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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감정 표현에 대하여

갈등. 겪기는 싫지만 거쳐야만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다. 갈등에 직면해야,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고 그것을 극복(해결)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필자는 좋아하는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특유의 음울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인상깊었고,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꺼내어보는 작품이다. 특히, 늦가을 비 내리는 날 오전에 뜨거운 차 한 잔과 함께라면 최적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지석과 영신은 소통의 부재로 갈등을 겪고 있다. 둘은, 이혼을 앞둔 부부다. 부부 간의 소통 단절은 얼마나 참혹한 상황인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특히 지석은,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자신 안에 꼭꼭 숨긴 채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대중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알기 위해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내비치지 않는 인물들 때문에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테니 말이다. 지석과 영신의 소통 부재는, 감상자들로 하여금 답답함 이상의 짜증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다. 둘이 함께하는 몇 시간만 지켜보는 것도 힘들진대, 영화 속 인물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내가 만약 영신이었다면?'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이혼으로의 행보를 당연시 여기지 않았을까?



영화 속 대부분의 상황은 철저히 밀폐된 공간에서 지석과 영신만이 함께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물론, 정적을 깨는 상황이 몇 차례 있지만, 오히려 그 상황(지극히 평범함에도 불구하고)이 어색할 정도다. 부부의 대화는, 마치 처음 만난 사람들 간의 그것만큼 질서정연하고 딱딱하다. 마치 철제 상자 속에 갇힌 로봇들 간의 데이터화된 대화들만이 이어진다. 감정을 차단한 지석을 지켜보는 과정도 힘들고, 그 상황을 견뎌야만 하는 영신의 속내도 답답하겠지만, 어쩌면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인물은 지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볼 때, 영신이 되어야만 한다. 영신이 되어, 지석의 행동 이면의 속내를 알아내야만 한다. 초코과자 CF 속 카피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고 생각되겠지만, 사실 이 '문제'는 스크린 밖, 우리의 현실에서도 종종 겪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은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이는 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나는 타인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 라고.


정적을 깨고 영신은 지석에게 외친다. "내게 왜 화를 내지 않느나" 울분이 폭발로 이어진다. 분명 화내야 마땅한 상황인 걸 아는 가해자가 (상대적)피해자에게 도리어 화를 낸다. 그에 대해 지석은 답한다. "화를 낸다고 해서 너의 결정이 바뀔 것 같지 않아. 네가 그 결정을 한 데는 내 잘못이 있겠지." 지석은 천사표인가, 희생양인가, 아니면 구원자인가? 하지만 그는 앞선 수식어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이다. 그는, 화를 내고 슬퍼해봤자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석의 방법은 옳은 것일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화 역시 감정의 표현이자, 내면의 응어리를 배출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화를 삭인다'는 표현은 사실상 틀렸다고 본다. 그렇게 표현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화를 죽이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고 있다. 이 쌓임은 어느 순간 폭발하게 마련이다. 내면에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 죽을 때까지 분출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자신의 속은 끓고 있을 게 분명하다. 화를 내는 것도, 그로 인해 싸우는 것도 싫다는 사람들은 '무기력증'을 겪는 것과 다름 없다. 무기력과 무관심은 살아감에 있어 최악의 건이다.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많은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크고 작은 다툼과 그로 인한 감정적 리스크는 상처가 된다. 하지만, 상처와 갈등이 있어야만 성장하는 법이다. 화내고, 울고, 싸우는 과정 이후에야 화해와 갈등해결이 오는 법이다. 따라서 우리는, 감정을 표현해야만 한다. 물론, 막무가내식 화내기는 좋지 않지만 감정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감정 표현의 중요성을 확인시키기 위한 작품이다. 감정 차단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감상자들에게 체감시킴으로써, 감정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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