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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n 24. 2022

누나를 바라보는 아들의 남다른 시선

"나가! 나가라고!"라는 괴성이 몇 차례 들리면 하루가 끝난다"


살 터울 누나랑 거의 매일 카톡을 주고받을 만큼 가깝게 지낸다. 나이가 들어서부터는 누나에게 속마음도 쉽게 털어놓는다. 분명 서로에게 관대해졌다. 엄마가 떠난 단톡방에 덩그러니 둘만 남았지만 여전히 많은 대화를 나눈다.


누나와의 관계가 평생 이렇게 어어진 것은 아니다. 함께 살며 부대끼던 시절에는 몸싸움까지 해가며 우애를 다졌다. 현실 남매 비슷했.  매사 불며 누나를 약 올리는 동생. 누나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 부모님께서 종종 농담 반 내가 누나 성질을 버렸다는 말씀도 하셨다. 나는 억울함이 을 텐데 잘 참고 살 듯하다.


살 터울 남매를 키운다.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처럼 깔깔거리다가도 순식간에 원수로 돌변다. 


다시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들은 밤늦게까지 누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나가! 나가라고!"라는 괴성이 몇 차례 들리면 화를 내면서 마지못해 나온다.  어린 시절보다 누나랑 잘 지내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알쏭달쏭한 관계.


타까운 건 서로 싫다며 대립할 때는 누구 편을 들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소소한 일이기에 잘잘못을 따지기도 애매하다.


예를 들자면 "아빠! 장ㅇㅇ이 씻지도 않고 내 침대에 누웠어요" 같은. "아빠! 누나가 방금 지나가면서 일부러 저를 쳤어요!" 같은.


누나랑 내 사이와 다른 점은 아들이 당할 때가 조금 더 많다는 거다.  닮아 약삭빠른 딸 덕에 아들 속수무책 뒤집어쓸 때도 있다. 아들은 자주 "아빠는 맨날 누나 편만 들잖아요!"라고 항변하곤 한다. 딸아이 표정을 살펴보면  들이 당했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어릴 때는 가족처럼 때로는 원수처럼 지내는 모습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길을 지나다 마주쳐도 모르는 사이처럼 스쳐 지나는 게 형제나 자매가 아닌 남매라고 하니까. 


하지만 이는 가족애를, 인간관계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우리가 경험하는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동화 작가다운 조지 맥도드의 아름다운 말이다. 모든 순간은 멋진 배움이고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누나에 대한 아들 마음을 확인하고 흐뭇했다. 6학년 아들 학교 수업 중에 누나(형제) 어떤 관계인지를 적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아들은 '친구 같은 누나'라고 적었고, 누나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말에는 '나의 놀이터'라고 다. 누나 친구 같고 함께 있으면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재미있다 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함께 식사하던 딸은 동생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동이 아닌 '왜 저래?'라는 표정이었다.


누나와 요즘 가장 많이 나누는 이야기는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이다. 내일모레면 둘 다 오십이다. 부모님이 모두 떠나고 나니 이제야 부모님 마음이 보인다. 함께 미안함을, 마음의 짐을 나눌 누나가 있어 참 다행이다. 엄마, 아빠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각자의 기억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감회는 매 순간 마음에 서린다. 형제가 있다는 커다란 축복이.


요즘에는 남매가 함께 태권도 도장에 다닌다. 중학교 2학년 된 딸이 갑자기 운동 하고 싶다며 택한 게 태권도다. 딸은 동생과 같은 도장에 다니길 원치 않았지만, 밤에 끝나기 때문에 함께 다니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하지만 역시! 도장에 갈 때도 들어올 때도 늘 따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씻고 난 후 누나 방으로 향한다. 몇 차례의 웃음과 한 번의 고성이  우리 가족의 하루마무리된다.


중학생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들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나도 어릴 때 누나를 좋아했다. 세 살 차이였지만 참 든든했다. 다 크고 나니 괴롭혔던 기억만 여기저기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조지 맥도드의 말처럼 멋진 경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아이들도 서로 오래오래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 싸워도 괜찮다.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멋진 경험을 하는 중이니까.


관련 글: 누나에게 전하는 뒤늦은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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