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집에서 노는 것은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어쨌든 하루의 일부분은 궁마을이 아닌 시내에서 보내야 했으니, 나는 그에 맞게 적응하였다.
그래서 나는 궁마을인 우리 동네를 감싸고 있는 큰 지역이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막이라고도 불렸던 그 옛 이름은 강물을 막고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운동에 대한 계기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당시에 뉴스를 보았었나, 나는 지니와 무니랑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고 이윽고 결심이 섰다. 우리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약한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부엌에 있는 엄마를 찾아가 말했다.
“태권도를 배워보고 싶어.”
그렇게 말하고 나서 가슴이 굉장히 두근거렸다. 땀을 뻘뻘 흘린다는 것, 강한 사람들을 상대로 대련을 하고 발차기를 하고, 기합을 주며 포효하는 것. 운동을 한다는 것은 내게 그런 이미지였다. 무섭고도 설렜다. 나는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우리 셋은 태권도를 다니기 시작했다. 곧 다니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초보라는 뜻의 흰 띠를 둘러매고, 다른 아이들이 기합을 주며 운동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주 기초적인 자세부터 배웠다. 좋아하던 같은 반 남자애가 다니는 것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평소엔 내가 곧잘 때리곤 했던 남자아이였는데, 나보다 3단계는 높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를 보더니 학교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일을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놀라서 그 아이를 넘어뜨리고 입을 막았다. 말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싸움이었다.
아이들이 신기한 듯 우리를 둘러싸서 말했다.
“흰 띠가.. 파란 띠를 제압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의 첫 수업은 지니와 무니가 함께였기에 설렘으로 가득 찼다.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각자의 엄마에게로 폴짝폴짝 뛰어갔다. 성격이 급했던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가지런히 갠 도복을 가방에 고이 넣어 갔다.
지니와 무니는 도복을 입은 채로 고모에게 달려갔다. 배운 내용을 보여달라는 엄마들의 요청에 우리는 구부정한 자세로 시범을 보였다. 도복을 계속 입고 있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곧 잊혀졌다.
이제 하루 일과에는 운동이 추가된 것이다. 학교를 갔다가 태권도를 배우고, 피아노를 치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뿌듯하고 가벼웠다.
동네의 윗집 남매를 제외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친구가 한 명 더 생겼다. 헤이니는 같은 반이었고, 같이 피아노를 배웠는데 심지어 사는 곳이 무척 가까웠다.
헤이니는 외길 넘어 도로변을 한참 걸으면 제일 먼저 보이는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속눈썹이 무척 길었다. 그런데다 갈색 눈동자를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라, 나는 헤이니가 혼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헤이니네 엄마는 헤이니보다 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계셨다.
걸어서 만나러 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니! 나는 너무 기뻐서 절친한 사이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헤이니가 놀러 오거나, 내가 놀러 갔다. 한 켤레 있는 롤러 브레이드를 한 짝씩 나눠 타기도 하고, 게임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재밌게 봐 둔 글이 있으면 서로 보여주기도 했다. 주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좋아하던 태권도 남자아이가 헤이니와 무척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어린 나는 헤이니를 화장실로 끌고 가 엄청난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양 물어보았다. 저 애를 좋아하느냐고. 헤이니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별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잠시나마 나의 친구와 라이벌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갈등을 하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고백을 하거나, 그 남자아이와 가까워지려 딱히 더 노력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계속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아이는 곧 전학을 갔고,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