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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이야긴 줄 아셨죠?

김밥 재료처럼 다양한 인생이야기

by 달숲


브런치에는 유난히 김밥 관련 글이 많다. 브런치 작가로서 나도 언젠가 김밥 관련된 글을 써야지, 그리고 메인에 대문짝만 하게 내 글을 걸어놓아야지!라는 다짐을 했는데, 아무래도 그날이 바로 오늘인 것 같다. (라고 썼지만 메인에 당첨될지는 하늘의 뜻)


뉴스를 볼 때마다 더위가 정점을 찍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혼자 애오개 쪽을 걷고 있었다.


고독한 미식가가 되어 낯선 동네를 탐방하던 중 눈앞에 나타난 작은 분식집. 네이버 리뷰를 보니 김밥이 괜찮은 듯하다. 때마침 한 여성이 가게로 들어가길래 후다닥 따라 들어가 키오스크에서 참치 샐러드 김밥을 시켰다.


한산한 가게에 앉아 사장님이 김밥을 말아주는 모습을 바라보니 어쩐지 나른해진다. 사장님은 50대쯤 되었으려나. 앞치마를 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투박하고 과묵해 보이는 남성이어서 그런 걸까. 그런데 또 묘하게 잘 어울리기도 한다. 순간 켜진 호기심 버튼.


낯선 사람을 만나면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나의 본능은 오늘도 나를 무수한 질문의 세계로 이끈다.


사장님은 언제부터 분식집을 하셨을까?

분식집을 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을까?

선반 위에 있는 맥심 커피는 얼마나 자주 타 드실까?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가족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실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려는 순간, 김밥이 완성된다. 속재료가 듬뿍 들어 있어 탱글탱글 곧 터질 듯한 김밥. 한입 크게 벌려 ‘함~’ 하고 먹어본다.


입안 가득 퍼지는 참치마요의 고소한 맛!

뒤따라오는 야채의 아삭함에 미소가 지어진다.

끝에 톡! 하고 올라오는 기특한 와사비까지.

맛있다, 이 집.


그런데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렇게나 맛있는데 왜 장사가 안 될까? 앞서 들어온 여성이 어쩌면 오늘 첫 손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 거리는 한가하다 못해 황량하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느낌을 브런치에서도 종종 받곤 했다. 이렇게나 가슴을 울리는 글이 어째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걸까? 표현이 참신하고 감정 묘사에 탁월한데 왜 메인에 노출되지 않는 거지? 정말 희한하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뭐, 세상은 꼭 진짜를 알아봐 주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옳다고 믿는 방향을 따라 묵묵히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우직함을 나는 참 좋아한다. 고집스러울 만큼 자신에게 파고드는 집중력과 고요함. 그 에너지가 든든하게 우리 사회를 받쳐주기에 요지경 세상이 그나마 굴러가는 것이라 믿는다.


여기서 하나 고백하자면 사실은 떡볶이도 먹고 싶어서 컵볶이도 함께 주문했다. 하지만 모든 메뉴가 주문 즉시 조리되는 시스템이라 역시나 김밥이 먼저 나왔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고 싶어서 최대한 천천히 먹었지만, 남은 김밥은 네 조각뿐.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멀뚱멀뚱 분식집 세간살림을 구경한다. 겹겹이 쌓여 올려진 그릇은 사장님의 부푼 기대감을 잔뜩 품고 있다. 저 그릇이 모두 사용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밥이 이렇게나 맛있는데 말이다.


쟤는 어디서
밥은 안 굶고 다닐 것 같아.


식사에 심취한(?) 나를 흘긋 보며 오빠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딜 가든 빠르게 적응하는 타고난 적응력에 먹을 복까지 있어서 어딜 가든 항상 잘 먹고 다녔다.


해외에서도 그 흔한 물갈이 한 번 한 적이 없다. 아프리카와 싱가포르에서 일할 때도, 중국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할 때에도 배탈로 고생한 기억이 없다.


입맛만큼 역마살도 강해서 예전에는 열심히도 밖으로 돌아쳤다. 아프리카에 가겠다는 결심을 말했을 때 아빠는 "딸아 아빠가 이렇게 부탁한다. 제발 안 가면 안 되겠니?"라고 애처롭게 설득하셨으나, 세상이 궁금했던 나는 부모님을 뒤로하고 훌쩍 떠나버렸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뭔가에 홀린 듯하다.


그때 모든 역마살을 다 써버린 건지 이제는 소소하게 뚜벅거리며 새로운 동네를 둘러보는 게 더 좋다.


돌고 돌아 찾은 진리는,

정말 소중한 것은
이미 나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무슨 바람이 들어 다시 세상을 빙빙 돌게 될지도 모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일 테니까. 그럼에도 두렵기보다는 신이 난다.


더위가 한계를 모르고 치솟는 뜨거운 한여름이지만 용감하게 밖으로 나왔고 덕분에 맛있는 참치 샐러드 김밥을 먹었으니 말이다.


인생은 정말 종잡을 수 없다. 하루는 영문도 모르고 뺨을 맞기도 하지만, 다음 날엔 예상치 못한 좋은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니 언제 다시 고꾸라질까 두려워하기보다는 즐거운 시기에는 마음껏 흥얼거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야 갑작스레 꿀밤을 맞아도 그럭저럭 버틸 만할 테니까.



주문한 떡볶이도 (드디어!) 나왔으니 나는 행복하다. 떡볶이 국물에 김밥을 콕 찍어먹으면 자동적으로 눈이 질끈 그리고 만족의 탄식 흘러나온다.


무엇이 이보다 더 좋으랴.


예전에는 한 자리에 머무르며 사는 사람을 도전을 모르는 바보천치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자족의 맛을 아는 현자일 수도. 무리해서 가지려 하지 않고 지금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


나도 이제는 나이를 먹어 크게 변화하지 않는 삶이 편해진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는 삶이란 참 좋다.


김밥 한 줄을 먹으면서도 온몸으로 만족을 느끼고 작은 것을 사랑하고 보듬을 수 있다는 것은, 그건 참 좋은 일이다.




여행자의 마음만 있다면
모든 곳이 즐거운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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