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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단어로 문장 만들기

할아버지의 뇌경막하 출혈

by 영동 나나

오늘은 남편이 뇌경막하 출혈 진단을 받은 날이다. 줌 수업을 그만둘까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전할 말도 있어서 줌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상태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렵기도, 망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으면 할아버지가 왜 줌에 안 나오는지, 궁금해할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지난여름 할아버지가 밤에 꿈꾸다 침대에서 떨어진 거 알지?” 그때 테이블 모서리에 부딪혀 충격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작은 양의 피가 흘러나와 뇌와 머리뼈 사이에 쌓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할아버지 머리에 고인 피를 빼내야 해서 내일 수술을 할 것 같아.”

“알아요, 엄마가 얘기해 줬어요.”
“내일 수술 몇 시에 하는데요?”

“아직 몰라. 내일 큰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받고 수술 날짜가 정해질 거야.”

“너희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할아버지 잘 치료되도록 기도해 줘.”

“네”


더불어 잔소리도 한마디 했다. 자기 머리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머리는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친구들이나 동생들과 장난칠 때도 머리만은 손대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당부하였다.

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하고 나니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딴짓을 안 하고 집중하는 모습이 마음을 짠하게 한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된 일은 진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고, 나도 필요 없는 걱정을 하는 시간보다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잊어버리고 싶었다.




오늘은 20개의 단어 중 5개를 골라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번 10개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어 보니 되풀이되는 단어가 많아져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20개의 단어는 토끼, 피자, 별, 축구, 무지개, 로봇, 자전거, 강아지, 학교, 꿈, 공룡, 초콜릿, 연필, 바다, 아이스크림, 달, 마법사, 나무, 휴대폰, 유령이었다. 카드 뒷면에 번호를 써두고 아이가 번호를 고르면 단어를 보여 주었다.


로봇, 자전거, 토끼, 무지개, 축구를 고른 막내는

“축구하고 있는데 로봇이 자전거를 타고 가서 따라갔는데, 거기에 토끼가 있었고, 응… 그리고 거기서 무지개를 보았다.


꿈, 학교, 강아지, 자전거, 로봇을 고른 첫째는 “나는 오늘 아침 강아지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도착했다. 응, 응…”완전한 문장을 만들고 싶은 아이는 시간이 더 걸린다.


아이스크림, 연필, 토끼, 초콜릿, 별을 고른 둘째는 “토끼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별을 보기로 했는데, 내가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고 싶어서 토끼에겐 연필을 주었다.”

“와, 천재 아니야? 한꺼번에 두 단어를 쓸 수 있네?”라고 과장되게 반응하며 같이 웃는다.


한 사람이 3개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고, 다음 사람이 또 다른 3개 단어로 문장을 이어가는 방식도 시도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서로 엉뚱하게 흘러가다 보니, 아이끼리 “이상하다”라고 말하며 깔깔 웃었다. 이런 방식은 좀 더 큰 아이들에게나 맞을 것 같다.


오늘은 할아버지의 병 이야기하느라 줌 하는 시간이 많이 가 버렸다. 그래서 할머니가 고른 단어 5개로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떤 메시지를 써서 보낼지 기대가 된다.



둘째, 강아지 � 산책시켜 주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별을 봤다. 꿈만 같이 예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첫째, 저번 여름 방학 때 어두운 밤일 때 영동 지붕에서 아이스크림을 보면서 강아지 별자리를 보았던 게 기억났다


막내 손녀의 문장,

'핸드폰을 보다가 잠에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별에 앉아서 강아지랑 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할아버지 옆에서 말하면서 놀았다.'


할아버지가 답장을 보냈다고 좋아하며 캡처해서 보내온 사진




오늘의 정리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지는 일상이 깨어졌을 때 알게 된다.


아이들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방법은 늘 어렵다.


아이들이 장난치고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차라리 감사한 일이다, 별 일이 없다는 뜻이니까.


이 글을 쓰는 25년 10월 3일 할아버지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중이다. 기적과 감사의 과정이었다.


다음 주 이야기는 '공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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