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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평 Aug 08. 2022

조금 더 크게 키우고 싶었지 말입니다

23. 대품병에 걸려버렸습니다.


식물 관련 영상을 보다 보면, 탐스럽고 큼직한 이파리를 자랑하는 식물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 집에 있는 식물과 분명 동일한 식물인데, 어떻게 저렇게 크기가 다를 수 있을까…? 확실히 큼지막한 친구들은 공간에 뒀을때 느껴지는 존재감이 다르다. 거대한 크기의 이파리가 모여 만들어진 대품 (大) 사이즈의 식물은 소품, 중품 식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위엄이 느껴진달까.


우리 집의 식물은 중고마켓에서 데려온 여인초 외에는 1년이 넘은 식물이 거의 없다. 작은 크기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나는 소박한 이파리를 달고 있는 나의 식물이 문득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 나도 크게 키우고 싶다…!

나는 식물을 크게 키우고 싶은, 소위 ‘대품병’에 단단히 걸려버렸다. 식물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뿌리가 마음껏 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어딘가에서 들었다. (뿌리가 꽉 차서 넘칠 정도가 되면 그만큼 성장도 제한되므로, 식물을 정말 많이 키우는 식 집사 들은 크기를 제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라도 화분갈이를 잘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대품의 꿈을 실현시켜줄 나의 첫 식물은 다름 아닌 알로카시아 프라이덱이었다.


우리 집의 프라이덱은 집에 들인 지 반년도 채 안됐음에도 이파리는 두 배 정도 많아졌고, 큰 탈 없이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더랬다. 조금 더 큰 화분에 심겨주면 뿌리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금방 대품으로 진화(?)하겠지, 벨벳 질감의 농염한 이파리가 나의 팔뚝만큼 커진다면 얼마나 더 우아해질지 상상만으로도 정말 행복했다. 그렇게 프라이덱은 기존 화분의 2배 이상 넓어진 화분으로 이사를 했다.


갑자기 큰 화분으로 이사를 하게 된 프라이덱은 소시민의 기질이 있는지 넓은 평수에서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점점 그 쨍한 초록 빛깔을 빠르게 잃어갔다. 점점 하엽이 질듯 노랗게 변해가더니 이내 잎장 전체가 질려버린 얼굴처럼 하얕게 변해갔다. 분갈이 몸살이라고 하기엔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져갔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나는 프라이덱의 잎 한 장만 겨우 살린 채로, 다시 작은 화분으로 돌려보냈고, 나의 프라이덱도 이제 막 새로 태어난 식물처럼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파리들이 있었지만, 없었습니다.



두 번째 대품으로 낙점된 친구는 필로덴드론 맥도웰이다. (파스타짜넘과 매우 유사한 모양새를 가졌다.)

특대품의 맥도웰을 유튜브에서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식물 등의 강한 빛을 이파리에 직접 쐬어주면 나의 자그마한 맥도웰이 광합성도 더 잘하고, 커다란 이파리를 내어주지 않을까 싶어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맥도웰 화분을 식물등의 강한 빛을 쬐도록 다시 배치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나의 맥도웰 이파리는 빛이 강하게 들어온 영역을 중심으로 노랗게 타버렸다.

잎장이 커지기는 고사하고, 직사광선으로 인해 그 빵떡같이 예뻤던 이파리는 여기저기 누런 얼룩이 지고 말았다.


노랗게 타들어간 그의 이파리



식물은 그들의 자생지와 환경이 비슷할 때
가장 건강하게 자란다.


잠시 대품병에 빠져 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망각했다. 식물은 그들의 자생지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야 가장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을! 하루라도 빠르게  이파리가 커졌으면 하는 나의 욕심이 오히려 그들을 약하고 더 작게(…) 만들어버렸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에 알아서 잘 자라던 친구들이 낯선 환경을 마주하며,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다.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자라주길 기다렸어야 했다.


비록 이곳이 그들이 살던 열대우림은 아니지만, 그나마 비슷한 환경이라도 조성해주면서 가만히 지켜봐 주는 것이 좋겠다. 성장이 조금 더디어도 기다려 주고, 제때 정말 필요한 양분을 챙겨주는 것. 그것이 식집사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반성해본다.


이제 지나친 욕심은 자제하도록 할게.


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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