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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Jul 16. 2020

아빠에겐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시내에서 멈추는 스물일곱 걸음



아빠에겐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결국 그림을 전공으로 택하겠다는 나와 아빠는 한바탕 기싸움을 했다. 


다른 것은 다 굴복해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고, 꿈에 관해서는 부모도 강요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하게 되면 생기게 되는 제약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인지, 어떤 조건들 때문에 어떤 학교를 포기하고 어떤 학교를 공략할 것인지, 경우의 수들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나 역시 예술고등학교 진학은 태권도를 처음 배울 때처럼 두렵고 아득한 사안이었지만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세운 계획이었다. 원망스러운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그렇다고 해도 소리 한번 쳐보지 못했지만. 나는 소심한 목소리로 싫다고 반복하였고, 아빠는 내가 이기적이라며 내 뺨을 때렸다. 


뭐가 이기적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날부터 우리는 냉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며칠 뒤, 거의 처음으로 아빠는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 

때때로 딸바보였던 그가 어엿하게 큰 중학생 딸의 뺨을 때렸다는 죄책감이 든 것 같다. 그래서 관자놀이 부근에 옅은 푸른색의 멍을 들었고, 학교에서 딸의 친구가 그것을 발견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다리 역할은 엄마가 했을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으면서, 그는 딸이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처럼 배려해주길 바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미쳤던 건지도 모른다. 나의 출가 요청은 아빠 자신에게 또 다른 짐이 추가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맥락을 알지 못했다.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집안 분위기가 지속되던 어느 날 아침, 아빠는 등교하는 내 걸음을 붙잡았다.


예고를 가고 싶다면 지원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두 번째 계획을 세운 뒤였다. 나는 일반고를 갈 것이지만 미대를 준비할 것이라고 차분히 대답했다. 


미대를 진학하도록 도와줬지만 그로 인해 아빠의 가세는 기울었다. 



아빠에겐 최악의 시간들이었다. 사업은 부진했고, 할머니는 입원을 하셨다. 다니와 나, 두 자녀의 교육비용은 상당했다. 게다가 미대 입시를 위한 학원가의 비용 요구는 어마어마했다. 

나는 아빠의 허리가 꺾이고 나서야 아빠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최근에 와서야 그게 얼마나 커다란 부담이었는지 가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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