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 1일' 이라고 선언 한들 내가 마주한 일상이 갑자기 달라져 있는것은 아니다. 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영화를 보며 받은 기운에 취해 오늘부터 2주간 완전 채식을 해보겠다며 굳은 결심을 했지만, 다음날 아침 허둥지둥 오리엔티어링 대회 장소로 이동하는 과정에는 그런 기운이 사라져있었다. 그것이 주최측에서 공짜로 나눠준 - 사실은 내가 지불한 대회 참가비에 포함되었을 - 봉구스 컵밥을 허겁지겁 다 먹고나서야 밥에 참치가 올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유였을 것이다. 아침부터 밥도 안먹고 산에서 뛰고온 터라 허겁지겁 먹기 바빴고, 그렇게 맛있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컵밥이 종이컵과 일회용 플라스틱 스푼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영화,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원제: What The Health)'에서는 육식위주의 식단이 사실은 여러 육류 업체의 로비와 엮여져,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주입되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리고 여러 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들이 완전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건강을 회복하는 사례들을 보여준다. 나는 그동안 건강 때문에 채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육식이 건강에도 위협이 될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동시에 이게 사실일까 의문이 생겼다.
온 세상에 정보들이 넘쳐난다.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그저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이 내 생각인양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전문가들이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할 때에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내가 아는 제한된 지식으로는 양쪽 다 타당해보인다. 그래서 내몸에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나는 이미 육식위주의 식단에는 익숙했으니, 완전 채식이 내 몸에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만 확인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딱, 한가지 문제는 내일부터 나는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장인이 채식을, 그것도 완전 채식을 하겠다고? 이미 내게는 몇 차례 실패의 기억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첫 회사에서는 도저히 점심을 해결할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었다. 여느 회사와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이면 팀 단위로 주변 식당가를 어슬렁 거렸는데, 나 혼자 채식을 선언할 용기도,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노하우도 없던 때였다. 두 번째 회사에서의 시도는 양호했다. 좀 더 큰 회사여서 구내 식당이 있었고, 배급식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반찬만 골라서 가져올 수 있었다. 특별히 회식이 있지 않은 이상 육류는 가려서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1년 간 육류를 멀리하는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회사로 왔는데, 다시 동료들과 근처 식당을 어슬렁거리는 문화로의 회귀였다. 처음엔 회사 점심만 포기하자는 마음이었지만, 어느순간 육류는 저녁 식탁까지 올라와 있었다.
상황은 아무것도 바뀐게 없는데 다시 채식을 시도 할 참이었다. 하지만 딱 2주라면 어떻게든 해 볼수 있지 않을까? 영화에선 2주만 완전 채식을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무언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수 있다고. 그리고 이런식으로 채식과 점점 멀어지는 나를 계속 보는 것도 참기 어려웠다. 채식이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나, 동물해방에서 설명하는 논리들을 모두 이해하고도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는 나의 위선은 늘 마음 한 구석의 짐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걸 차치하고서라도 내 몸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니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이때문에 회사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지만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날 자르려면 자르라지, 어차피 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다녀야 할 회사는 없다고!" 이렇게 외치고 나니 한결 후련해지고 용기가 생겼다. 역시 건강은 최고의 동기부여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비록, 그 순결한 2주간의 채식 실험이 아주 처음부터 깨지려는 참이긴 했지만 다행이었다. 이제 겨우 첫 식사였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될 일이다. 나는 그저 내일이 걱정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