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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Jul 22. 2024

디지털 정글 속을
헤쳐나가야 하는 아이들.

"선생님~ 오늘 학원 빠져도 된대요. 기분 완전 '떡상'이에요~"


부모님과 통화하고 신나서 이야기하는 A의 얼굴은 기쁨 그 자체다. 친구들과 남아서 반별대항 경기 연습을 한다며 서둘러 아이들과 늦을세라 운동장으로 뛰쳐나간다. 


'기분이 완전 떡상이라.... 어디서 배운 걸까?'


아이가 남기고 간 말에 나는 그 단어 하나에 꽂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은 표현을 쓰나 보다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왠지 마음 한편이 찝찝했다. 6학년 아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 단어 하나에 꽂혀서 일일이 잔소리하기엔 고학년은 너무나도 가르칠 것도, 말할 것도 많고 사춘기 아이들과의 감정 줄다리기도 많기에 그런 '소소한 언어습관'같은 작은 부분은 넘기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하지만 그날은 왠지 그렇지 않았다. 


A는 평소에 유튜브를 즐겨본다고 했다. 사회 시간에는 초등학생은 관심 없을 것 같은 사회 현안들도 꽤나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안다기보다는, 짧은 영상에서 스쳐 지나가며 본 정도로) 

나는 아이들이 어떤 영상을 보고, 어떤 루트로 그러한 정보를 얻는 걸까 궁금했다. 마침 사회 수업시간, 아이들이 대체 어디서 알았을까 싶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틈을 타서, 궁금한 척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런 건 어떤 채널에서 봤어? 선생님도 궁금한데-"

아이들은 잠깐 머뭇하며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더니 슬며시 유튜브 채널 이름 하나를 알려주었다. (다른 것을 더 알려주려는 아이를 제지하며 '그거 선생님한테 알려드리면 충격받으신다'며 말리는 몇몇 아이들의 소곤거림을 뒤로한 채로) 

 아이들이 전담시간을 간 틈을 타서 본 유튜브 채널의 영상 목록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세세한 것 하나하나 기억나진 않지만 '조선시대 내시가 거세당하는 과정'이 가장 최근 영상으로 업로드되어있었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나이에 맞지 않는 불건전한 콘텐츠를 보고 있었다니-'

덮어놓고 훈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이야 아이들 쓰는 말 하나하나에 걱정스러운 맘이 들며 잔소리하고 싶은 어른이 되었지만, 나도 어린 시절 예쁘고 올바른 것만 보고 자라진 않았다. 

내가 A만한 시절에는 인터넷에 이른바 '엽기 문화'가 유행을 했다. 엽기적인 사진이나 이야기, 잔인한 짧은 영상들이 '엽기카페'같은 곳에서 공유되고 있었고 그런 것을 보고 글을 올릴 수 있는 나이제한 따위 같은 울타리조차 전혀 없던 시절이라 초등생들에게도 버젓이 유행하고 있었다. 물론 나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들과 친구네 집 컴퓨터로 친구 부모님 몰래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엽기글이나 사진을 보았다고 내 머릿 속에 트라우마가 남았다던가, 그런 이야기로 인해 나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아이들도 허구와 실제는 어느 정도 구별할 줄 알며 그건 나름의 유희지 그것과 실제 삶과는 거리가 있으며 자신의 생활에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쯤이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과 지금의 시대를 똑같이 생각해서 될까?

내가 어렸을 적 컴퓨터로 보았던 엽기 콘텐츠 몇개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시절과 달리, 일상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생활이 이루어지는 '초연결 시대'에서 이런 콘텐츠 환경들이 과연 아이들의 한때 유희쯤으로 여기고 방관해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이젠 그저 중독예방교육이나 스마트폰과 온라인 문화의 단점만을 이야기하며 그저 하지 말라고 타이르는 방어적 교육의 단계는 지났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교사와 부모보다 디지털 세상을 더 빠삭하게 알고 있으며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와있다. 이미 초등학생들에게도 온라인 문화란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디지털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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