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와 무니를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것은 지니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지니는 정착할 목적으로 한강의 서쪽에 신혼집을 구했다. 무니도 같은 동네에서 자취를 시작하였다.
이 곳 저곳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나 역시 같은 동네로 이사하였다. 잠시가 될지 오래가 될지 모를 일이었지만 동네가 평화롭고 맘에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가까운 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고모와 고모부가 어울려 살기 시작한 때도 내 나이 이쯤이었다고, 추측해본다.
이 나이쯤, 그러니까 스스로의 경제력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아빠는 서울에서 물막으로 갔던 것이지만 어른이 된 궁 터의 아이들은 한강의 서쪽으로 올라왔다.
지니는 말했다.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네가 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솔직하게 네 입장에서 다시 얘기하자면, 낳지 않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언니는 말했다.
무니는 몇 년째 병원 일을 하고 있다. 늘 금방 흥미를 잃고 방황하던 땡깡쟁이가 이제는 적성을 찾고 인내심을 기른 모양이었다. 똑 부러지게 일사천리로 업무를 끝낸 뒤에는 조카들을 돌보러 지니 언니 집으로 향하곤 했다.
다니는 보안 업계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아직 학생이면서 이따금씩 돈을 벌기도 하는 것 같았다. 기특했다.
나는 공식적으로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단 이후로 매너리즘에 빠졌다. 좋아하는 것으로 업을 이루겠다는 목표 하나로 진취적으로 달려왔는데, 큰 회사의 부품처럼 일을 하면서 나의 열정, 가치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었다.
문득, 어째 어릴 때보다도 확신이 없는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나는 할아버지의 걱정스러운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화가가 될 거야. 그림을 그리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면 되는 거지! 그게 내가 말하는 화가야!’ 하는 자신감이 있던 아이였는데. 그걸 정한 이후로는 거침없이 달려왔는데, 지금은 왜 멈춰 서서 먼 곳의 무엇을 가늠만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펜을 들었다. 어릴 적 온갖 재밌는 머릿속 이야기를 달력 뒤 이면지에 그려대던 것처럼, 포근한 어린 시절을 그려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목적은 그게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