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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May 15. 2019

오늘도 나는 마카롱을 먹습니다

제 인생은 마카롱을 먹기 전과 후로 나뉩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고
그 인간은 마카롱을 만들었다.
-김트루-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모션이 나름 크게 성공해 포상의 의미로 MT를 다녀온 적이 있다. 사실 포상으로 MT 가는 것도 이상한데 심지어 대표의 단독 주관이었으니 매우 이상했다. 나쁜 건 꼭 세트로 붙어 다닌다고 했었나. 평일에 가서 그나마 일을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토요일에 출발해서 다음 주 월요일에 끝나는 2박 3일의 일정이었는데 심지어 집이 아닌 회사로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직장 상사와 함께 떠나는 MT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숨이 턱 막히는데 내 황금 같은 주말을 모두 반납하고 심지어 바로 월요일 출근이라니. 절대적으로 가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빠져볼까 고민하던 중, 불참자는 직접 대표한테 보고를 올리라고 한다. 그냥 전원 강제 참여하라는 뜻이다.


진짜 직원들이 바라는 포상은 월급에 숫자가 더 찍혀 나오는 건데 그걸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과연 이게 누굴 위한 MT인가 싶어도 어쩌겠는가. 가라면 가야지. 단합이라는 취지가 파투 나기 5분 전, 목적지가 제주도라는 소식에 직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그나마 좀 줄어들었다면 기분 탓일까.

그런데 운명이란 것은 회사 MT와 같은 사막 속에서도 피어난다고 했던가. 내가 ‘그것’을 만난 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나 보다.


MT 마지막 날, 바로 출근을 시키는 게 미안해서였는지 그 날 아침은 무려 신라호텔 뷔페였다. 그렇게 몇 시간 후의 출근은 잠시 잊어버린 채 접시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내 눈을 끄는 '그것'을 만나고 말았다. 프랑스 셰프가 직접 만든 알록달록한 색깔의 '그것'은 다름 아닌 ‘마카롱'.


마카롱을 몰랐던 건 아닌데 살이 찔까 봐 안 먹었던 이유도 있었고 딱히 끌리지 않아 사 먹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신라호텔 뷔페의 한 코너에 당당히 진열되어있는 마카롱을 보는 순간 마치 나에게 '안 먹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다들 스테이크나 파스타 등 메인 디쉬를 가져가는데 이상하게 나는 한 접시 가득 마카롱만 담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예쁜 색을 띤 작은 마카롱을 한 입 물었는데, 혼자 조용히 부르르 떨었다. 혀와 이빨, 그리고 입천장에 있는 모든 세포들이 나한테 말하고 있었다.

'어머머, 이게 뭐야? 대체 뭘 먹은 거야?'


그 후론 기억이 잘 안 난다. 진열되어 있는 마카롱의 절반 이상을 나 혼자 먹었다는 사실 밖에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기억나는 건 먹는 내내 회사 MT, 월요일 출근, 밀린 업무 등 나를 괴롭히는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잠시만이라도 나를 걱정거리로 부터 떨어뜨려주는 것. 이 작은 녀석이 그걸 해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같이 있던 직원들이 내 접시를 보더니 화들짝 놀란다.


"진실 씨, 마카롱 또 먹어? 안 달아?"


네, 달아 죽겠습니다.

저는 지금 마카롱을 먹는 게 아니라 행복을 먹고 있답니다.

그렇게 내 인생은 마카롱을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SNS와 초록창 검색을 통해 마카롱 맛집을 찾았다. 그렇게 눈으로 맛만 보던 날을 지나 드디어 찍어둔 마카롱 가게로 향해 가는 그 날. 꼬불꼬불 골목길에 숨어 있는 내 인생 마카롱 가게를 발견한 그 날.

나는 장담할 수 있었다. 내 행복은 여기서 충전된다고.


일 년에 단 한 번 누릴 수 있는 마카롱 케이크. 그날 난 세상을 가졌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photographer_mystelee)


사실 마카롱이라는 걸 처음 알았을 땐 가격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게 2000원은 기본이고 3000원까지 올라가는 걸 보고 미쳤다고 저걸 사 먹냐고 했었다. 흔히 말하는 SNS 감성의 예쁜 사진용으로나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할머니한테 마카롱에 대해 얘기하니 '돈 지랄하네'라는 말이 딱 내 심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사하다. 내가 행복해지는데 단돈 2000원밖에 안 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내가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천 원짜리 지폐 2장이면 된다. 물론 누군가는 간혹 비싸다고 할 수도 있다. 이 까짓게 2000원이나 한다고 이해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처음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크기와 가격을 다 떠나 오로지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대가라고 생각해보자. 한 입 먹는 그 순간부터 당신이 그 어떤 속박과 걱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면, 과연 마다할 수 있을까? 당첨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로또 5줄보다 저렴하며 확실하게 당장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이 세상은 안타깝게도 행복한 일보단 힘들고 아쉬운 일 투성이다. 그럴 때마다 당신은 무엇으로 위로를 받고 행복을 느끼는가. 아이스크림 먹기, 인형 뽑기 하기, 혼자 코인 노래방 가기, 편의점 테이블에서 차가운 맥주 한 잔 하기. 이 모든 행위가 당신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당신이 행복해지는 수단에 대해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더 이상 타인과 사회가 원하는 거창한 목표나 열망을 이루기 위해 발이 부르트고 목이 타들어가며 가슴에 상처를 내는 일은 잠시 그만하자. 남들이 보기에는 시시하고 별 거 아니지만 당신에게 작은 위안과 행복을 주는 행위 한 두 개쯤 누리면서 사는 게 오히려 당신의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까짓 거 노력해도 당신의 인생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가 원하는 마카롱 가게에서, 내가 원하는 맛을 골라 먹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고 행복이지. 이 얼마나 주체적인 행위의 행복인가.


그러니 더 이상 당신만의 행복을 찾는 것을 미루지 마라. 그럴수록 당신만 불행해져 갈 뿐이다.


아메리카노가 잘 어울린다. Bittersweet(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너 덕분에 배우는구나. (사진 출처 김트루 @sounds_true_6379)


냉장고 한편에 마카롱이 없는 날엔 어김없이 나는 행복과 위로를 사러 간다. 


대체 누가 마카롱 보고 설탕 덩어리라고 욕합니까?

암만 봐도 얘는 행복 덩어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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