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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Jun 06. 2017

출판 거절만 10번,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대반전

[다다의 그림책 작가 이야기]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강경수 작가

엄마로 시작해 엄마로 끝나는 그림책. 엄마라는 글자만 있는 그림책. 그런데도 다 보고 나면 뭔가 잊고 있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듯 울컥한 느낌을 주는 그림책. 이 그림책을 안 본 사람은 있겠지만, 보고 나서 엄마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 그림책. 강경수 작가의 <나의 엄마> 이야기다.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강경수 작가 ⓒ 강경수 제공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겉표지. 이 두 책은 중국으로도 수출, 내년 정도엔 중국 독자와도 만날 예정이다. ⓒ 그림책공작소


그의 최근작 <나의 아버지> <춤을 출 거예요>를 연거푸 읽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짧고 간결하지만, 마음을 쿵쿵 울리는 그림책. 궁금했다, 강경수란 작가가. 연재 '다다의 그림책 작가 이야기' 첫 작가로 강경수 작가를 택한 이유다. 7월 26일 서글서글한 인상의 강 작가를 만났다. 그림책을 보며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리 솔직하고 유머가 넘쳤다. 만화를 그리다 그림책을 쓰고 그리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도 그랬다.  


"연재하던 소년만화 잡지에서 잘렸어요. 인기가 없어서(웃음). 1997년 당시 만화 시장이 좋지 않았거든요. 뭘 하고 살 것인가, 선택을 해야 했죠. 먹고 살아야 하니까 놀 수는 없고... 그때 아동 출판물 삽화를 그리면 돈이 좀 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만화를 그린 지 10년. 빨리 그리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그러다 그림책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그림책은 막연히 애들용, 엄마들이 읽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뭔가 나한테 이야기를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그림책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며 공부를 한 것 같아요. 수동적으로 그림만 그리는 삽화 일에 만족을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림책 작가가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만화가에서 그림책 작가로 변신한 이유


이름없는 신인작가가 그림책 한 권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정말이지 거짓말 같은 삶을 사는 지구촌 아이들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거짓말 같은 이야기> 더미북(가제본 그림책)을 들고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출판사들을 많이 다녀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간의 그림책들과 '결'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그래도 강 작가는 확신했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라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거나, (내 그림책을) 봐줄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포기했겠죠.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스스로 의미있고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인 욕심으로 만든다기보다 공공성을 띤 책이니까 많이 읽었으면 하고 바랐고요. 그런 대의나 명분이 나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것 같아요. 몇 번의 실패를 겪은 후...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죠. 

어린이 출판물 삽화를 굉장히 열심히 그렸어요. 편집자 마음에 들게. 그때 그림책 더미북도 열심히 만들었어요. 남는 게 시간이었거든요(웃음). 그러다 편집자랑 좀 친해지면 말을 흘렸죠. '나는 원래 그림책을 그리고 싶은 사람'이라고. 편집자가 관심을 보이며 한번 보자고 했을 때 그동안 만들었던 여러 권의 더미북을 다 들고 갔어요. 좀 아니다 싶은 내용부터 보여주면서 아래로 갈수록 완성도가 있는 더미북을 배치했죠. 마지막에 '어 이거 괜찮은데?' 생각이 들게. 그렇게 나오게 된 책이 바로 <거짓말 같은 이야기>예요."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그림책 밖에서도 이어진다. 강 작가는 이 첫 그림책으로 2011년 그림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 상(논픽션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라가치상Ragazzi Award은 이탈리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수여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1년 동안 출간된 어린이 도서 가운데 픽션·논픽션·뉴 호라이즌·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부문에서 최고 아동서를 대상으로 주는 상이다. 어린이 도서 분야의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 기자말). 결이 다르는 이유로, 내용이 무겁다는 이유로 10번이나 거절을 당했던, 출판이 쉽지 않았던 책으로 말이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그림책을 쓸 때, 작가는 내용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있어야 해요. 확신이 없으면 책으로 나올 수 없죠. <세상에서 제일 바쁜 마을>(관련기사 : '괴물'로 변장한 아이, 쉼표를 찾는 지혜)도 그랬어요. 독자들이 이 그림책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본다든가 하는, 그때의 여유로움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강한 메시지를 담았어요. 그렇게 담고 싶은 확실한 메시지가 없었다면 책으로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확신이 섰다'면 책까지 가는 거예요. 물론 결과는 보장할 수 없죠. 잘 될지 안 될지, 사랑을 많이 받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비워놓고 가는 거예요. 하지만 내 이야기가 몇몇 사람들에게는 정확히 전달될 것이다라는 확신은 늘 있죠."


만화를 그릴 때는 몰랐던 감정이다. 만화는 작업량이 너무 많고, 독자들의 외면을 받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장르. 작가는 독자들의 요구에 끊임없이 맞춰야했다. 하지만 그림책은 달랐다.


"그림책은... (독자들에게) '이제부터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한번 봐주세요' 하는 것 같아요. 내 이야기에 매료되게 해서 공감하게 만드는. 만화가 독자에게 철저히 맞추기 위해 고민하는 작업이라면 그림책은 조금 더 진솔하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르인 것 같아요. 그 이야기에 공감하면 사서 재밌게 보고, 취향이 안 맞으면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 달라는 거죠. 마음적으로 편해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인간은 좀 고독해야... 괴롭지만 도움도 많이 됐다"

<나의 엄마> <나의 아버지> 작가 강경수 ⓒ 강경수 제공


최근 출간한 강 작가의 그림책에서 느껴지는 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이다. 그림만으로도 상황이,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같은 기분. 첫장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엄마'라는 말밖에 없는 <나의 엄마>가 그렇고,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춤을 출 거예요>도 그랬다. 작가의 의도였을까(관련기사 : '엄마' 글자만 있는 그림책, 그래도 눈물 나, "지금은 춤을 출거예요, 춤이 좋으니까요").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간결해진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게 변해요. 그러면서 점점 더 간결한 주제로 가는 것 같고. <나의 엄마>의 경우, '엄마'라는 말을 한 글자 써 넣고 주변 상황을 그림으로 보여주면, 거기에 수많은 텍스트가 겹겹이 쌓여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느끼게 하는 거죠. 글로 보이진 않지만, 상황이나 이런 것들로 인해 느낄 수 있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것을 장치해 놓는 거예요. <춤을 출 거예요> 같은 경우도 마지막 장면에서 글이 완전히 빠져 버리잖아요. 하지만 이제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말했던(나는 춤을 출 거예요) 것을 유추해보면 독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걸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말이에요. 그건 우리가 경험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이 그림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글이 단순해져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데까지 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이유 때문인지 강 작가는 우리가 많은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식 이야기보다는 큰이야기에 관심이 간다고 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강 작가가 그림책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운명의 그림책은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 강 작가는 이 그림책을 "몇 페이지 안 되는 짧은 그림책에 인생과 사랑을 통째로 담고 있다"고 소개하며 자신도 이런 메시지를 그림책에 담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강 작가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이미 그런 스타일의 작가로 들어선 듯하다. <나의 아버지>에서 그런 의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세대를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인생은 굴러가는 것이잖아요. 계속 돌고 도는 원형 같은 것. 아버지의 유전자가 내게로, 내 유전자가 다시 내 아이에게로. <나의 아버지>는 가족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예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죠. 아버지와 아들 간의 어떤 생활적인 부분이 아니라, 인생 전반적인 것들에 대한 큰 이야기를."


인생이 담긴 그림책이라...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그리고 쓰기는 어떨까. 특히나 그림책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는 장르가 아닌가. 그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했다.


"10대 초반도 그렇고 20대 초반 수련의 고독을 많이 겪었어요. 만화를 하다보면 자기 혼자 수련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거든요. 외롭고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마치 산 속에서 수련하는 것처럼. 딴 걸 생각할 수 없죠. 오히려 그때 상상력이 가장 풍부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영화광이었거든요. 스토리를 많이 짜고 내가 원하는 주제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굉장히 도움이 됐던 시기예요.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작가에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인간은 좀 고독해야... 그때는 괴롭지만 도움이 돼요."


만화가에서 그림책 작가로 전업한 뒤 첫 그림책으로 세계적인 그림책 상도 받았지만 좋은 건 잠시, 그에게도 슬럼프가 왔다. 그런(세계적인 상을 받을 만한) 수준의 그림책을 또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하면 망한다"고 웃던 강 작가는 "만화를 하면서 인생을 쓴 맛을 많이 봤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도 '그림책 작가는 1쇄 작가'라는 말까지 나도는 이 판에서 이 정도(?)면 꽤 잘 나가는 작가에 속하는 거 아닐까.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내고 싶은 그림책을 내기 위해서는 다른 일을 계속 맡아해야 했다. 강 작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림책 작업만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장르라서 하는 것이지 그림책으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림책 작가를 하려면 투잡을 가져야 해요. 그림책 작가를 하되, 메인으로 하지 말고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게 좋아요. 물론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죠. 그렇지만 그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에요. 저 역시 그림책만 하지 않고 부수적으로 굉장히 많은 일을 하거든요. 그런데 고민은 돼요.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정도인 건지 그건 저도 아직 의문이에요."


'삶과 작품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강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린이책으로 코믹 첩보물이란다. 또 차기 그림책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소방관 이야기. 아,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이 기시감은 뭘까. 그 이야기, 빨리 보고 싶다.


강경수 작가의 작업실 전경 ⓒ 강경수 제공

- 이 글은 베이비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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