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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렌 Dec 04. 2018

열정은 부재의 흔적이다

18. 12. 3. 세바시 강연 후기

한 강연자가 자신의 유방암 극복의 스토리로 강연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성우 출신답게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흔드는데 최적인 주파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흔드는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해본다. 그녀가 죽음의 곁에서 힘을 낼 수 있었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스스로 "감사 지니"라고 부르는 작은 카운터를 손에 들고 다니면서 하루 중 감사한 순간마다 카운트를 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삶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그것은 다른 말로 부재에 존재를 채워 넣는다는 뜻이다. 그녀의 삶의 추가 죽음의 위협으로 기울었을 때 그녀는 그것의 반대편에 "감사 지니"를 만들어 추를 다시 평형으로 맞추었다. 물론 그 정도의 부정적인 상황을 평형으로 만들려면 보통의 무게추로는 안되었다. 그녀가 "감사 지니"를 통해 뿜어내는 긍정의 에너지에는 고맙지 않은 순간 조차 고마운 순간으로 변형시킬 만큼 강한 힘이 있었다. 그녀의 그런 에너지, 혹은 열정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그녀는 내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삶의 평형을 다시 맞추려는 힘이 있다고. 삶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반대쪽에 실어야 한다고. 그 상응하는 힘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열정으로 해석해 본다면, 그녀의 메시지는 우리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열정을 요구해왔는지 깨닫게 한다.


열정은 절박함에서 나온다. 절박함 속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 절박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절박한 사람들이 열정을 뿜어내는 것은 그들이 그 속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절박함에서 벗어나고 싶지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당신이 열정을 말하려거든 당신 역시 같은 절박함 속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폭력이다. 그건 상대가 얼마 갖지도 못한 안정감을 빼앗으려는 시도이다.


어쩌면 열정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의 흔적이다.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필요한 안정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자는 열정이 있다. 생명의 부재 앞에 자신이 가진 얼마 안 되는 삶을 쥐어짜 낸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잠식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꿈이 희망과 열정을 주는 이유도 어쩌면 그것이 현재에는 부재하기 때문이다. 꿈을 가지라는 말은 먼저 부재를 인지하라는 말로도 바꿔 볼 수 있다.


나는 정말 강한 열정은 즐거움에의 환각보다는 고통으로부터의 몸부림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믿는다. 슬프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삶을 잘 사는 법은 나와 세상의 고통에 더 민감해지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의 밀레니얼들은 확실성의 부재에 고통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우리가 이 세대에 희망을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그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그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당신이 그들 속에 들어간다면 그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스스로부터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당신의 삶이 어딘가 기울어 있다면, 나와 타인의 부재를 먼저 살피자. 그러면 삶의 추, 혹은 세상의 추를 평형으로 맞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스스로가 고통에 민감하다면 부재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대개의 사람들은 즐거움보다 고통에 민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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