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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May 23. 2022

하엽에 관한 나의 고찰

10. 프라이덱 이야기





식물을 키우다 보면 힘차게 뻗은 잎줄기 사이로 특정 이파리만 유독 노란 갈색빛을 띠며 힘을 잃고 축 늘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걸 흔히 잎이 ‘하엽진다’라고 표현한다.


올봄에 데려왔던 프라이덱이 그랬다. 진녹색의 부드러운 벨벳 질감의 이파리를 자랑하는 나의 프라이덱이 어느 날부턴가 이상해졌다. 가장 커다랗고 탐스러웠던 잎줄기 하나만 유독 힘을 잃고 쓰러져가기 시작했다. 지지대로 아무리 단단하게 고정해줘도, 쳐진 잎은 이미 바닥을 뚫을 기세로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얼굴을 들려하지 않았다.


참고: 식물을 선물한다는  


우리 아이를 살려야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라인의 한 식물 게시판에 나의 프라이덱 상태가 왜 이러는지 질문글을 올렸다.

내 프라이덱의 상태를 본 어떤 고수님은 ‘이건 하엽이 지는 거라고, 하엽이 지는 건 식물을 기르다 보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니 너무 걱정 말고 소독한 가위로 깔끔하게 제거해주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고수님이 일러준 대로 고개를 떨군 잎 줄기를 눈을 질끈 감은 채 과감하게 잘라주었다.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프라이덱은 빼꼼하니 귀여운 연두색 새잎을 틔워냈다.


이파리가 자연스럽게 하엽지기 시작하면 그 잎은 다시 싱싱했던 원래 제 모습으로는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고개를 떨구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살아가는 잎은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다른 잎들과 영양분을 똑같이 먹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잘라내지 않으면 남아있는 건강한 이파리들도 충분한 영양소를 먹지 못하고, 심지어 새순을 내는데도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남아있는 이파리들 입장에서도 그리 반가울 리 없는. 하엽진 잎은, 살아있는 남은 이파리들에겐 그런 존재다.




생각해보면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생을 그리 오래 살아보진 않았지만, 사람에게도 하엽진 잎이 붙어있을 때가 있다. 그 하엽은 한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빛을 잃은 지 오래된 미련만 남은 나의 연인일 수도, 불편하지만 억지로 유지하고 있는 주변인과의 관계일 수도, 적성에 맞지 않지만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억지로 붙잡고 있는 전공 혹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익숙함의 늪에 빠져 힘겹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 하엽을 어떻게는 살려보려고 (적어도 유지는 해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하엽을 살려내지 못하는 부족한 내 자신을 원망하는 일에 점점 익숙해져 가며 그렇게 살아간다. 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누구보다도 예쁜 새싹을 틔울 수 있다는 가능성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하엽진 잎을 잘라내면 그 위로 예쁜 새싹이 피어나는 자연의 섭리처럼, 불편하지만 억지로 입고 있던 옷을 과감히 벗어던질 때 우리의 인생에도 더 예쁘고 찬란한 순간들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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