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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기보다 꾸준히 쓰기

“브런치는 나의 노후다”

by 영동 나나

중학교 1학년 때 학교 문예지에 내 수필이 실렸다. 제목은 ‘호박꽃도 꽃이냐의 뜻’이었다. 향기도 없고 못생긴 호박꽃을 나 자신에 빗대며, 결국 건강한 열매를 맺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국어 시간에 써낸 짧은 글이 교지에 실리자 은근히 자랑스러웠고, 자신감도 얻었다. 그 후 매년 교지에 한 편씩 글을 올린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자 전부였다.


대학을 이과로 진학하고, 결혼과 육아, 해외 생활로 글은 내 일상에서 멀어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간호사로 일하면서, 노후에 내가 좋아하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라며 자랑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것을 ‘아마추어들의 글쓰기 공간’ 정도로 여겼고, 두바이 생활 25년이라는 내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며 의기양양하게 지원했다. 빠르게 답장이 왔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중학교 시절 교지에 실렸던 기억만으로, 브런치를 그저 ‘어른들의 교지’쯤으로 가볍게 생각했던 탓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지도와 격려를 받으며 다시 지원했고, 마침내 합격했다.


글 쓰는 모임에서 서로 작가로 부르며 어깨에 바람을 잔뜩 넣었다. 하지만 막상 발행을 앞두고 보니, 다른 사람이 본다는 부담 때문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이곳은 다양한 소재와 언어로 우주와 세계, 고통과 슬픔, 부끄러움과 기쁨의 글이 쏟아져 나오는 글의 바다였다. 그 바다에서 나는 글쓰기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 소재도 빈약하고 소통 능력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어는 할머니의 것이었으며, 비유는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고, 결말은 뻔한 내용이었다. 자부심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내 현실이었다. 브런치라는 바다 위에서 발버둥 치며 버텼다. 때로는 작가 팀이 ‘왜 글 안 쓰세요?’ 하고 살짝 노크했고, 동료들은 격려해 주었으며, 얼굴도 모르는 구독자는 “어디 아프신가요?” 하고 안부 댓글을 남겨주었다.


잘 쓰고 싶어 억지 글을 만들기도 했고, 평범한 소재에 반전을 주려 애쓰기도 했다. 글의 군살을 빼기 위해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고치며, 글 쓰는 근육을 만들고자 새벽마다 글을 썼다. ‘쓰는 것 자체를 즐기자. 쓰고 발행할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자’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고민은 늘었지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살아있는 증거였다. 글쓰기는 상차림과 닮았다. 혼자 먹을 때는 대충 차리지만, 손님이 오면 정성껏 준비하듯, 독자를 떠올리면 글도 달라진다. 브런치 발행은 나 혼자만을 위한 밥상이 아니다. 나는 지금 손님을 맞는 마음으로 글을 올린다. 독자가 맛있게 읽고 하트를 남겨 주면, 그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런 소통 가운데 동갑 친구도 만나고 내 생각에 무릎을 쳐 주는 댓글도 만난다. 나는 더 이상 할머니가 아니며 브런치와 함께 성장하는 작가다.


이렇게 해서 한 곳에 모여있는 글을 보며 내 삶이 정리되는 것을 보게 된다. 브런치라는 서가에는 지난 어느 날의 내 생활과 생각, 감정의 변화를 알 수 있는 글이 있다. 언제나 내 글을, 내 인생을 꺼내 볼 수 있는 멋진 서가를 가지고 있다. 연재하며 내 인생을 정리하여 한편에 두고, 가족을 생각하며 쓴 글을 다른 쪽에 놓는다. 앞으로도 계속 채워 나갈 미래의 공간이다. 언젠가 누군가 이 서가를 열어 본다면, 말로 다 못한 이야기를 글로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서가에 더한다.


브런치 스토리가 1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10년 후 우리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브런치가 건재하고 발전해서 내 글을 받아 준다면 그땐 지금보다 편안하게 나와 다른 사람을 응원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꾸준히 글을 써서 브런치라는 책꽂이를 채워가는 작가가 될 것이다.


브런치의 최고령 작가로 남는 것, 그것이 내가 꾸는 작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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