서 햇수로 20여 년 다되게 지내고 계시니 거주 경력으로 봐선 ‘진짜 동네 사람’이 되신 거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이사를 접고 정착을 결심하신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경제적 능력의 한계가 도래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좀 더 큰 집, 잘 나간다는 동네,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길 여력도 경제적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법. 눈에 들어 탐이 나도 감당이 안 되는 그런 때가 온 거다. 그리고 더 이상 짐을 싸고 풀고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고 말고 그런 일들이 지긋지긋할 만도 한 연세셨다. 이사, 전세자금, 2년, 또다시 적응.. 관련된 모든 단어들을 묻어 버려도 된다. 드디어! 반갑고 고맙다.  


다만 아쉬움이라면 과연 지금 두 분이 살고 계신 곳이 늙어 여생을 보내고 싶었던 바로 그곳 인가에 대한 확신은 안 선다. 원하는 곳에 정착을 하신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이제 그만하자.. 하시면서 주저앉을까 말까 어쩌다 보니 바로 여기가 최종 정착지가 돼버린 건 아닐까..

아마도 거의 맞지 싶다.


이렇게 안팎으로 ‘정착’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어찌 됐든 ‘내가 사는 곳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 마음 먹어야 한다. 하기야 그전 동네나 집에 대한 미련이 딱히 없으니 적응하기 어려울 것도 없으셨겠지만.


‘진짜 동네 사람’으로 살기 시작한 집은 엄마 집 포함 다섯 가구가 함께 살고 있는 다 가구 주택.

헌데 엄마 아버지가 20여 년을 거주하는 동안 엄마 집의 이웃들, 세 들어 살던 세입자들은 수시로 바뀌어 얼굴이 기억나는 사람이 없다. 한두 집을 제외하곤 거의 전세 기한 2년을 채우자마자 다른 동네로 혹은 살기 편한 아파트로 이사를 나갔다. 그들도 나처럼 현대판 노마드 생활 중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집을 옮기고 싶어 하는 건 다분히 이해가 된다. 우선 턱도 없이 싼 전세금만큼 생활여건이 딱히 좋지가 않다. 엄마네 뿐 아니라 동네 집들 대부분이 지은 지 30년을 가뿐히 넘긴 집들이라 우선 주차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집은 없어도 차는 있다는 요즘 세상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니 서로 조금만 늦게 차를 넣고 빼도 눈 흘길 일에 큰 소리 날 일이 다반사. 거기에 ‘낡은 집’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계절마다 지치지도 않고, 늘 일어났다. 장마철만 되면 집 옥상을 시작으로 벽을 타고 물이 쪼여 들어와 세입 자건 집주인이건 장롱이니 뭐니 세간이 망가졌고, 반 지하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곰팡이로 온갖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그중 최고는 낡은 정화조가 내려앉기 시작해 온 가구 모든 사람들이 새 정화조를 놓을 때까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했던 일.

그래도 마당이 있는 집 아니냐 말한다면 그건 단독 주택, 그중에서도 대문 좀 크고 산다 하는 동네에서나 가능할 이야기고. 대여섯 가구는 기본이고 여덟에 열 두 가구까지 모여 사는 다 가구 주택 촌에서 마당은 주차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십 년 전 즈음이었나. 주택 촌 곳곳에서 주차공간이 심각하게 모자라 온갖 분쟁과 말썽이 일어나자 갑자기 자기 집 담을 터 주차 공간을 마련하면 구청에서 지원금을 주는 일이 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동네에서 손가락에 꼽힐 만큼 빠른 속도로 담을 헐어 버리셨다. 그런데 막상 문제는 담을 헐자마자 넓어진 주차장에 감탄을 해 보기도 전에 집 앞 전봇대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현관문을 열면 바로 동네길이 훅 들어와 마치 길바닥에 내 앉은 집 같아 짜증이 났건만, 바로 집 앞 전봇대 앞에 하나 둘,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한 거다. 담을 헐자 내 집 네 집 경계가 묘연해졌고 종량제 봉투며 음식 쓰레기 통, 재활용 쓰레기까지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하느냐가 새로운 분쟁의 이유가 되었다. 다행인지 기가 막힐 일인지 담을 헌 집들은 죄다 집 앞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너나 할 것 없이 불이 나게 구청에 민원들을 넣고서야 해결이 됐다나 어쨌다나 그랬다.

 

민원으로 해결되는 일이면 그나마 낫지. 낡은 집 때문에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별별 일 중 그 어떤 일보다 민감한 건 돈과 관련된 일이었다.

집을 고치고 달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탈’이 난 거다.

바야흐로 7-8년 전, 온 동네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이편저편으로 나뉘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삼삼오오, 이합집산 들썩대며 우리 편, 남의 편, 온 동네가 싸움터로 변했다. 원인은 바로 ‘동네 재건축’!


오랜만에 들른 친정 집 현관문(담을 헐었으니 현관이 곧 대문인 꼴이다) 앞에 축 쳐진 뻘건 깃발이 꽂혀 있는데, 세상에나! 이건 영통 하신 분들의 영업 집에서나 볼 법한 강렬함 아닌가. 다짜고짜 끼쳐온 창피함에 주변을 휘릭 둘러보니 어라, 옆집도 빨간 깃발이네! 그런데 앞집엔 없고. 목을 빼 두루 살피니 건너 건너 두서너 집 띄엄띄엄, 깃발이 꽂힌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는 거다. 뭔 일이 났구나!


안 그래도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귀 덕분에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계신 아버지의 핏대 올린 설명인 즉, 동네를 밀고 아파트를 짓자는 재건축 찬성파와 재건축 반대파의 한판이 바로 어제부터 시작됐는데, 반대파에서 붉은 깃발을 꽂아 반대하는 집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시위에 들어간 거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가 막힌 설명.

아버지는 건설사만 좋은 일 시킬 재건축은 절대 반대인데 엄마, 반대파의 선봉장 두세 번째 팔 정도 되는 아버지의 부인, 엄마는 딱 반대파의 반대, 찬성파! 시란다. ‘낡은 동네를 깔끔하게 밀어버리고 깨끗하고 세련된 신식 아파트를 지어 나도 어디 한번 아파트 사는 사람 소리를 들어보고야 말겠다!’가 목표인.


수치를 첨부한 정확하고 논리적인 입장 설명은 이미 물 건너 같고, 티격태격 끝까지 들어봐도 두 분 모두 오로지 당신 각자의 입장만 맞으니, 서로에게 결론은 ‘모르면 가만있어!’.

이 즈음까진 그나마 나았다.

언제 깃발이 내려갔는지 모르겠으나 그리고도 하네 마네, 옳다 그르다, 몇 해 동안 엄마 아버지를 뵐 때마다 등장하는 재건축 이야기에 하든 말든 제발 뭐라도 결론이 나서 두 양반이 싸우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하던 어느 날, 엄마 집 골목 입구 포장 이사 사무실이 있는 작은 건물 1층에 ‘**동 재건축 추진 사무소’라는 간판이 걸렸다. 드디어 대동단결, 한 팀이 구성된 건가? 다행일세 하면서 골목을 돌아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는 찰나,

골목 코너 작은 상가 2층에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새 간판, ‘**동 재건축 추진 위원회 사무실’! 이건 뭔가, 아까 그 집이랑 같은 집 아닌가.. 한참을 보자니 문득 제목이 다르네! 하나는 ‘재건축 추진 사무소’, 다른 하나는 ‘재건축 추진 위원회 사무실’. 아이고! 본격적인 두 집 살림이로구나! 다들 기막히게 화합하고 인심이 좋은 동네였는지, 아니었는지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동네 사정 잘 아는 분들 사이에 금이 간 건 확실해 보였다.

 

아버지는 애 저녁에 은퇴를 하시고도 소일거리를 늘 달고 다니시며 바쁘신 분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천직을 찾으신 듯 재건축 사무실에서 대부분을 보내셨다.

다행이다! 자식 입장에선. 평생을 나가 일만 하신 분이라 하루라도 집에 계시면 답답증으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아버지인지라 그나마 구실 삼아 다니시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그리고 엄마는 차 떼고 포 떼면 겨우 가지고 있는 집 한 채 날리는 건 시간문제라는 내용을 제대로 주입받으시고 이론적 전향을 하시었는데 앞에 나서지는 못해도 반대파를 지지하는 아버지와 뜻을 같이 하겠다 입장 표명을 하셨다고 했다. 어쨌거나 더 이상 두 분이 다른 의견으로 서로 핏대 올릴 일 없으니 이 또한 다행!

 

실상 엄마 동네의 재건축이 이슈가 된 건 10년도 훨씬 넘은 옛날부터였다. 그런데 집 한 채를 짓고 허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동네 하나를 갈아엎네 마네 가 어디 쉬운 일이겠나. 이재에 밝은 사람들이 나섰다니 어련히 알아서 득이 되도록 진행하겠냐 만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는 내 입장에선 과연 그 동네가 10년 안에 재건축을 할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를 일이고, 또 한다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큰 몫을 챙기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지도 미지수였다. 그래서 자식 셋은 궁리 끝에, 해마다 집 수리비로 들어가는 돈을 따져보니 구멍 뚫린 독에 물 붓는 격이며, 무엇보다 다리가 몹시 불편한 엄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자 싶어 아버지에게 이젠 다른 세상 단어가 된 ‘이사’를 권유했다. 누구라도 자식들이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곳의 작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하자고. 금슬이 남들보다 좋아 두 분만 지내시는 게 세상 좋으신 것도 아니고, 남은 여생 조금이라도 자식들 자주 볼 수 있고, 생활 편하게 하실 수 있는 곳으로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자식들 마음 아닌가.


“됐다. 안 한다”. 

 결연하게 한마디로 거부하시는 아버지.


열이 뻗쳐 오른다. 다른 건 몰라도 엄마 다리를 봐서라도 저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지.


“아니, 병원 가깝고, 모시고 다닐 사람 편하고, 아파트가 주택보다 훨씬 편하다고요!”


“안 한다고. 하려면 니 네 엄마만 하게 하든지!”


기가 찬다.


“그게 말이 되냐고요. 아니 평생을 여기저기 옮겨 사신 분이 왜 여기선 안 떠나려고 하시냐고요! 무슨 고향도 아니고!”


“고향? 고향이 별거냐? 돈 버는 데가 고향이지!.. 내 평생 이 거 하나 남았다!”


대충 들었어도 평탄치만은 않았던 아버지의 삶. ‘이거’라도 지켜내지 않으시면 얼마나 큰 후회가 되실지 산술적으로 이해는 안 되나 심정적으로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고향은 좀..... 그랬다.


문득.. 그렇다면 내 고향은? 애당초 내 고향은 없던 걸까. 아니면 이미 두 어 개 가졌던 걸까?

이젠 새로운 고향을 어떻게든 찾아 나서야 하는 걸까?


아버지는 오늘도 재 건축 사무실에 나가실 듯하다.


과연 세상 버리시는 그날까지 아버지가 저 집을 지키실 수 있을지, 아닐지 모르겠다만 고향이라 하시니 잘 지켜내시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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