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집마련, home sweet home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라도 씩씩하게 가려면

by 샤인젠틀리

나의 남편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염도 진한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며 성실히 일해 몇 해 전 마침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다. 놀이공원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를 거실에서 직관할 요량으로 매입한 '내 집' 앞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서 뷰가 사라졌을 때 남편은 잠시 뒷목을 잡았고 투자 후 곤두박질치는 부동산 가치를 따라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으나 즐거운 반전도 있었다.


비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던 남편의 삶에 많은 부분을 함께 할 동반자인 내가 나타나 종국엔 혼자가 아닌 1+1 입주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혼 1년 차 부부로 들어가게 된 아파트는 모든 것이 최신식인 깨끗한 신축은 아니었지만 잘 단장하면 두 사람이 살기에 모자람이 없을 아늑한 공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러 나라를 나그네처럼 바람처럼 흘러 다니며 많은 집을 거쳐왔다. 임대주의 취향대로, 때론 예산을 아끼는데 집중된 집주인 스페셜 (landlord special)로 꾸며진 집에 들어가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조화를 이루려 애를 썼다.


어느 집에선 파란색과 회색 네모들로 도배된 거실 벽지에 맞추어 회색 슬리퍼 거치대를 사고 그다음 집 안방 문 정중앙이 깨어져 움푹 들어간 흔적은 포스터를 만들어 가렸다. 전 세입자가 화장실 입구에 붙여둔 푯말과 현관문을 씌운 시트지 폰트와 분위기는 내가 추구하는 분위기와 달랐지만 그대로 두었다.


집주인과 전 임차인 흔적의 혼재 속 나의 취향을 한 스푼 흩뿌려 그렇게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는 내 스타일을 최대치로 반영할 수 있는 집이 생기는 거였다. 꿈만 같았다. 나와 남편의 취향과 우리의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개성 있는 집을 꾸미겠노라며 행복감에 젖어들었지만 언제나처럼 인생은 무지개와 나비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었다 (It's not always rainbows and butterflies).


첫 직장에서 제공한 숙소의 추억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와 그 안을 채워 넣는 인테리어 과정은, 내 결혼식 준비과정의 흐름과도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스타일을 담아보려는 의지 덕분에 웨딩플래너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셀프가 되어버렸던 웨딩처럼, 인테리어 업체와 함께하는 여정이었음에도 꽤나 독립적인 길이었다.


무소의 뿔처럼 걸어가면서 길을 낸 '내 집 꾸미기' 5개월의 대장정 끝엔 기쁨과 성취감이 반겼지만 도달하기까지는 울퉁불퉁한 길(bumpy road)이었다. 보편적인 것을 벗어난 곳엔 언제나 외로움과 두려움이 동행했다.


1년 반의 연애기간 동안 남편과 나는 특별히 다툰 일이 없었다. 결혼준비도 대립되는 상황이나 위기 없이 부드럽게 통과했다. 그러나 앞으로 오랫동안 지내게 될 보금자리를 꾸미는 일은 전혀 새로운 문제였다. 오래 써야 할 고가의 상품은 고민을 거듭하고 엄격한 검열을 통과한 후에야 내 집에 일원이 되듯 더 이상의 이사 없이 끝까지 함께 하려는 집을 공사하고 꾸미는 현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우선은 남편과 나의 의견부터 하나로 모아야 했다.


공사를 시작하기전 before 사진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으로 모던하게 가는 게 좋겠지?"

평소 깔끔하고 무난한 것, 리스크를 안고 무리하기보다는 안전성을 추구하는 남편이 말했다.


특별함을 선호하고 개성이 드러나는 미국집 스타일을 보고 자란 나는 잠시 뜸 들이다 입을 열었다.

"음... 나는... 따뜻한 느낌이 좋아. 카티지 (cottage: 시골에 작은 오두막집) 같은? "


남편은 갸우뚱했다.

"음... 따뜻한 카티지 느낌이 뭐지... "

"그건 말이야..."


이상한 일이었다. 원하는 바가 분명하다 생각했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니 말문이 꽉 막혔다. '나도 정확하게는 몰랐나 보다.' 머쓱했다.

개발자 남편은 내가 원하는 컨셉을 시각화한 예시들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달라했다. 나는 인테리어 사진과 기사들을 열심히 검색하며 무엇을 원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나의 호불호를 알아갔다. 따뜻한 느낌을 정의하고 그 요소들을 좁혀 나갔고 슬라임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있던 생각을 조각조각 떼어내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 생각과 아주 똑 닮아있는 이미지들은 아니었지만 인터넷 서칭은 큰 방향을 잡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략적인 아이디어(rough idea) 꾸러미를 펼쳐 놓았을 때 남편은 "자기에게 다 맡길게~"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직 정확히 다 이해가 안 되니 적극적인 피드백을 주거나 강한 지지를 보여주기 어려웠으리라 생각되지만 당시에는 남편에게서 조금이라도 회의적임이 감지되면 "나도 내가 불안해요."라고 적힌 초보운전 스티커를 내 이마에 붙인냥 불안감에 압도당하곤 했다.


나의 생각들이 페이지 10쪽 분량에 정리되어 있다면 많은 대화를 통해 남편이 6쪽 정도까지 따라잡았을 무렵 도배, 장판, 싱크대 실무자들과 미팅을 했다. 미국에선 집을 꾸밀 때 페인트를 애용하다 보니 색상 선택이 자유로운 편이었고 집 안 공간 공간마다 테마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방마다 색을 달리해 색감이 풍부한 집을 만들고 싶었다. 전체적으로는 자연이 느껴지는 우드, 민트 색에 핑크로 포인트를 주고 싶었다.


수납장 테두리에 액자 같은 장식이 있는 웨인스코팅 싱크대에 부드러운 민트색을 입히면 나무색 몰딩과 어우러져 따뜻한 시골마을 주방의 느낌을 내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았지만 우리 부부가 원하는 디자인을 고수하면서 가진 예산을 넘기지 않으려면 수납장 색상은 화이트나 아이보리여야 했다. 고심 끝에 아이보리로 결정하고 도배 담당자와 마주 앉았다. 그는 빠르게 샘플북 페이지를 넘겨 확신에 찬 손길로 중간 페이지를 가리켰다.


"화이트가 가장 잘 나가요."

"아님 이것도 좋고요."


화이트에 가까운 회색, 그리고 옅은 아이보리 었다.


"요즘엔 다들 원톤으로 집 전체를 깔끔하게 하는 추세예요. 천장도 이 화이트로 가시면 되겠죠?"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듯해 멈칫했지만 용기를 내어 의견을 표출하니 베틀이 시작되었다.


"사실 저는 방마다 색을 다르게 하고 싶어요. 공간마다 느낌을 다르게 주고 싶어서요. 핑크, 올리브 그린, 블루 이런 칼러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어떤 색상들을 가지고 계신지 보고 싶어요. "


"아, 포인트 벽지는 유행이 지났어요. 요새는 그렇게 안 해요."


"아.. 그런가요. 유행이라서 하기보단 저는 색이 다양한 걸 좋아해서요."


스크랩해 둔 예시 사진들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담당자는 한국집은 외국에서처럼 공간이 분리된 느낌이 적고 평수도 크지 않으니 색이 많으면 조잡해 보이기 십상이라며 강하게 만류했다. You win. 그래 난 대세의 기운에 눌렸다.


에어컨 담당자와 회의를 마친 남편과 조우한 나는 벽지는 화이트에 가까운 아이보리로 통일했노라 알려주었다.


"원하던 게 그게 아니잖아?"


남편은 의아해했다.


"모두들 잘 모르겠다, 아니다고 하는 걸 혼자서 밀고 나가려니까... 왠지 망설이게 돼."


그날 밤 나는 탁자 밑에 꽁꽁 숨어있던 감정을 찾아내느라 잠을 설쳤다. 결정을 내리면 실현되기까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데 나의 목표를 이해하고 온전히 지지하는 이가 없다면 걸음을 떼기가 두려워진다. 힘겹게 나아가기 시작했더라도 누군가가 '그럴 줄 알았다.'라고 한 상황이 닥쳐올까 봐 여차하면 다 내팽개치고 싶어진다. 일의 결과물을 온전히 홀로 책임지는 그 무게 역시 무겁다.


벽지사건은 꿈의 실체를 보려면 다양한 공격에 대처하며 방어하며 두려움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긴 대화 끝에 원래 생각했던 대로 컬러풀한 벽지를 다시 골랐다. 한 가지 무채색으로 통일했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을 만큼 색을 섞은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집 컨셉에 대한 계획을 처음 공유해 주었을 때만 해도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원하게 웃던 친구. 공사와 인테리어를 다 마친 모습을 보고는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집을 이렇게 꾸민 건 처음 봤는데 개성 있고 너무 좋다. 멋지네."


'리모델링' '인테리어'를 검색하면 비용, 업체선정 등이 상위랭킹 키워드로 뜬다. 나의 내 집 꾸미기에도 연관 검색어가 있었다. 원하는 바를 이루려 할 때,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그림을 다른 이는 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 필요한 것은 '나를 믿음'이었다. 다수의 의견과 다르다 하여 나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며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성실하게 전진해 나갈 수 있다는 자기 신뢰, 그 끝에 마주한 결과가 비록 기대에 못미치더라도 기꺼이 책임지겠다는 용기. 나의 드림하우스를 짓는데 가장 중요했던 자재는 다름 아닌 용기와 신뢰였다.


소소하지만 우리의 개성을 담고 색감을 조금씩 더한 after 사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