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 R Observership
지금까지 이런 실습은 없었다. 학생인가 전공의인가
(2020년도에 작성한 후기입니다)
내가 돌았던 스케줄은 위와 같았다. (표는 가독성을 위해 새로 만들었다)
실제로는 정해진 스케줄이 따로 없었다. 나를 받아준 교수님은 월화 외에는 다른 병원에 있는 환자를 보러 가기 때문에 교수님이 부재한 날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많은 것들을 경험하려고 노력했다.
첫날에는 소아 재활 외래를 참관했다. Cerebral Palsy(뇌성 마비) 환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진료실 내에서 Ultrasound guided Botox injection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환자를 30분 혹은 1시간 동안 진료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교수님 방으로 환자가 들어가는 것과 반대로 이곳은 환자들이 외래 진료실에 미리 들어가 있으면 교수님(= attending doctor)과 Nurse Practitioner(간호사와 좀 다른 개념)가 노크를 하며 들어간다. 그러면 편한 운동화와 수술복 차림의 교수님은 진료 내내 서 있거나, 환자가 앉아있는 베드 옆에 걸터앉으며 편안하게 환자 및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Small talking부터 보호자 및 환자에게 사려 깊은 설명과 자세한 신체 진찰 및 시술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재활의학과 특성상 의사 환자 관계가 장기적인데, 교수님이 환자들뿐만 아니라 보호자들과도 좋은 라뽀(rapport)를 쌓으며 협력적인 관계를 이끌어나가는 bedside manner 또한 놀라웠다. 모든 환자를 “Princess” 혹은 “Prince”라고 불러주며 진심 어린 애정으로 대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오기 싫었던 소아 환자들에게 장난스럽게 킁킁거리는 소리를 (ex. snorting sound) 내며 까르르 웃게 하거나 커다란 장난감 통에서 비눗방울을 불어주며 진찰하는 교수님을 본 적이 있던가?
바짝 긴장해서 보고 있던 나도 유쾌한 진료실에 매료되어 어느샌가 함께 웃고 있었다. (물론 영어 대화라 잘 안 들려서 슬펐지만) 진료 후, 환자와 같이 외래 창구까지 걸어가며 배웅하는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교수님이 매 순간 환자와 보호자에게 나를 한국에서 온 의대생이라며 소개해준 덕분에 나도 자연스럽게 환자 및 보호자와 인사 또는 악수하며 참관할 수 있었다. 어떤 보호자는 “그럼 너의 공부를 위해서 우리 아들에 대해 알려줄게.”라며 환자의 히스토리를 흔쾌히 공개했다. 한국에서는 외래 참관 시 대부분 멀찍이 떨어져 앉아 대화를 엿들었고, 보호자나 환자와 얘기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가끔 투명 인간이 된 것처럼 숨죽여 외래를 참관하곤 했던 나에게 첫날 20명이 넘는 환자들과 모두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참고로 외래는 이곳도 정신없고 바쁘다. 교수님은 2개의 진료실을 거의 날라다니고 점심 먹을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이건 다음 과에서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처음에는 환자 진료 시간이 길면 그만큼 여유로우리라 생각했지만, 그 시간 동안 환자 보호자와 이야기하며 동시에 신체 진찰하고, 의무기록 작성하고, 시술하니 금세 30분이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신속하게 환자를 보고 진찰하는 동시에 중요한 점들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다.
영어와 관련해서는 해외에 살아본 적 없는 한국인으로서 첫날에는 귀가 막힌 것처럼 대화가 안 들렸다. 나 혼자 다른 우주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대화 속에 농담이 많은데 혼자 이해를 못하니 슬펐다. (표정도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거 참 가만히 있기도 뭐해 다들 웃을 때 억지로 웃다 보니..)
나중에 찾아보니 원래 농담은 웃기려고 말을 더 빠르게 하거나 발음을 흘려서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유학생인 친구가 사실 영국에 살면서 영어가 늘었다기 보다는 알아듣는 척하는 거라며, 50% 정도는 ‘대강 이런 느낌이겠거니’ 추측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줘 마음이 편해졌다. 또, 영어가 Mother tongue인 미국인들도 대화 중간에 “what was it? What’s that? Give me an example. So ~~ am I right? “라고 여러 번 물어보며 배워가는 모습을 보니 못 알아들은 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대화 속에서 “응? 뭐라고? 이거? ” 라는 말을 하루에도 여러 번 쓰고 있었다.
첫날, 심하게 멘탈이 붕괴되어 돌아온 나에게 룸메이트는 아래와 같은 말을 하면서 북독아 주었다.
“어차피 한국에서 온 걸 알고, 당연히 영어가 부족한 상황인데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냥 다시 물어보고 배우는 자세로 임하면 아무도 뭐라 안 할걸? 괜찮을 거야.”
다행히 첫 주보다는 둘째 주가 잘 들렸다. 외래에는 항상 포스트잇을 가져가 모르는 단어를 받아 적고 나중에 집에 가서 찾아보곤 했는데, 다행히 의학용어는 반복이 많아 금세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Acetylcholine 아세틸콜린을 [애시^들컬린] 이라고 발음하거나 Guillain Barre syndrome길랑 바레 신드롬을 [기앙~ 바레, (구글 발음: gee-YAH-buh-RAY)] 라고 들은 순간은 퍽 당황스러웠다. 잠시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무슨 뜻인지 고민하다 내가 잘 아는 그 아세틸콜린이라는 걸 깨닫자 잠깐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다들 알고 있는 개념을 못 알아듣고, 대화를 못 따라갔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중에는 다시 물어보고 ‘아~ 그걸 이렇게 발음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상황이 재밌었다.
또, 의학용어든 영어단어든 집에 가서 찾다 보면 어떤 단어는 (ex. Dichotomy, Akathisia) 30분 이상을 찾아보는데, 그러다 설명하는 단어를 몰라서 계속 찾는다. 그러다 무한루프를 타며 시간이 훌쩍 지나고 단어장은 걷잡을 수 없이 길어졌다. 하지만, 그 시간에 재활의학 공부도 해야 했기에 딱 보고 너무 어렵다 싶으면 누군가(주로 전공의)가 한가한 틈을 타서 물어보았다.
라고 하며 어떠한 질문도 받아주는 분위기에 있다 보니 전공의나 교수님들에게 시간을 많이 뺏지 않는 선에서 질문하며 효과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Can I have a quick questions before I go? ” 말이 입에 붙었고, 아직 일상대화는 어려운 나에게 병원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열성적으로 잘 알려주어서 아하! 하고 깨닫는 재밌는 순간이 많았다.)
그렇게 반사판마냥 사방으로 영어를 튕기던 귀가 농담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뮤지컬 중간에 배우가 즉흥으로 던진 농담을 마침 알아듣고 다른 관객들과 함께 박장대소를 했는데 시원한 해방감을 느꼈다. 대화 속에 농담이 많은데 그걸 또 알아듣게 되니 영어가 재밌어져서 좀 더 지내보고 싶었다.
사실 재활 의학과 실습을 한국에서 하고 간 것도 아니기에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시술과 초음파 영상이 낯설었다. 그렇지만, 외래 중간에 교수님의 일을 방해하며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라며 질문을 투하하기보다는, “일단 지금은 이해가 안 되어도 나중에는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반면, 둘째 날 함께 시술을 보게 된 3년 차 재활의학(PM&R) 전공의는 시술 중 시간이 뜰 때마다
“그러니까 이게 이런 거죠? 잘 이해가 안 돼요. 초음파는 어디를 말한 거죠?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건 왜 이렇게 하나요? ”
라고 물으며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갔다. 덕분에 흑백의 초음파 영상에서 신경도 구별해내지 못했던 내가 sciatic nerve의 위치를 화면 속에서 확인하는 등 어깨 너머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잘 못 알아들었다고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것이 오히려 활발한 대화를 진전시킨다는 점이었다. 교수님이 쓱 넘어갔던 개념이나 설명을 집어서 물어보니 교수님 또한 적극적으로 관심을 주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중요한 랜드마크를 말로 설명해주던 교수님이 종이에 그려가며 설명해줘서 어깨 너머로 많이 배웠다.)
< 교수님께서 설명하면서 그려준 메모 (검은 펜)>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이 좋고, 가만히 있으면 관심 없다고 생각해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겠고, 공부하지 않으면 질문 또한 생각나지 않기에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와 같은 자기 검열에 막혀 질문할 타이밍을 매번 놓쳤던 나로서는 이런 허들을 걷어내니 배우는 것이 재밌어졌다. 확실히 해부학이나 재활의학과 연관된 질병에 대해서 교수님 혹은 전공의에게 질문하면 개념이 쉽게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태도로 다가가도 무시당하거나 힐난 받지 않는 안전한 상황에서 전문가인 교수님이나 전공의로부터 깨달음을 얻으면 시원한 희열을 느꼈다. 시험이나 케이스 발표할 일이 없어 부담이 없기도 했기에 2주 동안 나의 호기심을 따라가다 보니 처음으로 공부가 재밌게 느껴졌다.
<노션 (Notion) 앱을 통해 새로 탐구할 내용을 적고 채우기 시작했다.>
셋째날은 입원 환자 회진을 돌았다. 환자 이름이 병실 밖에 쓰여 있지 않아 특이했다. Privacy를 이유로 병실 밖에 이니셜도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층에 Physical Therapy(PT)와 Occupational Therapy(OT) 치료실이 있다. 책에서만 보던 기구를 직접 환자가 착용하는 걸 볼 수 있었다. OT는 자동차 모형, 극장 모형이 있어 운전하거나 마트에 가서 계산하기 등 여러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수 있는 스튜디오 같은 곳이었다.
전공의는 attending 교수와 회진 돌기 전에 미리 환자들을 보고 다녔는데, 인사할 때 편하게 first name으로 불러 달라며 환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갔다. 언젠가는 병실에서 환자와 장시간 얘기를 하면서 머물다 가기도 했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대화 외에 여러 가지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모습이 좋고 편안했다. 환자는 복부에 큰 수술을 했을 정도로 심각한 케이스였지만, 마치 그 순간은 ‘지금 상황이 엄청 좋지는 않지만 괜찮아. 우리는 아직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걸? ‘ 하는 안심을 받은 것 같았다. 해야 할 처치가 산더미고, 병원용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는 와중에도, 짬이 나면 환자들을 보러 가고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또, 어떤 환자가 수술을 하고 sepsis가 생겨 불편하고 불만이 많은 상태였는데 왜 지금 이렇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의학적인 지식임에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딱 얼음처럼 굳어버렸는데 나중에는 환자도 이해하고 화를 누그러뜨리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모든 환자가 대화를 통해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어떤 환자들은 끝까지 abusive 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할 일을 하고 접촉은 최소화하지만 그런 환자를 대할 때는 정말 힘들다고 했다.
소아 환자의 대부분이 뇌성마비였던 점과 달리 이곳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있었다.
(EMR을 보지 못해 정확한 진단명은 모르겠다)
Botox injection 시 Nerve stimulator를 이용하는데 교수님이 소리의 차이를 들려주는 등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셨다. Nerve stimulator에 손을 대보라는 말을 못 알아듣는 등 사오정이었지만… 교수님과의 바디랭귀지를 통해 소리의 차이를 들어보고, nerve stimulator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배울 수 있어 정말 유익했다. 쭈뼛쭈뼛하던 첫날과 달리, 이날은 교수님이 시술할 때 일단 옆에서 같이 장갑을 끼고 환자를 일으키거나 잡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날 나를 잔뜩 긴장하게 만든 어려운 환자는 Suboxone을 계속 요구하는 분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고 원래 다른 클리닉에서 Suboxone을 처방받아 왔으니 여기서도 받고 싶다는 환자였다.
(영어 대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 다소 매끄럽지 못할 수 있음)
그런데 교수님은 줄 수 없다고 대답했고, 긴장이 오른 분위기 속에서 환자는 그럼 진료실을 나갈 거라는 말까지 했다. 정황상 Opioid 의존성을 치료하기 위해 쓴다는Suboxone (Buprenorphine/naloxone)의 원래 목적에 맞게 처방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향정신성 효과를 누리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나는 얼음처럼 굳은 것과 반대로, 교수님은 차분하게 처방하지 못하는 이유를 환자에게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환자를 진정시켰다. 대하기 어려운 환자는 아직 학생이라 그런지, 볼 때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이런 상황을 매끄럽게 해결하는 교수님이 신기하다.
옵저버라고 쓰고 눈칫밥이라고 읽던 첫 주 목요일, 할 일이 없던 나는 Resident Clinic을 참관했다. 오후에 환자를 세 명 보고 나니 진료실이 텅 비었는데, 그때 한 전공의가 초음파 연습을 할 거라며 나에게 손 모델을 제안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초음파로 Carpal Tunnel을 찾는 걸 보던 중 다른 방에 있던 전공의도 들어와 2년 차, 4년 차 전공의, 펠로우 이렇게 셋과 함께 초음파를 보았다.
내가 한 번도 초음파를 해보지 않았다고 하니, 신경은 Honeycomb (벌집)모양이고, 근육은 스파게티 같은 fiber 모양이라며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지금 보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집어주었다. 덕분에 Scaphoid, pisiform을 랜드마크로 Carpal tunnel, median nerve를 찾고 이를 팔 위로 따라 올라가 brachial vein & artery까지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이때도 짜릿한 흥분에 심장이 두근두근 하였는데, 갑자기 전공의가 나에게도 한 번 해보라며 초음파를 건넸다. 지금까지 초음파실 참관은 여러 번 해봤지만 대강 설명을 듣고 지나갈 뿐, 실제로 해본 적이 없었기에 두려움, 설렘, 기대감에 소름이 쫙 돋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전공의의 도움으로 나도 차근차근 랜드마크를 따라 carpal tunnel을 찾았고, 위로 올라가 FDS, FDP 사이로 지나가는 median nerve도 볼 수 있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그만두고, 오늘 알려줘서 연신 고맙다는 나에게 자기는 여기 계속 있으니까 다음에 원하는 곳 어디든 (어깨, 발, 다리) 더 해볼 수 있다고 말해주던 전공의가 무척 고마웠다.
해부학은 본과 1학년 이후로 접하지 않다가 재활의학 실습을 하면서 다시 공부를 정말 많이 했다. 초음파를 더 해보고 싶은 기대감에 다른 해부학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아쉽게도 사정이 안 되어 다시 초음파를 배워볼 기회는 없었다.
재활의학 전공의들이 목요일 오전마다 강의를 듣는데 나도 껴서 듣게 되었다.
첫 번째 시간인 TBI & stroke 리뷰는 다 같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팀을 나눠 퀴즈를 맞히는 시험이었다. 교수님이 핸드폰에 적어온 질문을 읽어주면 답을 아는 팀이 손을 들어서 대답하고, 잘 모르면 객관식으로 보기를 알려준다.
책상이 일렬로 칠판을 바라보는 게 아닌, 어릴 적 영어학원처럼 서로 둥그렇게 마주 보게 되어있는데 15명 정도가 들어서니 꽉 찼다.
(다른 일로 참석하지 못한 전공의들 덕에 자리가 비어서 다행이었다.)
전공의 강의를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GCS 점수 맞추는 문제나 TIA 의 Main cause와 같은 (난이도 하) 아는 문제가 나와 다행이었다.
“그래도 의대생이 맞는구나”라는 안도감이랄까... 하하
또 어떤 전공의가 aqueduct of Sylvius는 어느 ventricle 사이를 이을까?라는 질문에 “Can you draw it?”라고 물어보는 장면에선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동안은 나와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들 같았기에.. )
P&O, wheelchair, gait, orthosis 강의는 개념 설명과 나중에 예시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사실 stance, gait, Trendelenburg sign설명까지는 이해했으나 점점 뒤로 갈수록 놓쳐 수업을 못들은 전공의 보충 시간에 한 번 더 똑같은 강의를 들었다. 교수님한테 핀잔을 들어도 잘 모르면 질문을 하는 전공의들 덕에 Trendelenburg sign 이 어떤 기전으로, 왜 일어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혹시나 궁금한 분들을 위해…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정상과 다를 바 없으나 한쪽 다리를 들어 걸으려고 시작할 때, 반대측 약한 gluteus medius가 골반을 밑으로 잡아당겨서 안정화시키지 못한다. 결국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 abductor muscle이 약한 것, 그리고 사람은 골반이 오른쪽으로 기울여있는 걸 보상하기 위해 (넘어지기 싫어서; because humans are lazy) 왼쪽 다리를 크게 돌아 집으며 걷는다.)
<pinterest 출처 사진 참고>
강의 이후에 전공의들과 카페테리아 소파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직도 일상 대화는 … 알아듣고 순발력 있게 대답하기 어려웠지만, Korean American인 전공의도 알게 되어 즐거웠다.
(하지만 많은 전공의 속에서 위축되고 낯을 가리다 보니 점심시간 내내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는 말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이곳은 Resident clinic으로, 전공의가 먼저 환자를 문진 및 신체 진찰을 한 후 다른 방에 있는 교수에게 간단하게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교수에게 피드백을 받고 치료에 대해 상의한 이후 다시 환자에게 돌아가 진료를 마무리한다. 히스패닉 환자들이 주로 오는 곳이다. 의사소통을 위해선 스페인 통역사가 오프라인으로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 통역해주거나 진료실에 붙어있는 전화기로 스피커폰으로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는 통역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덕분에 여기가 아파요? 아끼 아끼? (Aquí : Here) 단어는 나도 배웠다. 통역사와 연결되는 전화기는 다른 외래 진료실 벽에도 걸려있기에 이 병원에선 스페인어 외에 중국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통역받을 수 있다.
여기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AADC gene therapy (AADC : L-amino acid decarboxylase)를 받았다는 소아 환자도 보았다. 책에서만 보던 gene therapy를 실제로 해본 케이스를 처음 보게 되어 신기했다. 그 환자를 본 후 나의 impression은 cerebral palsy였는데 AADC 결핍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옵저버십은 EMR이 주어지지 않고, 또 전공의 뒤에서 컴퓨터를 본다 해도 글씨가 너무 작아 사실상 진단명이나 자세한 오더를 보기 어렵다. 환자의 질환과 치료를 알기 위해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날라가는 영어 대화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았다…
책 : Physical Medicine and Rehabilitation Pocketpedia (by Matthew Shatzer, DO)
포켓북인데 2주 동안 재활의학 실습을 하며 아주 유용했던 책이다. 가운에도 쏙 들어가서 편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실습 기본서로 적극 추천한다.
https://www.benwhite.com/medicine/best-books-for-elective-rotations-and-sub-internships/
위 링크를 통해 알게 되었다. 클럭쉽 도는 본과 3, 4학년 학생들을 위한 각 과마다 추천 책이 쓰여 있다.
앱 : Visible body (앱스토어)
본과 1학년 때 쓰던 구버전이 있지만, 전공의들도 visible body 어플을 쓰길래 올해 나온 최신판을 다시 구매했다. 달라진 점은, 앱 근육을 눌렀을 때 그 움직임을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기능이 생겼달까? 아이패드에서 여러 방향으로 몸을 돌려가며 해부학 공부에 활용했다.
옵저버쉽에는 주어진 스케줄이 딱히 없던 터라, 다음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막막함은 꽤 무섭고 두려웠다.
또, 내가 입장을 바꿔 전공의라면, 바쁜 이 와중에 나 같은 학생이 정말 귀찮겠다 싶어 항상 위축되고 주변 눈치를 많이 보았다.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한동안 속이 뒤집어져 밥을 삼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뱃속시계는 일정해서 참 난감했다.)
한국에서는 의학만 배우면 되었는데, 여기서는 동시에 언어와 문화를 배워야 하니까 10배로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의대생이 없이 전공의들 틈에 껴서 배우니 내가 수련을 받는 건가 싶은 착각도 들었다.
(물론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경험은 정말 부끄럽고, 미숙했지만 적어도 다음 실습에서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는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 단지 소파에 앉아 소극적으로 누군가 나를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닌, 미지의 세계로 용감하게 스스로를 던졌다는 점에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