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근원, 끝
2015년 11월 21일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가 남자 친구가 있는 게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슬림이었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동성애자와 무슬림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그의 사상과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제 그와 이야기하면서 불편함을 느꼈었고 카우치서핑을 잘 못 구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열차 안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98'
몸을 뒤적거린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직도 메테오라에 도착하려면 3시간이나 남았다.
열차는 나의 마음도 모른 채 느릿느릿 움직였고
나는 음악을 들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나는 아테네에서의 호스트가 무슬림,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나는 무슬림과 동성애자에 대해 혐오감이 있었다. 파리에서의 테러가 일어난 직후라 그런지 그의 눈빛은 무서워 보였고 혹여나 나를 성적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그와의 첫 만남 이후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속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 미국에는 동성애 혼인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미국은 전통적인 신교 국가이어서 그런지 동성 결혼의 합법화는 더 크게 와 닿는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유럽에도 중동에서 많은 수의 이슬람 교인들이 유입되고 있다. 유럽도 더 이상 백인 사회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민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미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다문화주의였듯 유럽 사회도 나치 독일의 참상을 깨닫고 난 후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그들 이외의 것들을 포용하려고 하고 있다.
다원주의를 원칙으로 내세우는 현대사회에서는 정해진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의 통합과 인정이 어디까지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그 기준이 애매하다. 솔직하게 나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올바른지 모르겠다. 크리스천으로서 이 같은 흐름은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 다름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럽여행은 내가 처음으로 내가 생활하고 있는 울타리 밖을 넘어갈 수 있었던 기회였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나와 다른 수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알아 갈 수 있었다. 나와 다른 것이 나와 맞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지 틀린 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나의 생각을 바꾸었다. 그와의 만남은 나와 다름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나의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 불편했지만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다. 덕분에 나는 편한 마음으로 메테오라를 둘러볼 수 있었고 메테오라 관광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기피하던 주제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나의 시야를 조금 더 넓히게 되었다.
2015년 11월 22일
파르테논 신전 앞에 있으니까 머리가 멍해졌다. 마지막에 왔구나 라는 느낌이 드니까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지금까지 유럽의 건축 양식들을 보고 모든 관광지들을 방문했지만 모두 이 파르테논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건물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모든 것의 시작. 모든 것의 기본이 된 파르테논. 한 바퀴 돌아보고 계속 봐도 파르테논을 보고 질리지 않았던 것은 이 건물의 의미를 알게 돼서 그런 게 아닐까.
'유럽 100일 여행 中 D-99'
파르테논, 그 장엄한 건물 앞에 서니 내 마음도 숙연해진다. 역사의 흐름에 의해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지금은 그 거대한 외관만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 고고한 자태는 여전히 유럽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었다. 유럽의 건축이 여기서 시작되었고 문화가 이 곳에서 흘러나왔다. 고대 민주주의가 이 자리에서 출발했고 수많은 고대 철학들이 아테네를 기점으로 발전했다. 지금의 유럽 대륙을 형성했던 거대한 로마 제국도 헬레니즘 문명의 영향을 받았고 아직도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들은 유럽 곳곳에서 조각과 그림을 통해 펼쳐진다. 파르테논은 유럽의 처음이었고 나의 유럽여행의 마지막이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언덕 높이 위치해 있기에 아테네 어느 곳에서든지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전망대에는 바람을 받아 펄럭이는 푸른색의 그리스 깃발이 우뚝 서 있었다. 전망대에 서니 그리스 깃발 너머로 나와 같은 눈높이로 마주하고 있는 리카비토스 언덕이 보였다. 그 밑으론 흰 빛을 내뿜는 아테네의 건물들이 보였다. 모두 비슷한 높이로 모여있는 아테네의 건물들 덕분에 리카비토스 언덕은 더 거대해 보였고 그 덕분에 아테네의 전경을 멋들어지게 만들었다.
여행을 오기 전 나는 서울에 살면서 높은 고층 건물과 아파트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유럽의 건물들을 보고 난 후 유럽의 낮은 건물들이 도시를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높은 건물은 자기 자신만을 높일 수 있지만 낮은 건물들은 모두를 높일 수 있다.
한인교회에서 만난 니키와의 만남은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나를 위해 친히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가이드를 자처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유물 속에 숨어있는 그리스 신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스 신화들은 마치 퍼즐처럼 하나 둘 모여 전체적인 이야기를 형성했다. 결국 이 이야기들은 파르테논의 페디먼트로 형상화되었다. 비록 지금은 이 부분이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지만 나는 나의 기억을 되새기며 페디먼트의 조각들을 파르테논 신전에 끼워 맞췄다.
내가 여행을 하며 헬레니즘의 흔적들을 보고 왔기에 아테네가 풍기는 느낌이 낯설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모든 도시에 아테네가 들어 있었기에 아테네는 더 특별해졌다. 아테네가 나의 마지막 도시였기 때문에 나는 아테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2015년 11월 23일
목적지는 필로파포스 언덕이다. 이 곳은 아테네 명소 중에서 아크로폴리스와 비슷한 높이에 있기 때문에 아테네 시내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높은 곳에 올라가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서 언덕에 올라가고 싶었다.
'유럽 100일 여행 中 D-100'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마지막 부분은 항상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아테네에서의 마지막을 필로파포스 언덕으로 잡았다. 도시를 전체적으로 느끼기엔 전망대만큼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언덕 위에서 240일째 여행을 하고 있는 한국인을 만났다. 그는 아시아를 여행하다가 어머니와 잠시 그리스를 여행하고 계셨다. 나는 100일의 여행을 마치고 나 자신을 굉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상엔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경제 위기로 인해 그리스는 더 이상 활기 넘치는 곳이 아니다. 금융 기관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리스 내에서는 카드 결제를 꺼려한다. 관광지뿐 아니라 주거지 쪽에도 수많은 노숙자들이 길거리로 나와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노숙자에게 자신이 먹으려던 샌드위치를 꺼내어 건네주는 학생을 보게 되었다. 동전을 꺼내어 주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샌드위치라니... 그녀의 선행은 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녀는 날개 없는 천사였다.
과거 고대 문명의 중심지였던 아테네는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하지만 현재의 그리스는 무리하게 유로존에 통합된 후 국제적으로 많은 짐이 되고 있다.
공항으로 이동하기 전 나는 호스트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아직도 많은 그리스인들이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현재의 그리스를 직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역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떠나는 순간이 되었다.
나는 빠뜨린 물건이 없나 다시 확인했다.
여행 전보다 훨씬 더 부풀어진 배낭을 메고 집 밖을 나섰다.
이 이상한 기분은 뭘까...
보통 여행이 끝나면 집에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어야 되는데 오히려 다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느낌이 든다.
100일간의 모든 순간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