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공항 귀찮은 친구
‘할머니, 오늘 점심을 못 먹었어요!”
“왜?”
“엄마가 포크를 안 넣어 줬어요.”
“그냥 손으로 먹지?”
“스파게티를 어떻게 손으로 먹어요!”
그날따라 교내 식당도 문을 닫아 플라스틱 포크도 구할 데가 없어서, 세 아이가 하루 종일 굶고 왔다고 한다. 속도 상하고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살면서 생길 수 있는 일을 상상하며 이야기해 보았다.
여행 중에 급하게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보고 휴지가 없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첫째, 양말을 벗어서 해결을 하는데, 양쪽을 다 사용한다.
둘째,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셋째, 팬티를 벗어서 사용하고 다시 산다.
할머니,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소변이 급할 때, 핸드폰을 휴게소 화장실에 두고 왔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을 때를 상상하기도 하였다. 소변 이야기를 하자 첫째는 “여자들은 소변보는 것을 참기 어렵데요.”라고 말한다. 별 걸 다 아는 13세이다. ‘WHY’ 책 덕분인가 보다. 여권을 집에 두고 공항에 왔을 때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세 아이 모두, 가진 티켓을 포기하고 가장 가까운 일정의 티켓을 산다고 했다. 항공 티켓을 취소하고 새 티켓을 사면서 생기는 손해를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여행사 가이드를 했던 나는 공항에서는 예상 밖의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4시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이어서 게임 버전으로 질문하였다. “친구가 너를 따라 똑같은 게임을 하루 종일 한다면?”
첫째, 짜증 나서 게임을 바꾼다. 그래도 따라오면 엄마에게 부탁해서, 친구 엄마에게 해결해 달라고 한다. 어떤 친구가 좋으냐는 질문에는 게임 잘하는 친구가 좋다고 한다.
둘째, 그런 친구는 없지만, 있다면 짜증이 나서 “때리고 도망간다.”라고 한다.
셋째, “때려줘요, 친한 친구면 봐주지만 친하지 않으면 화나요. 왜냐하면 나를 놀리는 거잖아요”
컴퓨터 게임을 해 보지 않은 나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반적인 놀이에서도 누가 나를 계속 따라 하면 화가 날 것 같기는 하다. 친구 엄마까지 동원하는 건 심한 것 같다. 막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이 나를 놀리는 것이라는 말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는 언젠가 상을 받게 되었을 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연습해 보자는 의미에서, 각자 세 줄 이상의 소감문을 써 보도록 했다.
첫째는 '제가 상을 타면 상을 타는데 도와준 사람의 이름을 한 명 한 명씩 말하고, 어려서부터 얼마나 힘들게 공부해서 이 자리까지 왔는지, 포기하지 않고 와서 이렇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둘째는 “상을 타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작품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다음에는 더 연습하고 성장해서 올게요.”
셋째, 아주 아주 아주 ㄱㅅ하긔요
이쁜 돈이 내 계좌에 들어와서 감사해요 ㅋㅋㅋㅋ
돌을 빨리 말하면 돈이란 거 아시나요. 이제 선플 많이 달아서 이미지 좋게 해 주세요 빠이빠이~
실제 이런 날이 오면 좋기는 하겠다. 하지만 어렵게 그 자리에 왔다니 벌써 딱하다. 또 더 연습하고 성장하겠다는 생각 또한 할머니 마음은 안쓰럽다. 막내는 소감을 쓸 때도 ‘아이돌’ 세 글자로 삼행시를 쓴다. 이해할 수 없는 말투와 단어가 섞여있다. 아이돌들을 진짜 아이돌 한다.
이렇게 엉뚱하고 귀여운 말을 적지만, 결국 아이들이 쓰는 소감문 속에는 각자의 세계가 담겨 있다. 그 세계는 언젠가 아이들이 집 밖에서 마주할 다양한 상황들과 연결된다. 집을 떠나는 일은 가깝고 멀고를 떠나 모험이다. 학교나 직장, 여행에서 만나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다르게 보이고,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상황에 맞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좋은 환경만으로는 그런 연습을 할 수 없다. 사막에 사는 우리 아이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사막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요즘 도시락에 포크가 없으면 교내 식당으로 가서 빌리기도 하고, 얇은 일회용 포크를 가방에 넣어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자꾸 부러져서 아예 여분의 스텐 포크를 마련해 가도록 아이들에게 부탁하였다. 아이들의 엄마인 내 딸은 너~무 바쁘다. 도시락 싸 주는 것만도 감사하다.
오늘의 정리
안 좋은 상황도 반복하면 연습이 되고 익숙해진다.
이런 일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며, 이야깃거리도 없을 것이다.
다음 주는 지난여름 다녀온 경주(慶州)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