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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렌 Nov 27. 2019

길을 헤매고 있다면: 오리엔티어링

우리에겐 아직 생소하지만 오리엔티어링(Orienteering)이라는 스포츠가 있다.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도 한 장을 들고 그들의 광활한 숲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지형을 자세히 살피고 내 위치를 파악한다. 오리엔티어링은 주어진 길을 빠르게 찾아서 나오는 게임이다. 그래서 지도를 읽고 길을 찾는 판단력과 숲을 헤칠 수 있는 체력을 요구한다.


나는 숲이 아닌 일상에서도 주어진 길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지루해하는 사람이다. 늘 나만의 길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오리엔티어링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게임이 시작되면 숲 속 한가운데에 던져진다. 내게 주어진 것은 지도 한 장과 나침반 뿐이다. 핸드폰도 없고 GPS도 없다. 그곳에서 목적지를 찾아서 탈출해야 한다.


그곳은 적막하다. 거의 혼자의 길이다. 이따금 다른 선수를 마주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목적지를 찾아 헤메는 중이다. 나의 길잡이가 될 수 없다.


대개의 경우 길로만 가지 않는다. 스스로 숲과 나무와 낙옆들을 밟고 길을 헤쳐야 한다. 달리는 도중 길을 자주 만나지만 내가 그린 가상의 경로 위에 잠시 거치는 거점일 뿐이다. 이내 다시 아무도 걷지 않은 숲으로 뛰어든다.


차오르는 숨과 신체적 한계들이 나를 억누르는 상황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오리엔티어링에서 내게 가장 도전적인 부분이다. 나는 자주 지도 위에서 내 위치를 착각하곤 한다. 뛰면서 지도를 읽다 보면 작은 기호들은 식별하기 어렵다. 게다가 숨이 매우 가쁠 때는 머리에 산소공급이 부족해지면서 나의 판단력마저 흐려진다. 결국 방향을 잘못 읽거나 조금전까지 제대로 보았던 내 위치를 엉뚱한 곳으로 착각한다. 게임이 끝나고 차분히 지도를 확인하다 보면 내가 그곳에서 헤맸다는 사실에 허탈해진다.


나는 때로 트랩에 빠진다.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트랩,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는 미로이다. 분명히 내가 생각하는 목적지는 이 곳인데, 목표물을 찾을 수 없다. 그럴 때면 당황하기 시작한다. 내 모든 움직임의 근간이던 내 현재 위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어떻게 내 목표를 찾을 수 있을까.


게임이 끝나면 이 모든 과정들을 복기한다. 내가 여기서 어떤 경로를 선택했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그곳을 어떻게 달렸는지 확인한다. 내가 잘 달린 구간과 다른 선수들이 잘 달린 구간을 이야기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동기부여를 받는다.


어쩌면 이것은 오리엔티어링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눈앞의 다른 이들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길로 달리기, 그곳이 잘 정돈된 길이 아니어도 과감히 뛰어들기, 늘 주위를 둘러보고 내 위치를 확인하기, 다른 사람들과 회고하면서 칭찬하고 발전하기.


또한, 이것은 잘 헤메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달리는 잘 정돈된 트랙을 벗어나 나만의 길을 찾고 만들어 가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가 무모함이 되지 않으려면 그 자신감이 그간 쌓아온 다양한 경험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래서 나의 길을 걸으려면 그만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연습이 먼저 필요한지 모른다.


따라서, 기성세대가 지나온 단조로운 길을 벗어나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헤매는 우리시대 대다수에게 우리의 삶을 닮은 오리엔티어링은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까?


오리엔티어링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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