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젊은이의!
얼마 전 가족들과 다녀온 브런치 10주년 기념 팝업 전시회! 출판과 글짓기 관련 전시답게 사색과 성찰로 이어지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의 꿈'이라는 주제와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된다'는 부제로 이어진 자리! 다양한 콘텐츠가 반가웠는데, 특히 '작가의 꿈을 여는 10가지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여행, 미래, 사랑, 일, 가족 그리고 책, 아름다움, 고민, 처음, 도전! 작가의 꿈을 여는 작은 불씨로 선정된 단어들이지만 관람객 누구라도 어느 한 단어를 골라 생각을 담을 수 있었다. 진지한 얼굴, 골똘한 표정으로 자신이 고른 단어가 적힌 쪽지를 마주한 눈빛들이 진정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가족'을 골라 펜을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쪽지에 '뭉클'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족'은 창작의 작은 불씨는 물론 언제나 삶의 화두였다. 후회와 결핍으로 떠오르는 나의 원가족! 그들의 눈물을 닦아내 위로하고 치유하느라, 그들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갈 힘을 애써 찾아내느라 나는 언제나 고민 중이고 생각 중이었다.
나의 오빠, 엄마 그리고 아버지! 이 서글픈 단어들이 더 이상 울지 않도록, 원가족으로 잃은 웃음을 또다시 잃지 않으려 그토록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매달려 온 것일까! 보다 튼튼하게 엮어서 지금의 가족을 다듬고 챙기고, 결국 나를 치유하는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작은 불씨를 품고 사나 보다. 글쓰기는 나의 뿌리를 찾아 작은 불씨를 잉걸로 타오르게 하는 일인데, 그 중심에 늘 '가족'이 있다.
사랑, 가족 생각으로 한껏 말랑해진 마음으로 쪽지를 벽면에 붙이고 돌아서는데,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전시회에 함께 참석한 딸과 예비 사위가 적은 쪽지였다. 아까 고른 쪽지에 공교롭게 '처음'이란 단어가 겹쳐 있어서 결혼을 앞둔 커플, 천생연분은 역시 다르다며 함께 웃었었다. 곧 부부가 될 두 젊은이가 고른 '처음'은 결혼 이야기일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예상과 다른 내용이 거기 있었다.
딸아이의 '처음'은 첫 발을 내딘 교사로서의 출발이었다. 딸은 교사를 '작은 성공'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정의하며, 본인이 느낀 '작은 성공'의 귀한 경험을 나누고 싶어 했다. 임용고시 합격이라는 간절한 소망에 목말라 있을 때, 작은 성공을 성취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실패, 좌절을 딛고 다시 도전하기 위해 힘을 냈던 용기, 보람의 의미를 학생들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겪은 좌절과 두려움, 실패의 시간을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딸아이의 고민과 진정성이 진하게 다가왔다. '나를 행복하게 한 경험을 베풀며 살아야겠다.'는 아이의 다짐, 작은 성공의 기회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교사로서 학생을 대하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 듯하다.
국어 교사로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딸, 어렵고 힘든 직업으로 요즘 떠오르는 교직이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대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교사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 선배교사로서 교육 현장의 현실과 현재를 잘 알기에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딸아이의 쪽지를 읽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옆에 나란히 붙은 예비 사위의 쪽지! 아직은 서툴고 어색한 만남의 연속이지만 곧 자식으로서 이어질 귀한 인연인 예비 사위는 2019년을 회상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두려움과 설렘으로 어렵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 새벽 추위와 차가운 입김으로 그 시기를 '처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수많은 고민과 고생 끝에 얻은 연구 성과 앞에서 드디어 느낀 보람! 두려움을 즐거움으로 바꾼 이 귀한 경험 덕분에 모든 '처음'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었다고 하니 참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뿌듯함, 성취감, 자신감 등이 얼마나 귀한 감정인 줄 잘 알기에 박수로 응원하고 싶다.
두려움에서 연구를 시작했지만 후에 느낀 보람과 즐거움으로 다시 새로운 공부에 도전할 수 있다고 썼다. 학문의 길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게다가 직장과 결혼 생활을 병행하는 환경에서 주저함을 뿌리치고 도전하니 그 용기가 자랑스럽다. 실패를 성공으로, 두려움을 설렘으로, 좌절을 버티기로 견뎌냈기에 얻은 열매라 더 탐스럽고 귀하다.
자신의 '처음'을 건강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떠올리는 두 젊은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딸과 사위라는 관계를 넘어 요즘 젊은이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어른이고 싶다. 진학도, 취업도, 결혼과 출산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시대에 건강한 정신으로 꿈을 키워나가는, 탈락과 실패, 좌절을 겪으며 그 속에서 버텨나가는 나의 아들 딸에게 진심으로 기원한다.
386세대로서 90년대생 자식을 낳아 이제 세대가 교체하는 선에 서 있다. 힘들게 지나온 직장생활, 어렵게 버텨낸 가정생활, 한 마음으로 이뤄낸 민주화와 사회적 성장 등이 스쳐간다. 이 길을 따라 걸을 자식들의 발걸음에는 보람과 기쁨을 찾고 행복과 자아실현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펼쳐지길 바란다.
선진사회에 걸맞게 그들이 만들어갈 결혼과 가정생활도 사랑, 평등, 공정, 배려, 풍요로움, 기쁨 등이 가득하기를 바란다. 각자의 처음을 떠올린 그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의 처음을 존중하고, 소박하고 진실된 마음으로 결혼식의 첫발을 내딛기를 축복한다.
전시회 한 코너에서 얻는 짧은 장면이 나에게 큰 믿음과 기쁨을 주었다. 누군가의 희망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특히 젊은이의 열정과 희망은 이렇게나 감동적이다. 내가 지칠 때, 초심을 잃어갈 때 오늘을 떠올리며 나의 순수, 아이들의 처음을 기억하리라. 그리고 진정 진실하게 하루를 살 이유를 찾을 것이다.
이 글은 방금 11월 7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로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