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돌아와 생활한지도 십 년이 다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뒤늦게 묵혀두었던 글을 모아 브런치에 올렸다.
이제 대학생이 된 딸들은 자기 이야기를 읽으며 다양하게 반응했다.
한 번씩 엄마의 기억과 자신의 기억이 다름을 지적해주었지만
난 고치지 않았다.
"내 기억은 이러니 억울하면 너희 기억을 쓰렴."
그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귀국 후 한국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특히 큰 딸 유진이에게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성인이 아닌 아이를 혼자 미국에 보낼 수도,
다시 온 가족이 이주할 수도 없었다.
해결 방법이 없으니 그대로 깜깜한 터널에 갇힌 느낌이었다.
힘든 시간 동안 난, 내 부모가 그랬듯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
무섭게 부딪힌 날도
상처되는 말이 오간 날도
다시 이 악물고 밥상만큼은 차렸다.
그래야 세상에 기댈 곳이 하나는 있다고 아이가 생각할 것 같았다.
시간은 강처럼 흘러......
오래전부터 너무 힘들 때면 되뇌는 이 문장!
역시 시간은 나에게 최고의 명약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힘든 터널을 지나
지금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게 되었다.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키워주신 부모님과
벌레 먹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법을 가르쳐준 두 딸과
물과 양분을 듬뿍 내어준 남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