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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진정한 5도2촌 이야기

러스틱라이프(Rustic-life)의 치열한 생존기를 들려드립니다.

이번 주는 그냥 쉴까? 아! 가기 귀찮아~!!!


월요병도 아닌 주말이 두려운 금요병이 찾아왔습니다.

시작할 땐 최소한 5년은 무탈하게 다닐 줄 알았건만, 시골에 터를 잡고 고작 세 번째 여름의 초입에 찾아온 깊은 슬럼프였습니다.


'핑곗거리를 찾아야 해. 아프다고 할까? 서울에 모임 있다고 할까? 아~ 날씨는 왜 이리 좋냐? 비라도 오면 날씨 탓이라도 할 텐데...'


애써 눈치를 주지 않으려 피하는 아내의 태연한 눈빛이 더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에게 핑계를 대려는 거지? 

변명거릴 만들어봤자 결국은 내 마음의 부담만 커지는 것을.     


'아~ 가기 싫어~'


즐겁게 가야 하는 세컨하우스행이 어쩌다 예비군 훈련 끌려가는 심정이 되었을까?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어떻게 만 3년을 못 가고 벌써 후회냐...

싱그런 초록의 수풀을 거닐며 유유자적할 줄 알았건만 녹색 알레르기에 걸린 마냥 초록에 경기가 날 지경입니다.

전원주택 2년 만에 녹색보다 회색이 훨씬 좋아졌습니다.

이 와중에 날씨는 왜 이리 환상적인지.      


‘아 몰라. 마음 편하자고 벌인 일인데, 내키지 않으면 가지 말자!’


하고 냉큼 친구를 불러내 밤새 술을 푸다 토요일 아침부터 지독한 숙취에 몸소 눕는 퍼포먼스를 벌입니다.


‘어쩔 거야. 술병이 나서 몸이 움직이질 않는 걸... 지금 가면 음주운전이야~’      


근데 문제는 이렇게 금요병을 앓아 시골집에 가지 않은 지 벌써 한 달째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가면 죽어라 일만 하고 와야 해서 무서워서 못 가는 상황입니다.

스마트폰 cctv 어플로 보는 시골집 잔디마당은 세 그룹으로 사이좋게 삼등분되어 있습니다.

칡넝쿨과 환삼덩굴, 망초를 위시해 쭈뼛쭈뼛 올라온 잡초들, 웬수 같은 대나무들이 저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놀자고 웃고 있어요.

‘잔인한 놈들... 웃어?’

원격으로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새 정말 걔네들한테 욕을 하고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저도 원래 이렇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2년간은 참 좋아라 하고 다녔죠.

충남 서천 작은 어촌마을에 전원주택을 짓고, 주중 5일은 시골집 가서 무얼 할까 하며 즐거운 상상을 하고, 주말 2일은 시골집에서 열심히 일하고 먹고 놀았습니다.     


첫해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술 취해서 자다가 눈을 떠 보면 창고에서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서 잠들어 있더군요.


‘이걸 다 내가 만들었어! 너무 뿌듯해!’


하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술만 취하면 이곳저곳에서 혼자 실실 웃으며 잠이 들곤 했죠.     

모기에게 뜯겨 만신창이가 돼도 그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한밤중에도 문득 할 일이 떠오르면 달빛에 의지해 낫을 휘두르며 제초작업을 벌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마련한 세컨하우스인데! 잡초 따위가 감히! 절대 용납지 않겠다!’


동네분이 지나가다 보셨으면 아마 미친놈이라 욕하셨을 겁니다.

진짜로 밤 열두 시에 울타리 옆을 따라 낫춤을 췄다니깐요?     


가족과 지인들은 집 안에 있을지언정 저는 늘 밖에서 일만 했습니다.

농사를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자연이 알아서 키워 주겠지. 

그냥 텃밭만 만들면 왠지 먹을 것들이 알아서 자라줄 것 같았습니다.

땀 흘리며 작업에 몰입하는 게 얼마나 즐겁던지.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일요일 오후 청소를 끝내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때는 뿌듯함에 가슴이 부풀어 터질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제가 같은 계절이 두 번씩 반복되고 나니깐 저렇게 심각한 금요병이 왔다니깐요? 



    

훗, 이런 어설픈 풋내기, 준비성 없는 애송이 같으니라고~ 나는 달라. 내가 시골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원래 시골 생활이 다 그런 거야. 뭣도 모르고 무턱대고 일부터 저질렀구먼! 나는 절대 너처럼 후회하지 않을 거야!     


하고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하신 분들 계시죠?

그런데 어쩌죠? 과연 그럴까요?     

네이버에 회원수가 40만 명이 넘는 전원생활 정보공유 카페가 있는데, 자주 눈에 띄는 종류의 글이 있습니다.


“5도2촌을 이제 막 시작한 새내기인데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하고 주말만 기다려집니다.”

“몇 개월 동안 주말주택 생활을 해보니 진작 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될 정도로 즐겁습니다.”

“텃밭에서 처음 수확한 채소들로 만든 밥상이에요. 너무 뿌듯해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제가 심은 씨앗이 자라서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웠답니다. 눈물이 나려고 해요.”

“6개월째 5도2촌 중인데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서 엄마 아빠보다 더 자주 가고 싶어 하네요.”     


대부분 5도2촌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들의 행복에 겨워하는 글들입니다.

글쓴이의 표정이 눈에 막 보일 정도예요.     


그런데 이제 막 세컨하우스를 마련해 아주 행복하게 즐기고 있다는 글들은 참 많은데, 5도2촌을 오랫동안 즐기고 있다는 찐 선배의 글은 왜 보이질 않을까요?

진짜 없습니다.

하다못해 1년을 넘겼다는 글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사정이 생겨 세컨하우스를 매도한다는 글이 더 자주 눈에 띕니다.


“아이들이 커서 잘 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팔려고 합니다.”

“거리가 멀어 어쩔 수 없이 매도하려 합니다.”

“직장을 옮겨 이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법이 바뀌어서 세금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이런 “어쩔 수 없이” 매도한다는 글의 진짜 사정은 따로 있으리라 짐작되지만, (진짜 사정을 말하면 집이 팔리지 않거든요.) 아무튼 진짜 프로 주말주택 선배들의 현실성 높은 감회를 담은 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는 프로들이 속으로 ‘늬들도 한번 당해봐라!’ 하는 의도로 침묵하지 않을까~ 하는데... 제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은 있어요. 카페에 올라온 글들 중에서 이미 전원생활의 단편적인 환상에 젖어 눈에 콩깍지가 이따 만 하게 쓰인 사람을 보면, 


‘에휴... 말해서 무엇하리... 괜히 나에게 반감만 사겠지... 직접 겪어봐야 알지 절대 저 콩깍지 안 벗겨진다~’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칠 때도 가끔 있습니다. 사실이 그렇거든요.       


또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전원주택 매물들을 쭉 한번 살펴보면, 은근 산 좋고, 물 좋은 경치 좋은 곳에,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전원주택 매물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매 이유에 대해서는,


“주인이 직접 살려고 지은 집인데 해외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서~”

“부모님을 위해 마련한 집인데 서울에서 내려오시려 하지 않으셔서~”

“갑자기 급전이 필요해서~”


등 하나같이 간단명료한 이유를 대고 있지만,

설마 그대로 믿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분명 그리 간단한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비싼 돈 주고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지었는데, 몇 년 되지도 않아 매도한다는 것은 그들만의 속사정이 책 한 권은 쓰고도 남는다는 것을 꼭 알아두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만만치 않길래 그럴까요? 모르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말이죠.


그래서 제가 한번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합니다.
새내기들도 다 아는 좋기만 한 일들 말고 참으로 징글징글한 경험들을 말이죠.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시골에서의 삶.

어설픈 풋내기, 준비성 없는 애송이가 어느덧 5도2촌 생활을 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5도2촌의 삶이 누군가에는 상처가 될 수 있기에 말하기 많이 조심스러운 주제였지만,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삶의 변화에 너도나도 급하게 주말주택 라이프에 뛰어드는 것을 보며, 이제는 더이상 늦지 않게 꼭 얘기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그 만만치 않던 사건 사고들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고생들.

너무 황당해서 넋을 놓고 있거나, 스스로에 실망해서 자괴감에 깊은 수렁에 빠진 시간들.

그런 이야기를 이제는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제 이야기는 전원주택을 잘 짓는 법이나 전원생활을 잘하는 법에 관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5도2촌이 얼마나 힘들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은 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읽다 보시면 ‘에이 설마~’ 하시겠지만 모두 누구나에게 벌어지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나는 지금 5도2촌을 꼭 해야겠다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일단 그 웅대한 용기에 큰 박수를 먼저 보내드리겠습니다. 콩깍지가 정말 단단하게 씌었군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무조건 고!

전진만이 답인 분들을 위해 제가 길라잡이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솔직히 제 이야기 덕분에 5도2촌의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났다는 분들이 계시길 바라며... 

5도2촌의 꿈을 깨는 첫 번째 에피소드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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