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종도 왕산마리나 요트 체험
제주 협재와 영흥도 장경리 해변, 그리고 목포 유달 유원지! 내 인생의 낙조가 그려지는 곳이다. 석양, 노을, 일몰... 어느 말을 들어도 마음이 뭉클해지는 단어!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눴던 이야기, 그 주변에서 불어오던 바람과 바다 내음, 행여 놓칠세라 뚫어져라 집중했던 시선, 그리고 벅차오르던 그날의 감정을 함께 물들이며 결국 차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던 일몰의 시간을 좋아했다.
지난주 인천 왕산마리나에서 내 인생 일몰을 하나 더 추가했다. 요트 체험만으로도 설렐 일인데, 요트 위에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니! 새로운 경험은 나를 늘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인천 시민으로서 영종도를 갈 때마다 '왕산 마리나'를 수없이 보고 들었건만, 마리나(Marina)가 모터보트, 요트 등 작은 선박용 항구로서 정박지 또는 계류장의 뜻을 담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나에게 요트란 그저 먼 세상 이야기로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이나 영화의 한 장면쯤으로만 떠오르는 낭만과 모험 그 자체일 뿐인데, 이렇게 체험을 하다니 약속 한 달 전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다양한 시간 대 별로 요트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일몰시간을 고려하여 선셋 상품으로 예약한 지인의 센스가 돋보였다.
게다가 요즘 요트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막 생길 때여서 더 흥미로웠다. 요트와 함께 하는 퇴직 후의 생활을 계획하는 친구가 있어서 모임에서 간간히 요트에 대한 정보를 어깨너머로 들었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 위로 드넓게 펼쳐진 왕산 마리나 요트 체험장이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요트 중에 우리의 낭만을 담아 마음에 드는 요트를 골라 타보는 상상을 내 마음대로 즐겨 보았다. 푸른 바다, 하얀 돛, 기분 좋은 흔들림, 여기에 신비한 노을까지! 오늘의 일몰 예정 시각 5시 20분을 염두하며 환상의 모습을 기대했다.
요트에 승선하기 전 안전 조끼를 착용하고, 간단한 안전 교육을 받았다. 생각보다 작은 요트라 여겼는데, 숙박과 취사를 할 수 있는 내부를 본 후에 잘 갖춰진 제법 큰 요트임을 알게 되었다. 요트 경력 30년이 넘었다는 선장님의 숙련된 기술과 요트 동호회 회원의 조화로운 협업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안전하게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요트에는 우리 일행 6명을 포함한 승객 8명이 탑승하였다. 요트 체험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이고, 운항 범위는 영종도 왕산 해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왕산과 을왕리 해변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가을날, 아름다운 해질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탑승한 지 20 여 분이 지나자 드디어 서쪽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많은 날인데도 하늘은 충분히 붉어져 장관을 보여줄 준비를 마친 듯했다. 일몰은 일출과 또 다른 빛깔의 붉은빛을 띤다. 출렁거리는 파도와 노을 사이에 마치 종이배처럼 유영하는 배들이 가뿐하게 보였다.
천지가 개벽한 후 이제 하늘의 문을 닫기 위해 점점 넓게 물드는 그 장엄함 앞에 순간 숨이 멎었다. 아까의 걱정과 근심이 먼지처럼 흩어지며 대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아름답게 물드는 노을처럼 인생의 해질녘을 잘 그리고 있는가!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눈에 담으려는 듯 우리는 말없이 파도에 몸을 맡기며 한참 동안 생각에 젖었다.
우리 일행과 함께 두 분의 스님이 탑승했는데, 운항 내내 요트 앞머리에 앉아 미동도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어오는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지도, 모자를 쓰지도, 고개조차 돌리지도 않고 마치 참선을 하는 양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 노래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당신을 물들이고
사라지는 저녁노을이기를,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길 소망했습니다.
도종환의 시 '저녁노을'이 떠올랐다. 나도 시인처럼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빛깔에 감탄하면서 대자연의 신비로움 앞에서 겸손을 배우며 하루를 돌아보게 하는 것, 이것이 노을이 선사하는 매력일 것이다. 꿈같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에 노을 한 자락 마련하고 한껏 차분해진 마음으로 요트 체험을 마무리했다.
요트 체험 중 바람의 방향에 따라 돛을 펴고 접기 위해 왔다 갔다 줄을 당기며 조정하는 이들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말려있던 돛이 넓게 촤르르 펼칠 때 우리 모두 환호성을 보냈다. 망망대해에서 돛을 펴고 항해를 꿈꾸는 친구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 출렁거림을 즐기며 새로운 꿈을 꾸는 친구의 용기와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자주 가던 왕산 해변이 요트 체험으로 특별하게 다가온 하루였다. 그곳에 위치한 편의점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라면을 좋아하는 이라면 다양하게 진열된 라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라면 라이브러리(Library)' 이름에 걸맞게 라면 하나로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하루를 돌아보고 싶을 때, 외로움에 젖어 붉은 열기가 필요할 때 아마 이곳을 또 찾으리라. 붉은 노을에게 위로받고, 뜨거운 라면 국물에 시름을 녹일 수 있는 곳, 나의 힐링 장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고마워요~~ 붉은 노을, 왕산마리나해변!
이 글은 방금 11월 13일자 오마이뉴스 기사로 채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