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밑을 까맣게 물들이는 껍질 까는 수고로움
며칠 전 추석이 코앞인데, 고무마순 한 보따리를 받았다. 텃밭을 일구는 지인이 주었다며 둘째 딸이 한아름 안고 왔는데 부피가 제법 컸다. 그간 반찬가게에서 조리된 나물만 사 먹었지, 껍질 벗기기 전 고무마 줄기는 오랜만에 본다. 지금이 제철인가? 혹은 고구마 줄기, 고구마순, 어느 이름이 맞나? 사소한 호기심에 피식 웃으며 보따리를 풀었다.
고구마순은 9월부터 고구마 캐기 전까지, 바로 지금이 제철이다. 고구마 줄기, 고구마순 둘 다 맞는 이름이다. 국민 나물 반찬으로 불릴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나물인데, 여느 나물처럼 다듬고 데치는 과정이 수고롭다.
예전에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먹었던, 들깨향이 가득했던 촉촉한 고구마순 나물! 엄마 옆에서 나물을 자주 다듬었었는데, 막상 고구마순을 손에 쥐니 살짝 헛갈렸다. 이파리를 먹었던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줄기의 껍질을 벗겨 내렸다.
똑똑 줄기를 꺾으며 껍질을 벗기는 맛이 재미지고, 연한 빛깔로 쌓여가는 고구마 줄기가 뿌듯해질 때쯤 손가락 끝이 약간 아려왔다. 마늘처럼 매운 게 아니어서 대비를 안 했는데, 엄지와 검지 손톱이 때가 낀 듯, 손가락 끝이 거친 일을 한 듯 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노동의 흔적은 언제나 거짓이 없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식탁에 올리는 일은 언제나 진심이 가득한 일이다.
고구마순 요리를 위해 검색해 보니, 예상대로 섬유질이 풍부해 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등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나물이었다. 항산화 성분과 면역력을 강화하고, 세포 손상을 억제하는 비타민C, 베타카로틴 등이 풍부하고 루테인과 안토시아닌 등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성분도 많다고 한다. 혈압 안정과 콜레스테롤 관리, 빈혈과 골다공증 예방 등에도 탁월하다고 한다.
아삭한 식감으로도 일품인 재료인데, 소량의 옥살산이라는 성분이 있어 신장 결석의 위험을 막으려면 반드시 삶아낸 뒤 물을 버리고 요리해야 한다고 한다. 줄기를 쉽게 벗기려면 소금물에 살짝 데친 후 벗기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꿋꿋하게 앉아 껍질을 모두 벗기고 나니 나물 양이 반으로 줄었다.
지난번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고무마순 김치에 관심이 갔으나, 일단 나물 반찬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 고구마순의 이파리를 떼어내고 보라색 질긴 껍질을 잘 벗긴다.
♡ 씻은 후 물이 끓으면 소금을 넣고 고구마순을 데친다.
♡ 찬물에 헹구며 남은 껍질도 벗겨 깨끗이 다듬는다.
♡ 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달 볶는다.
♡ 국간장, 액젓, 소금 등으로 간을 하고 뚜껑을 덮어 푹 익힌다.
♡ 파, 마늘, 홍고추 등으로 양념하고 참기름과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말려서 꼬들하게 먹어도 맛있다 하니 남은 것을 말려볼까 생각도 해 본다. 관심을 기울이니 9월에 전국적인 고구마순 축제가 열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라도 익산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고구마순 관련 축제가 이어지고 있었다. 고구마순 김치 상품화 성공 덕분에 MZ 사이에서 고구마 김치가 인기라고 한다. 둘째 입에서 고구마 김치 담가 볼래요,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고구마순 김치 만들기
♡ 고구마순 나물 만들 때처럼 소금물에 데쳐 헹궈 물기를 뺀다.
♡ 양념(고춧가루, 마늘, 생강, 약간의 소금, 설탕)을 넣어 버무려 김치를 만든다.
♡ 사과와 양파를 찬밥과 갈아 양념을 더한다.
♡ 채 썬 양파와 어슷 썬 파를 넣는다.
♡ 고구마순 김치는 통영의 제례음식이며 딸이 시집갈 때 이바지 음식용으로 쓰였다고 한다.
♡ 풋고추, 붉은 고추를 다져 넣기도 하는데, 소금물에 데치지 않고 소금에 절여 바로 만들기도 한다.
잘 볶아낸 고구마순 나물을 추석 차례상에 올릴 수 있겠다. 예전 나물 다듬던 기억으로 엄마와의 그 시절을 추억하듯이, 딸들도 어느 땐가 고구마순을 보면 오늘을 떠올릴 것이다. 짭조름하면서 아삭한 고구마순 나물을 먹으며 손톱 밑이 파랗게 물들 듯 추억으로 젖어들 것이다. 며칠이 지나 고구마순 김치가 익으면 그 별미에 또 빠져들 테니 미리 설렌다. 손톱 밑 물듦이 이제는 괜찮아 보인다.
고구마와 고구마 줄기까지! 밭에서 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니 참 고맙다. 밭을 건강하게, 땅을 비옥하게 보호하는 게 우리의 살 길이다.
이 글은 방금 10/6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