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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Nov 22. 2021

코로나19 시대의 호사스러운 퇴사

'팀원들을 다시 한번 동그랗게 이어주는 끈이 되었다'


마지막 3일,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럽고 행복한 축제였다.


순간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릴 거 같아 이제야 자판을 두드린다. 오래 근무한 회사다. 입사하자마자 결혼하고 아이을 낳고, 퇴사 직전 엄마 떠나보낸 곳. 내 삶흔적기저기 넘치는 곳이다. 기억 저장소에 15년 동안의 이야기 그리고 떠나던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회사를 다니 수시로 퇴사의 귀로에서 망설였다. 하지만 뚜렷한 목적 없는 내적 갈등, 일명 투정 망설임을 금세 잠재운다.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다시 일상에 스며든다. 이번에는 달랐다. 확고함을 오래 붙들고 있었다. 더 늙고 낡기 전에 경력을 더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도전이었다. 안주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현재 상황에서 내 발전과 미래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늦으면 더이상 갈 곳도 없고 삽시간에 치워질 퇴물이 될 것 같았다. 사회에서 4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이렇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이직 준비를 결심했을 때 엄마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때가 아니라 여겨 일단 이직 준비를 접었다. 병원에 있는 엄마 곁에 한참을 머물고, 엄마를 떠나보내고, 퍼하고 아파하고, 주변조금씩 정리는 중이었다. 일상으로 복귀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축 서류 합격' 메일 한 통과 헤드헌터의 전화가 동시에 왔다. "축하합니다"  오래전 헤드헌터를 통해 서류를 넣었다는 사실도 잊고 지냈다. 한 달도 더 걸린 통보였다. 마치 나의 곡절이 지나가길 기다렸다는 듯한 소식. '경험 삼아 면접 한 번 보지 뭐' 자신감 부족한 나에게 전하는 토닥임이었다.


인연이라는 게, 운명 혹은 타이밍과 기회라는 게 분명 존재했다. 순식간에 1차, 2차, 3차 면접을 거쳐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기뻤지만 너무 빠른 전개에 난처했다. 최소 퇴사 한 달 전 회사에 알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디데이를 잡았다. 조용히 얘기하고 싶었다. 제일 먼저 출근해 팀장을 기다렸다. 그런데 팀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리에 앉자마자 통화를 시작했다. 40여 분간 통화가 이어졌다. 전화를 끊었을 때 팀장 기분은 바닥에 깔려 흐르고 있었다. 온종일 그 기분이 바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은 분위기였다. 수시로 자리 비워 타이밍은 계속 엇박자였다.


추석 연휴가 도래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말하고 업무 인수인계 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초조했다. 오전 내내 보이지 않는 팀장에게 면담 신청 메모를 보냈다. 점심 먹고 돌아왔다. 양치도 하기 전에 팀장과 면담을  후 직속 후배들을 불러 퇴사를 알렸다. 업무 인수인계 시작다. 팀장이 실장에게 보고를 했고, 순식간에 모든 팀원이 알게 됐다. 건너 건너 소문을 들은 동료들의 메신저가 빗발쳤다. 15년을 함께한 회사와 동료들이기에 마음이 물컹거렸다.


실행력이 남다른 기획팀답게 송별회 일정이 일사천리로 잡혔다. 추석 연휴가 끼었고, 2명 이상 모임이 금지 시기였다. 백신 접종 완료자를 주축으로 두 조로 나눠 월, 화 양일에 걸쳐 저녁 식사 했다. 그리고 마지막 출근일인 수요일에는 회의실에 모여 조촐한 이별식을 가졌다. 케이크에  하나 새로운 출발을 축하받고, 따듯한 이별 선물 건네받았다. 나이 먹어 눈물이 부쩍 많아졌지만, 왠지 미안한 마음이 커 울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베프 후배 커플에게 저녁 초대를 받았다. 한강과 도시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회사 건물 꼭대기층. 마지막 만찬이라 그런지 아무 감흥 없던 이곳이 유난히 근사해 보였다. 고마움과 또 한 번의 미안함에 가슴이 뜨거웠다.


호사스러운 마음으로 송별회를 실컷 즐기고 누렸다.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는, 정과 따스함이 맞닿은 순간이었다. 고마움과 아쉬움, 안타까운 각양각색의 감정이 요동쳤다. 언제나 익숙한 동료, 배려 넉넉한 팀장, 지난한 세월을 함께한 곳에서의 이탈, 갈팡질팡 애매했던 결심 마지막 순간의 따스함과 포근함으로 완성 기분이었다.


불과 얼마 전 팀원들과 엄마를 보낸 아픔을 나눴기에 마음이 애잔했다. 만남과 헤어짐, 이별과 슬픔, 아쉬움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거대한 이별을 겪고 나니 이번 이별은 작게 느껴졌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이별일 테니까. 후배 중 한 명이 "역대급 퇴사 파티네요. 다음 퇴사자는 무조건 서운할 거 같은데요?"라는 말로 아쉬움을 전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사람들을 뿔뿔이 갈라놨다. 동료애 조차 조각나는 요즘, 퇴사라는 이벤트가 팀원들을 다시 한번 동그랗게 이어주는 끈이 되어주었다. 소박하고 짤막한 모임이었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호사스럽고 행복한 축제였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사랑스러운 말


마지막 출근 다음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의 49재를 지냈다. 동료들과의 이별에 이어 엄마와의 찐한 이별까지 마치고 한층 맑은 마음으로 후회 없는 새 출발을 다짐했다.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음이 분한 요즘이다. 여전히 적응 중이라 바쁘고 피곤하다. 하지만 육체보다는 역시 정신 건강이 우선이다. 가족 같았던 팀장과 후배들이 건넨 따스한 에너지가 아직도 남아 흐르는 듯하다. 고맙고 또 고맙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음에 오늘도 여전히 가슴이 따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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