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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칼칼한 대구탕에 피망 가득 윤기 나는 고추잡채!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챙기는 힘!

by 도시락 한방현숙

날이 차다. 고개를 숙여 옷깃을 여미고, 앞만 보고 잰걸음으로 바람을 피해 걷는다. 가을, 10월, 청명한 하늘, 따사로운 햇빛, 쾌적한 공기가 갑자기 사라진 저녁이다. 내일은 좀 더 따스하게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둘러 귀가했다.


저녁 준비를 위해 냉장고를 여니 생각지 못한 식재료가 보인다. 이틀 전 1마리에 8,000원을 주고 산 대구, 연이은 저녁 약속으로 깜박 잊었다. 생선가게 사장님이 덤으로 준 수북한 조개까지 더하니 냄비가 가득 찼다. 으스스한 날씨에 더할 나위 없이 제격인 대구탕이 떠올랐다.

제대로 만들어 본 적 없는 대구탕 끓이기 도전! 서둘러 검색하니 양파 반 개를 갈아 즙을 내면 국물에 감칠맛을 더할 수 있다는 레시피가 돋보인다. 콩나물도 없고, 미나리도 없지만 후다닥 무를 썰며 대구탕을 끓였다.

* 냄비에 다시마 조각과 무, 물을 넣고 끓인다.
* 끓는 물에 조개(모시, 백합)를 넣고 끓어오르는 거품은 국자로 걷어 낸다.
* 대구를 넣고 국물이 다시 끓으면 양파 반 개 간 것, 홍게 간장, 소금으로 간을 한다.
* 청주와 후추, 마늘, 생강가루 등 비린내를 없앨 재료를 넣는다.
* 채 썬 남은 양파 반 개와 파, 청양고추를 넣어 마무리한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인 맑은 대구탕이 완성되었다. 번거롭지 않게 간단하게 만들어서 그 맛이 더 빛났을까? 제철 식재료인 대구의 별미를 잘 살렸기 때문일까? 부드러운 대구살은 고추냉이 간장을 만들어 살짝 찍어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숙취 해소에 최고라며 엄지 척을 보이는 딸내미 반응에 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두부, 버섯과 미나리 등 각종 채소까지 제대로 곁들인다면 얼마나 더 시원하고 맛있을까?

대구(大口)는 큰 입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큼직하고 담백한 흰 살 생선으로 차가운 겨울 바다에서 잡히는 귀한 생선으로 유명하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재료로 만든 대구탕은 소화 흡수가 잘 되고, 비타민 A와 D가 풍부한 애와 곤이까지 대표적인 저열량, 고단백의 건강식이다. 국물 요리가 그렇듯 나트륨 함량이 걱정된다면 국물 섭취량을 조절하여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


뜻밖의 요리 성공으로 신이 나서 다른 음식까지 내처 만들기로 했다. 추석 연휴 때 만들려던 미완의 요리, 고추잡채를 요리할 절호의 날인 듯하다. 요리에 진심인 날은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 최고의 맛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며칠 째 냉장고를 지키고 있는 고추잡채 주재료인 피망과 남은 양파를 채 썰었다. 자투리 버섯과 당근도 꺼내며 냉동실 돼지고기를 서둘러 해동했다.

잡채에 들어갈 다양한 채소도, 꽃빵도 없는 고추잡채일 테지만 왠지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을 믿으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채소를 볶기 시작했다.

* 잡채용 돼지고기에 청주, 마늘, 후추, 생강 등을 넣어 잠시 재어 놓는다.
* 양념이 밴 돼지고기에 감자 전분 가루를 적당히 뿌려 버무려 놓는다.
*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전분 가루 묻은 돼지고기를 젓가락으로 떼어가며 볶는다.
* 피망을 꼭지와 씨를 뺀 후 적당히 채 썬다
* 양파, 당근, 버섯 등 채소를 채 썬다.
* 마늘, 소금, 후추, 청주, 생강가루 등 양념을 넣어 빠르게 볶는다.
* 굴소스로 마지막 간을 맞춘 후 통깨를 뿌린다.
* 피망이 물러지기 전 빠르게 볶아내는 게 중요하다.

역시 오늘은 요리가 제대로 되는 날이다. 서둘러 만든 고추잡채 또한 접시에서 빛난다. 피망은 한 개만 먹어도 성인 하루 필요량이 채워질 만큼 비타민C가 가득한 채소라는데 7개를 볶았으니 오늘은 비타민C 대잔치 밥상이다. 일반적으로 홍피망이 청피망보다 재배일이 20일가량 더 길어서 비싸다고 한다. 그 새 청피망이 익어 홍피망이 2개나 되었으니 덤을 얻은 듯 마음이 가볍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추의 품종을 개량하여 매운맛을 없앤 피망은 조직이 견고해서 가열 조리 시에도 비타민이 잘 파괴되지 않는 우수한 식재료이다. 피망을 손쉽게 구입해 사시사철 먹을 수 있으니 고맙다. 피망을 다듬을 때 꼭지 부분을 꾹 눌러 구멍을 낸 뒤 꼭지를 떼어 내면 손질이 쉽다.


시원 칼칼한 대구 맑은 탕에 피망 가득 윤기 나는 고추잡채!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갓 지은 따끈한 밥에 대구탕과 고추잡채를 먹으니 갑작스러운 추위에 움츠러든 몸이 풀린다. 1시간 여 동안, 후다닥 쉽게 만든 요리 덕분에 즐거운 밥상 앞에서 가족들의 대화가 이어지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학교 복지사로 수련 중인 둘째는 아이들과 함께 연습한 '바람의 빛깔'을 수어로 노래한다. 곧 다가올 축제 때 공연할 장면을 식탁 앞에서 먼저 선보인다. 아름답고 따스한 수어의 몸짓이다. 국어 교사인 첫째는 학습공동체에서 배운 '연극과 놀이를 통한 수업'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힘든 학교 생활에 지친다면서도 수업과 아이들을 말할 때는 눈빛이 초롱하고 입꼬리기 올라간다. 열정과 희망은 늘 감동적이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도 회사의 어려움을 살짝 비친다. 뜨거운 국물을 꿀꺽 삼키며 해결할 의지를 다지니 믿고 기다린다. 후다닥 쉽게 만든 요리로 이리 큰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니 즐겁다.


오늘 하루 직장에서 밥벌이하느라 고단했을 가족들! 퇴근길 집에 오느라 이리저리 치이고,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추위에 떨었을 가족들에게 따스한 밥상을 안겨서 기분이 좋다. 소박하지만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서로의 눈빛과 손짓을 살피며,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챙기는 일! 식사 후에도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집밥의 묘미, 밥상머리 대화, 식구(食口)의 진정한 의미가 이런 게 아닐까? 가족의 힘이고 집밥의 축복이다.


이 글은 방금 10/22일자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

https://omn.kr/2fq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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