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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산책

성구미 포구에서

주말을 맞아, 혼자 바람을 쐬러 가고 싶어 무작정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탔다.

버스의 종점까지 가보기로 했다.

종착지는 성구미였다.


나는 당진이라는 지역이 생소하다.

8개월 간 이곳에서 지내왔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낯설다.

성구미는 이번 이전에도 발 디딘 적은 한 번, 스친 적이 한 번 있다.

발 디뎠을 때는, 오래 전. 그러니까 약 6년 전쯤 가족끼리 회를 사먹었다.

스친 적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때다.

퇴근 후, 버스를 잘못 탔던 게 원인이다.

이곳은, 버스가 오는 시간이 거의 일정해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 번호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시각만 확인하고 버스를 탔던 거다.

나는 당연히 그 버스가 집으로 향할 줄로만 알았다.

어느 정도까지는 노선이 일정해서 나는 책에 푹 빠져있었던 것.

한데, 갑자기 낯선 시골길을 타오르는 버스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어둠은 깊어졌고, 때마침 그날은 비가 세차게 내리던 때라 주변을 살필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갔다가 돌아오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놓고 종착지까지 갔던 것.

거기가 바로 성구미였다.

그 버스는 잠시간 정차한 후, 다시 시내로 빠져나오는 버스였다.

잠시 내려 주변을 돌아볼까 했지만, 날씨가 궂었고, 솔직히 전혀 모르는 곳인데다 밤이 깊어서 섣불리 내렸다가는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버스에 몸을 맡겼다.


버스 안에 있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좋은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와봐야지. 제대로 즐겨봐야지'하고 홀로 다짐했었다.

그 다짐을,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실천에 옮긴 것.




폭염을 기승을 부리던 날, 나는 걷고 싶었다.

폭염이라고 하면, 무조건 뜨거운 뙤약볕과 무더운 온도만을 연상하기 쉽지만

막상 밖으로 나가보면, 잔잔한 여름바람이 더위를 거둬가줄 때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성구미를 가기 전, 솔뫼성지에서부터 신리성지길을 걸었다.

꽤 많은 거리를 걸었고 온 몸은 땀으로 젖었다. 얼굴도 그을렸고 몸에선 짙고 붉은 열기가 맴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성구미 가기'를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 먹었다.

관성의 진리가 적용되기라도 한듯, 고단함보다는 힘듦에서 에너지를 감지했다.

버스에서 내려 무작정 걸었다. 걷는데, 풍광이 아름다운 거다. 바람이 나를 기분좋게 만들어주는 거다.

그래서 조금 걷다 서서 사진을 찍고 바람을 느끼고, 또 조금을 걷고 바람을 느꼈다.




그렇게 성구미를 즐겼다.

걷는 이는 나 홀로였다. 그래서 좋았다.

어찌나 평화로운지….





길 위에 선 나 혼자라는 사람.

마치 이 땅의 정복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듯 느껴졌다.





그렇게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주차장쪽 벤치에 자리를 잡고 (무게가)가벼운 책을 천천히 읽었다. 그곳에는 가족 단위의 캠핑족들이 많았다. 텐트를 치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가끔 바람을 쐬고 싶을 땐, 이곳에 와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물이 좋다. 바다가 가장 좋지만, 잔잔히 호르는 호수나 강도 좋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들을 향해 비춰지는 햇살과 그들을 둘러싼 온갖 풀꽃들의 어우러짐을 감상하는 재미도 일품이다.




사실 이곳엔 많은 볼거리들이 있는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거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오로지 자연의 일부들 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행복감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홀로 앉아 하염없이 한 곳을 응시하는 할아버지를 보게 됐는데,

나는 그가 어딜 보는 걸까, 뭘 저렇게 뚫어져라 보는 걸까, 의아해했었다. 왜냐. 그의 시선을 따라가봤더니, 마땅한 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그가 봤던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흐름이었다는 것을.

그 흐름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지에 대한 건 알 수 없었으나, 확실히 '볼거리가 있었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매분매초 변하는 자연 만큼이나 부지런한 존재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곳. 성구미에서의 추억이다.




- 2016.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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