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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혜 Jul 20. 2017

보그 X 명화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 사진과 명화 이야기 전시회 in 한가람 미술관




패션 사진을 명화처럼 감상하게 된다면? 세계적인 패션지 보그가 루브르 박물관으로 변신했습니다. 카라바조에서 잭슨 폴락까지 세기의 명화에서 영감을 얻은 패션 사진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최고의 흥행 전시로 등극하며 뜨거운 이슈를 만들어낸 'Vogue like a painting : 사진과 명화 이야기 전시회'가 올여름을 맞아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보그 창간 125주년을 맞아 더욱 풍성해진 이번 전시회를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시회는 패션 사진과 명화의 밀접한 관계를 조명합니다. 명화에서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얻었거나, 보다 독창적인 순수 예술을 추구하는 패션 사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전시의 큐레이터인 보그 스페인의 데브라 스미스는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시회를 위해 125년간 세계 보그의 아카이브가 보관해온 작품 중 118개를 엄선했다. 특히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하여 스페인에서는 선보이지 않았던 작품 40여 점과, 보그 코리아의 작품 20점을 새롭게 추가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 사진 전시로 거듭날 전망”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은 패션 사진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포토그래퍼들과 지난 십 년간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포토그래퍼들에 의해 탄생되었습니다. 작가들은 스페인 황금 세기 회화와 네덜란드 초상화, 모네의 인상주의 풍경화를 거쳐 잭슨 폴락의 추상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그들만의 사진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로 알려진 어빙 펜,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린드 버그 등 영향력 있는 대가들의 사진 작품들은,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비롯한 카라바조, 르누아르, 고흐, 달리와 같은 화가들의 걸작들을 현대적인 공간 속으로 불러일으킵니다.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은 크게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섹션 1. 초상화 Portrait

첫 번째 섹션에서는 초상화가 패션 사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초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시대, 20세기 초반의 표현주의 등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초상화에서 영감을 얻은 사진들이 선보입니다. 사진들은 산드로 보티첼리, 요하네스 베르메르, 존 싱어 사전트, 에곤 쉴레 등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요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섹션 2. 정물화 Still Life

이번 섹션에서 소개하는 사진들은 대(大) 얀 브뢰헬, 빈센트 반 고흐,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폴 세잔 등 정물화에서 두각을 나타낸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포토그래퍼들은 정물화의 뛰어난 구성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또 다른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는데요. 이 섹션에서는 그들 고유의 스타일과 위트, 기술적인 치밀함이 녹아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섹션 3. 로코코 Rococo

세 번째 섹션에서는 로코코 양식과 패션 사진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로코코 양식의 회화는 고급스러우면서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는 파스텔과 골드 계열의 색을 사용하여 젊음과 사랑의 테마를 주로 다루었는데요. 이는 패션이 추구하는 영원한 젊음의 이미지와 나란히 겹치며 떠오릅니다. 이 섹션에서는 로코코 시대의 대표적인 초상 화가인 장 마르크 나티에와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사진들도 함께 만나볼 수 있습니다.

 

섹션 4. 풍경화 Landscape

포토그래퍼들은 풍경화의 기술이나 구성 혹은 모티프에서 직간접적으로 영감을 받았습니다. 잡지가 출간된 이후에도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이는 산드로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또 다른 이들은 에두아르 마네, 호아킨 소로야의 풍경화, 혹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표현주의 풍경화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섹션 5. 아방가르드에서 팝 아트까지 From the Avant-guardto Pop Art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시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진들은 전통적인 회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격변의 시기라고 불렸던 20세기 예술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이 사진들은 패션이라는 장르가 지닌 예술적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포토그래퍼들의 영감과 기술에 의해 탄생된 사진 작품들은 독창적인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스페셜 섹션. 보그 코리아 VOGUE Korea

전 세계 22개국에서 발행하는 보그는 각 나라의 정서와 문화를 반영하는데요. 지난 20년 동안 보그 코리아는 한국만의 색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보그 코리아 스페셜 섹션에서는 보다 동양적인 미학을 전달하는 패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인 듯 그림인 듯


Erwin Blumenfeld - Girl with the Pearl Earring, 1945 (왼쪽)

Johannes Jan Vermeer - The Girl with a Pearl Earring (오른쪽)


누가 보더라도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모방한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네덜란드에 머물렀던 사진작가 어윈 블루멘펠트의 작품입니다. 블루멘펠트는 초현실주의 패션 사진의 대가로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실험정신을 사진에 적용했습니다.



Tim Walker - Sunniva Stordahl with blue campanulasEglingham Hall, Northumberland, 2008  (왼쪽)

Rogelio de Egusiquiza - Lady in a blue dress (오른쪽)


팀 워커는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끄는 몽환적인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사적인 세계'라는 이름으로 촬영한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바로크적인 느낌을 강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여성의 이미지 또한 표현하고 있습니다.



Josh Olins - Vogue UK - Santa Babara Andreea Diaconu and Ashleigh Good, 2014 (위)

Paul Gustav Fischer - Girls on the beach (아래)


바닷가에서 평화롭게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이 작품은 덴마크의 자연주의 화가인 폴 구스타프 피셔와 같은 북유럽 화가들의 풍경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의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쉬 올린스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이를 반사하는 파도의 색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Patrick Demarchelier - Christy, New York, 1992 (왼편)

Salvador Dali - The rose Meditative (오른편)


1992년 영국판 보그 2월호에 게재된 이 작품은 패트릭 드마쉘리에의 작품입니다. 슈퍼모델 스리스티 털링턴이 쓰고 있는 모자의 독특한 모양이 시선을 끌어모으는데요. 이 모자는 디자이너 재스퍼 콘란이 제작한 것으로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공중에 떠있는 한송이 장미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습니다.


Mert Alas & Marcus Piggot - Ophelia, Hever Castle, Kent, 2011 (위)

JOHN EVERETT MILLAIS - Ophelia (아래)


이 작품은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비운의 캐릭터 오필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하였습니다. 명작 햄릿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흥미로운 소재가 되었는데요. 극 중 오필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햄릿에게 살해된 후 실성하여 강물에 빠져 죽습니다. 작품 속 수풀 한가운데 누워있는 여인은 스웨덴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밀레니엄 3부작'의 주인공 루니 마라입니다.




Peter Lindbergh - One Enchanted Evening (Aymeline Valade, Bette Franke, Elza Luijendijk (왼쪽)

Raffaello Sanzio - La Primavera (오른쪽)


라파엘로와 루벤스의 세 여신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2012년 돌체 앤 가바나의 F/W 패션쇼가 열린

산 도메니코 팰리스 호텔의 정원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모델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패션쇼의 런웨이에서 실제로 선보였던 드레스입니다. 모델의 발아래 펼쳐진 여러 가지 색상과 직물이 혼합된 카펫은 시칠리아의 전통 양식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Cecil Beaton - Charles James gowns French & Company, 1948 (위)

James Tissot - Hush! (The Concert) (아래)


세실 비틴은 이 작품에서 미국 상류사회 여인들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는데요 그 모습이 마치 파리의 부르주아 계층 여인들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프랑스의 화가 제임스 티소의 작품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진의 구도는 한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보다는 등장인물 개개인의 이야기를 상상하도록 분산되어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부르주아 계층이 확산되던 18세기와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 화가들이 즐겨 다루던 소재였습니다.



Tim Walker - Stella Tennant, Eglingham Hall, Northumberland, 2007 (왼쪽)

Jean-Honore Fragonard - The Swing (오른쪽)


이 작품은 18세기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명화 '그네'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로코코 시대에 여인과 꽃을 그린 풍경화는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모델 스텔라 테넌트가 액자에서 나와 날아오르는 듯한 포즈가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은 16세기에 지어진 어느 고풍스러운 저택의 정원에서 촬영하였습니다. 세트 디자인은 팀 워커와 10년 넘게 함께 작업한 엔디 힐만이 담당했습니다.



Camilla Akrans - A Single Woman, 2010 (위)

EDWARD HOPPER - 1954 (아래)


이 작품은 보는 즉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엿보이는 차가운 톤의 배경과 기하학적인 구도는 현대인의 고독을 반영합니다. 이 작품 속의 모델은 클라우디아 쉬퍼입니다. 그녀는 90년대 청바지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 게스의 광고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30년 동안 최고의 포토그래퍼 및 브랜드와 작업을 하면서 천권이 넘는 잡지의 표지를 장식한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순수예술과 상업의 경계를 넘나들다



Nick Knight - Lily, 2008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인데요, 이 작품에서 릴리 도날슨이 입고 있는 드레스는 패션계의 악동이자 천재로 평가받는 영국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2003년 S/S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색의 축제인 홀리 페스티벌에서 영감을 받아 이 드레스를 디자인했습니다.



Nick Knight - Jil Sander Campaign Spring Summer 1992


이 작품은 닉 나이트가 1992년 미니멀리즘과 순수함을 추구하는 독일의 의류 브랜드 질 샌더의 광고를 위해 촬영한 것입니다. 닉 나이트는 이 작품을 통해 의상보다는 모델에 초점을 맞추던 90년대 패션 광고의 경향을 깨뜨렸습니다. 그는 모델의 움직임과 극명한 빛의 대조를 통하여 드레스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파격적인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Clifford Coffin - Untitled, 1949


1949년 여름 미국판 보그에 수영복 특집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입니다. 작가인 클리포드 코핀은 초현실주의 회화의 특징을 빌려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델의 얼굴을 볼 수 없는데요. 이것은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했던 기법입니다. 사막이라는 동떨어진 배경은 보는 사람을 무의식의 세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초대합니다. 이 사진은 1945년 공개되어 현대적인 느낌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작품에 녹아 있는 실험적인 정신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회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발렌티노와 빅토르 앤 롤프의 '오뜨 꾸뛰르 드레스' (오른편)


이번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전시회는 규모면이나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 관람객들의 호응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보그의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사진들답게 아름답고 독특하면서 오래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다만 기획면에서 기대했던 것과 달리 미흡함을 느꼈는데요. 작품에 영향을 끼친 명화를 설명하는 글 중에 오류가 발견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수정을 거친 것으로 보입니다.) 로코코 섹션에 전시된 몇몇 작품들은 로코코라는 주제와 상관이 없는데도 다른 작품들과 함께 묶어 전시해서 모호한 인상을 풍겼습니다. 전체적으로 기획과 구성이 명확하지 않아 관람 시 혼란을 제기할 수 있다는 지적은 피해갈 수 없을 듯합니다.    



프라다 컬렉션


예술적인 경지의 패션 화보를 볼 때면 한 폭의 명화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패션 사진가들이 작품을 위해 전통적인 회화의 요소를 차용해왔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기존의 회화를 모방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단순한 볼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대다수의 작품들은 작가와 수많은 스텝들의 영감과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에 가까웠습니다. 패션 사진을 보다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잘 팔리는 옷, 잘 팔리는 이미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요?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초월성, 시공간을 뛰어넘는 질긴 생명력이 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Vogue like a painting  : 사진과 명화 이야기' 전시회는 오는 10월 7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됩니다. 하루에 두 번 공식 도슨트 투어가 진행되며 전시회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 입니다. 성인 1300원.


사진과 명화의 근사한 만남, 이번 전시회를 통해 보고 느끼고 즐기는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 경험을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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