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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Jun 18. 2018

남편의 집에 대신 들어오신 시어머니와의 조우



어머님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건 휴혼 한 달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날 부부 싸움 중, 남편이 말도 안 되는 모함을 해댔다. 남편의 고질병 중 하나가 시어머니가 하지도 않은 말씀을 했다고 해대는 것이었다. 내가 꼴 보기 싫다고 했다느니,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느니, 그 레퍼토리는 다르면서도 결은 비슷했다. 몇 번 당하고 나니 기도 안 찼다. 하지만 그날은 분한 마음에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며, 남편 앞에서 시어머님께 전화를 하였다. 오빠가 이런 말을 하던데 혹시 정말이냐는 내 물음에 두어 번 이런 전화를 받은 어머님도 한숨을 쉬시며 “그럴 리가 있겠니라고 하신다. 그러면서도 평소엔 타이르고 중재하시던 어머님이 그날은 다른 말을 하셨다.


“내가 보기엔 너희 둘 성격이 너무 안 맞는 것 같은데, 이젠 시현이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려무나. 아이를 못 키우겠으면 엄마가 다 키워줄 테니까 이젠 시현이 편한 대로 해."


그 말에 나는 “아이는 제가 키울 거예요. 다만, 지금은 제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잠깐만 봐주시면 제가 자리 잡히는 대로 데리고 갈게요라고 했고, 어머님은 내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날 우리 둘은 펑펑 울면서 통화를 했고,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회한과 죄송함 때문에 하염없이 울고 말았다. 한참을 오열하다가 이내 울음이 잦아들고 그쳤을 때쯤, 신기하게도 내 마음과 정신은 맑았다.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미련, 후회, 아쉬움, 두려움 등이 많이 옅어져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남편과의 헤어짐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회복되었고 별일 없이 사나 싶다가, 순식간에 불어온 돌풍에 뼈대가 약했던 우리 관계는 내려앉고 말았다. 시가와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고, 다시 할 용기도, 명분도 없이 도리에 어긋난 찜찜함을 모른 체하고 지냈다. 이 모른 체는 급기야 시부모님에 대한 미움으로 번졌는데, 지나고나서 보니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였다. 시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으면 여태껏 연락드리지 않는불효를 견딜 수 있는 기제가 없었다. 어떤 이는 내게 “아니, 이사 날짜를 합의하지도 않고 그냥 통보했다고? 살고 있는 며느리 그냥 밀고 들어오겠다는 거 아냐?”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는데 당시엔 그런 거 아니라고 받아쳤지만 시간이지날수록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남편과 말다툼 하던 중 “나만 없으면 된다며? 나만 나가면 불쌍한 엄마, 아빠 당신이 모시고, 어머니도 힘들게 요양 병원에서 일 안 하시고 당신 월급으로 편하게 사실 거 아냐? 결국 당신 원하는 대로 됐네!”라고 소리쳤다.

  

분노, 미움, 배신감, 의심으로 뭉친 자격지심 때문에 매일 손자를 알뜰살뜰 보살피는 어머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아쉬운 것만 눈에 들어왔다.


일교차가 큰 가을,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들은 기모 바지를 입고 있었다. 10월에 기모 바지라니! 황당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보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농담을 건네셨다. “엄마 없는 티가 나죠?” 충격적이지도, 놀랍지도 않은 말이었다. 방금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거즈 수건을 매일 목에 두르고 다니는 모습 역시 보기 싫었다.  흘리는 아기도 아니고 대체 왜 매일 거즈 수건을 목에 두르는지. 남편에게 ‘제발 엄마 없는 티 좀 안 나게 해주라’, ‘기모 바지는 12월부터 2월까지 입는 거야라고구구절절 메시지를 보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허리 수술한 남편과 어린이집 다니는 어린 손자 돌보느라 살이 쪽 빠진 엄마에게 말할 수 있는 아들이 아니었다.


11월 부모 교육 스터디 날의 일이다. 그날은 맥주 한잔을 빌미로 다들 자녀를 데리고 한 집에 모였다. 바로 하원한 아들은 그날도 기모 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던 엄마들은 기함하였다. “10월부터 기모바지 입고 다녔어요라는 체념한 듯한 내 말에 다들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그 집 아이 내복을 빌려 갈아입혔지만 덕분에 엄마와 할머니의 양육 방식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걸 왜 남편과 시어머님만 눈에 안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여전히 ‘내기준으로는 한 벌만 입어도 되는 날씨였지만, 어린이집 사진첩에 올라온 아이는 두 겹을 입은 채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주, 알림장 ‘부모란에 글을 적었다. 물론 그 알림장은 하원 후, 시어머님도 매일 확인하는 알림장이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등원 후 겉옷은 벗기고 내의만 입혀서 지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원은 따뜻해서 땀을 흘리니까 바깥 공기를 쐬면 감기에 걸리는 것 같아요.


솔직히 여 보라는 심정이었다.        

 

매주 수요일, 그 동네 도서관에 강의가 있어서 가던 길, 우회전하는 순간 바로 앞에 낯익은 차가 보였다. 남편 차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 시각은 오전 아홉 시 30, 남편은 회사에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저 차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마자 바로 차를 갓길에 세웠다.  20미터 앞에는 신호 대기에 멈춰 선 시어머님이 운전하고 있을 차가 보였다. 초록불로 바뀌고 어머님 차가 사거리를 지날 때까지 나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백미러로 나를 보셨는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았다. 이미 갓길에 차를 세운 것부터 돌이킬 수 없다. 대체 나는 왜 숨은 것일까? 아니, 숨겠다는 목적을 완벽히 달성은 한 건가?


그런데, 어머님과 마주쳐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매주 금요일 아이 인도를 기똥차게 책임지던 남편이, 그날은 회사일이 늦어져서 칼퇴근을 못한다고 하는 게 아닌가.


“어머님께 말씀드려놓을게라는 남편 말을 못 들은 체하고 “애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1층으로 내려 보내. 내가 1층에서 기다리면 되잖아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릴 해댔다. 남편은 화도 내지 않고 “혼자 타면 울어했고 나는 혼돈에 휩싸여 더 이상 헛소리조차 하지 못했다.“그때 아버님 허리 수술하고 안부 메시지 보냈는데 어머님이 답 없으셨단 말이야. 나 어머니 불편해라고 속내를 털어놓자 남편은 “그냥 인사만 드려. 집에 다 와 가면 나한테 전화해, 어머니한테는 내가 전화할게라고 한다. 아이를 안 볼 수도 없고, 그날 하루 종일 속이 안 좋았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남편 집에 도착하기 10분 전,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웬걸, 남편이 집인 낌새다. 휴혼 후 가장 반가운 목소리로 남편에게 소리쳤다. “뭐야, 여보! 집이야?”


그렇게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이주일 후, 나는 또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혼비백산했지만 두 번도 경험이라고 그러려니 싶다. 언젠간 맞아야 할 상황, 약간의 체념이 섞여있는 듯하다.1층 공동 현관문 앞에서 고민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냥 들어가도 되나, 아니면 호출을 해야 하나?


805호, 호출-


자기 집을 호출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처음 들어보는 호출 벨소리가 낯설다. 문이 열렸다.


1층에 들어서서 서성였다.  금바로 올라가면 애매하다. 아이가 겉옷 입고 신발 신고 나올 때까지 좀 걸릴 것이다. 8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기도,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뭣하다. 1층에서 적절한 시간을 보낸 후 올라가는 게 나아 보였다. 하릴없이 아파트 게시판 유의물을 읽었다.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엘리베이터를 탔다. 1, 2, 3…… 거울을 본다. 웃어야 하나? 4, 5, 6…… 커트머리 오랜만에 보시겠네. 긴 머리가 예쁘다고 하셨는데. 7, 8, !


문이 열리자마자 예상치 못한 아이와 어머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 어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말았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걸음 걸어 나온 그 자리에 선 채, 어색하게 아이 손을 건네 잡고 어머님이 주신 아이 짐을 받아든다. 다시 뒷걸음질로 한 걸음 옮기려는 찰나, 어머님이 물으신다. “들어왔다 갈래?”     


 나는 거실에 꿇어앉은 채 신난 아이가 찰흙을 가지고 노는 걸 보지만 집중이 될 리 만무하다. 소파에는 아버님이 아무 말 없으신 채 앉아 계시고, 어머님은 아이 생활에 대해 간간히 말씀하신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 어린이집에 갈 때는 할아버지한테 ‘하부지, 다녀오게씀미다하고는 자기 인형 가리키며 ‘뿌잉이랑 가치 기다리고 이써어, 아라찡?’ 하고선 간단다."

“밥도 얼마나 잘 먹는지 똥을 이만큼씩 싸."

“옷 사이즈가 애매하더라, 110 입히려니 배가 찡기고 120은 또 너무 크고……”


어머님과 나만 말을 주고받고, 모두가 아이만 바라보고 있다. 아이가 없었다면 서로 눈길은 어디에 가 꽂혔을지 궁금할 정도로. 언제나처럼 어머님은 “밥 먹고 갈래?”라고 물으셨고 그 말씀의 의중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두 번의 권유와 두 번의 거절. 배가고프지 않았거나, 불편하거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진짜 이유는 이거다. 아파트 공동 현관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를까, 호출을 할까 하던 순간,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보며 웃어야 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일상적인 순간들이 비일상적이게 된 지금, 밥을 먹는다면 나는 또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설거지를 해야 하나, 놔두고가야 하나. 며느리와 손님의 저 어디 중간쯤인 느낌.    


15분 정도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아니, 시간은 모르겠다. 정말 짧은 것 같기도, 긴 것 같기도 한 시간이었으니까. 내내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께 인사드리고, 어머님과 함께 1층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아이를 차에 태운 후 어머님 앞에 섰다. “어머님, 죄송해요.” 어머님을 안았다. 어머님은 울먹거리신다. “시현아, 나는 네가 너무 불쌍해서……”


정말 뜻밖이었다. 어머님은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실 줄 알았다. 속사정이 어떻든 아들과 손자 놔두고 나간 며느린데, 저런 마음이 안 드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아니, 어쩌면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실지 모른다. 눈앞에서 며느리를 마주하니 정 많고 마음 약한 어머니의 천성이 드러난 것일 뿐. 며느리의 과오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만으로 품으려 하시는구나. 나 혼자 지레 겁먹었구나. “어머니, 저 하나도 불쌍하지 않아요. 정말 잘 지내요.” 목소리에도 팔에도 힘이 들어갔다.



아파트 후문으로 빠져나오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나도 모르게 내뱉었다. “역시 좋구나……” 시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특유의 편안함, 안정감, 따뜻함. 그 어떤 못된 마음도 녹아내리게 하는 두 분만의 아우라. “들어왔다 갈래?”라는 생각지도 못한 어머님 말에 얼떨결에 “그럴까요?” 대답한 그 순간으로 필름이 되돌아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 안은 따뜻했다. 어머님은 바로 아이 옷을벗기며 말씀하셨다. “땀 나면 감기 드니까 벗고 있자.”


순간 나도 모르게 핸들을 내리쳤다. 참 얄팍하다. 못나 죽겠다. 그놈의 알림장, 찢어버리고 싶다.


 다음 주, 남편의 출장 때문에 나는 또다시 어머님과 조우를 해야 했는데,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탔으며, 8층 집 벨을 누른 후, 집 현관에서 아이를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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