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의 무도회: 상호작용 의례로 읽는 『오만과 편견』

어빙 고프먼과 미시사회학의 지평

by 박멀미



어빙 고프먼과 미시사회학의 지평


어빙 고프먼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일상생활의 미시적 현상을 사회학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학자다. 그가 천착한 대상은 마주침, 침묵, 시선 교환 같은 소소한 순간들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소외된 일상성을 재발견하는 작업이었다. 고프먼의 텍스트를 읽다 보면 독자는 메타적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회고적 사고가 촉발되며, 알아차림과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온다.

고프먼은 '규정할 수 없는 영혼'이라 평가받는다. 그는 당시 사회학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던 분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척했다. 소심해 보였지만 권력적 학계에 의존하지 않았으며, 학파를 만들지도 않았다.

1967년에 출간된 『상호작용 의례』는 고프먼의 초중기 저작으로, 일상생활에서 작동하지만 너무 당연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상호작용 규칙과 상황적 적절함을 다룬다. 이 책은 여섯 가지 주요 개념—체면, 존대와 처신, 당혹감, 소외, 정신이상과 공공질서, 행동—을 제시한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개념들이지만 고프먼은 미시적 디테일과 섬세한 뉘앙스를 통해 이를 재구성한다.

체면이 형성되는 만남의 순간, 균형을 유지하려는 구성원들의 노력, 존대와 처신이라는 스킬을 통해 '신성하게' 관리되는 자아와 타자. 그리고 당혹감—단순히 창피한 순간이 아니라 '창피함이 세계를 유지한다'는 고프먼식 통찰. 이러한 개념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이다.


제인 오스틴과 상호작용의 무대


이 글은 고프먼의 여섯 가지 개념을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1813)과 교차시키는 시도다. 흥미롭게도 이 소설은 고프먼의 개념들을 스토리의 순서를 따라 순차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구조를 지닌다. 다소 끼워 맞추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취지에서 이 비유는 유효하다.

『오만과 편견』은 영국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베넷 가문의 다섯 자매가 사랑과 체면, 계급의 규범 속에서 성장하는 이야기다. 부유한 신사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마을에 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첫 무도회에서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차갑게 대한 사건이 모든 오해의 출발점이 되며, 매너 좋은 듯 수상한 장교 위컴, 과장된 공손함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콜린스, 신분의 권위를 휘두르는 캐서린 부인이 얽히며 사교 의례가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1)체면 : 만남과 체면의 균형 형성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 첫 문장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자 총각의 등장은 이웃들에게 체면을 높일 기회로 인식된다. 고프먼에 따르면 체면이란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자아 이미지다. 베넷 부인은 "우리 딸들 중 하나를 저 부자에게 시집보내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며 남편에게 빨리 인사라도 하라고 졸라댄다.

첫 무도회에서 베넷 가족과 빙리 일행이 대면한다. 빙리는 싹싹하고 친절한 처신으로 금방 인기를 얻지만, 다아시는 재산이 두 배나 많음에도 거만하고 냉담한 태도로 미움을 산다. 고프먼 이론에서 처신은 겉모습과 행동거지로 보여주는 품위를, 존대는 타인에게 예의를 갖추는 태도를 의미한다. 빙리의 공손한 말투와 친근한 미소는 상대를 존중하는 존대 행동으로 호감을 샀다. 반면 다아시는 한 댄스 제의를 거절하며 엘리자베스를 향해 "그녀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나를 유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이런 말을 들은 엘리자베스의 체면은 손상된다.

엘리자베스는 겉으로 친구와 함께 그 말을 농담거리로 삼아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고프먼 식으로 말하면 이는 상대의 체면을 위협하는 행위다. 체면은 사회적 무대에서 쓰는 가면 같은 것이기에, 공개적인 무안함은 곧 당혹감으로 이어진다. 엘리자베스는 애써 태연한 척 농담했지만, 친구 샬럿이 "그래도 다아시 같은 부자라면 한번 춤 춰보지 그랬어?" 하자 "자존심 상하게 그런 사람과는 춤 안 춰"라고 받아친다. 자신의 자존감과 체면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고프먼에 따르면 누구든 체면이 손상되면 당혹감을 느끼고 이를 만회하려 애쓴다. 첫 만남에서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체면을 깎았고, 엘리자베스는 재치로 응수하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지켜낸다.


(2)존대와 처신: 일상이라는 무도회


『오만과 편견』 속 사회는 거대한 사교 무대다. 인물들은 파티, 식사, 길가 만남에서 끊임없이 인상을 주고받는다. 공공장소의 상호작용에는 모두가 암암리에 지키는 규칙이 있다. 고프먼은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예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공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켜야 할 규범적 요건들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낯선 사람들끼리도 서로 지나치게 훑어보지 않고 적당히 예의 있는 '시민적 무관심'을 유지한다. 무도회 장면들에서 모두가 서로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지만 너무 노골적이면 실례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자연스럽게 예절을 차린다.

첫 무도회에서 다아시의 무례한 태도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규칙대로라면 새로 온 남성은 여러 여성들과 춤을 추며 예의를 보여야 했다. 다아시는 이런 의례를 어기고 혼자 구석에 서 있었으니, 주변 사람들은 "저 사람은 사교 매너도 없고 우리를 무시하나" 하고 느낀다. 이런 작은 질서 위반도 공동체에서는 금방 입방아에 오른다. 다아시는 첫인상에서 오만한 사람으로 찍혔고, 반면 빙리는 사교 규칙을 잘 따랐기에 "참으로 상냥하고 매너 좋은 신사"라는 평을 얻는다. 개인의 처신과 존대 여부가 공공질서 속 평판을 좌우하는 것이다.

고프먼에 따르면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누군가 당혹스러운 실수를 하면 모든 참가자가 함께 그 상황을 수습하려 노력한다. 무도회 후 집으로 돌아온 엘리자베스가 아버지 베넷 씨에게 다아시에게 모욕당한 일을 이야기하지만, 아버지는 익살스럽게 "다행이구나. 다아시처럼 재수 없는 녀석과 춤추는 수모를 당하지 않아서"라고 농담한다. 엘리자베스를 웃게 만들어 체면 손상의 충격을 누그러뜨려주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서로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재빨리 분위기를 전환시킨다. 고프먼이 말하길 인간은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세워주기 위해 도덕적으로 헌신"해 왔다.


(3)당혹감: 콜린스, 과도한 의례의 희극


베넷 가의 사촌 콜린스는 힘센 자에게 기생하고 허세와 속물근성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곁에 있기만 해도 당혹감을 주는 강적이다. 콜린스는 장남만 상속받는 당시 관습 때문에 베넷 씨의 재산을 물려받을 예정인 먼 친척이다. 그는 자신을 후원하는 거만한 귀부인 캐서린 부인 자랑을 입에 달고 산다. 첫 저녁 식사부터 콜린스는 캐서린 부인을 향한 과도한 칭송을 늘어놓는다. 모두가 어이없어하지만 예의상 들어준다. 콜린스는 극단적으로 상대를 추켜세우는 발표적 의례만 잔뜩 할 뿐, 정작 자신의 처신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걸 모른다.

당혹감은 어떤 규범이나 기대가 깨진 순간에 나타난다. 콜린스의 어색한 처신은 네더필드 무도회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는 사교 예절에 서투른 나머지 연속적으로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든다. 파트너로 엘리자베스와 춤추면서 '서투르되 근엄하게' 춤을 망치고, 대화도 엉뚱하게 이어간다. 주변 사람들은 빤히 쳐다보거나 미소를 지으며 재미있어한다.

콜린스의 하이라이트는 청혼 사건이다. 며칠간의 만남만에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는데, 그 방식이 우스꽝스럽다. 준비해온 연설문이라도 읽듯이 "베넷 양, 제 처지에 저 같은 사람이 청혼 드리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아시길 바랍니다"라며 장황하게 자기 공로와 경제력, 그리고 캐서린 부인께서 결혼을 권하셨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엘리자베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완곡히 거절 의사를 밝히지만, 콜린스는 그녀의 사양을 "부끄러움에서 오는 여성의 흔한 거절"쯤으로 오해하고 더욱 열성을 다해 구혼한다. "제 거절은 정말 진지한 거절이에요." 끝내 엘리자베스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제서야 콜린스는 크게 당황한다. 이 에피소드는 고프먼의 당혹감 개념을 보여준다. 한 사람이 상황을 완전히 잘못 읽고 부적절한 처신을 했을 때 느끼는 창피함이다. 이후 콜린스는 곧바로 다른 여성(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에게 가서 번개같이 구혼하고 허락을 받는다. 주변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또 체면을 차려 축하 인사를 건넨다. 모두가 이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애써 평온한 겉모습(공공질서)을 유지한다.


(4)소외: 샬럿의 소외 설계


엘리자베스는 친구 샬럿이 콜린스와 약혼한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평소 현명하고 절조 있던 샬럿이 경제적 안정 때문에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미혼 여성들이 느꼈을 사회적 불안이 담겨 있다. 샬럿은 사랑 없는 결혼이라도 사회의 주류 질서 안으로 들어가길 택했다. 엘리자베스는 친구의 현실주의를 이해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야기는 엘리자베스의 시각으로 진행되기에 편견이 담겨 있다. 그녀는 샬럿이 불행할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의외로 샬럿은 처신을 잘해 나간다. 엘리자베스가 샬럿을 직접 찾아가 보니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샬럿은 남편의 장광설과 어색한 처신을 정면으로 교정하지 않는다. 대신 적당히 맞춰주고 집안의 동선을 설계해 콜린스와의 접촉 빈도를 줄인다. 그가 정원 일과 방문객 응대를 '자기 일'로 여기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공간을 멀리 배정한다. 샬럿은 남편과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정신적 평온을 지킨다.

샬럿의 전략은 매우 실효성이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호 호혜적 관계를 기대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에서 누군가 소외되면 균형이 깨져 불화가 일어난다. 샬럿은 남편의 체면을 깎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참여도를 조절한다.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삶을 비관하지 않고 나름의 거리조절 전략으로 균형 잡힌 삶을 유지한다.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찾아내는 현실적인 전략가다. 콜린스의 후원자인 캐서린 부인의 초대를 즐기고, 이웃과의 교류를 통해 단조로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엘리자베스도 곧 샬럿의 전략을 눈치채고 그 나름의 합리를 이해하려 한다.



(5)행동과 모험: 청혼이라는 위험한 게임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관계는 곧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로싱스에서 지내던 어느 날 다아시는 갑작스레 엘리자베스에게 첫 번째 청혼을 한다. 그런데 이 청혼이 아주 서투른 방식으로 이뤄졌다. 다아시는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사실 처음엔 신분 차이와 가문 때문에 애써 눌렀지만 더는 안 되겠소"라고 고백한다. 겉으로 보면 열정적인 고백 같지만, 정작 엘리자베스 가족의 "천한 신분"을 언급하며 사랑에 빠진 자신을 비웃는 식의 말투였다. 쉽게 말해 "내 상식에 반해 너에게 반해버렸지만 그래도 결혼해주겠다"는 투로 들렸다. 엘리자베스는 순간 굉장히 놀라고 분노한다. 그녀의 자존심(체면)을 정면으로 건드린 청혼이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자아와 자아가 정면 충돌한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히 거절하며 쌓였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당신은 제가 결코 결혼하고 싶지 않은 남자예요. 제 언니에게 불행을 안겨준 장본인 아닌가요?"라고 쏘아붙인다. 다아시는 큰 충격을 받고 무안함과 분노에 휩싸여 변명을 하려다 만다. 고프먼의 시선으로 이 장면을 보면 완전히 "표현 질서"가 무너져버린 한판 대결이다. 상대의 체면을 세워주기는커녕 서로의 약점을 난도질하며 끝나버린 대화다.


이 위험한 상호작용 후에 다아시는 밤새 고뇌하다가 이튿날 아침 편지 한 통을 남기고 떠난다. 편지에는 자신이 엘리자베스 언니 제인과 빙리의 관계를 왜 떼어놓았는지, 그리고 문제의 위컴이라는 남자가 과거 자신의 가족에게 저지른 악행 등에 대한 해명이 담겨 있다. 엘리자베스는 이 긴 편지를 읽으며 자신의 편견에 큰 당혹감을 느낀다. 위컴을 친절하다고 믿고 다아시를 나쁜 사람이라 여겼던 것이 사실 얼마나 빗나간 판단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녀는 "모든 것이 나의 오만과 편견 때문이었어"라고 자책한다.

다아시의 첫 청혼은 두 사람 모두에게 사회적 위험을 감수한 고프먼의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다아시는 '편지'라는 매개체로 꼬인 사건을 해결한다. 이 편지에는 고프먼이 말한 모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자질이 들어있다. 용기, 불굴의 투지, 성실성, 정정당당함, 침착성이다. 특히 고프먼은 침착성에 관해 고평가하는데, '글쓰기'가 담긴 편지는 침착성을 필요로 하고 또 침착성을 만들어주는 활동이다.


다아시는 모험적인 행동을 통해 거절당함으로써 체면에 큰 손상을 입었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이 들통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이 위험하고 불쾌했던 충돌이 오히려 서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진실이 드러나고 오해가 풀리면서 그동안 가면 너머에 숨겨졌던 실제 성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다아시의 편지를 받고 난 뒤 엘리자베스는 "내가 틀렸구나" 하고 내면의 편견을 깨뜨린다. 동시에 다아시도 청혼이 거절당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된 처신과 태도를 뼈아프게 자각한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도 교만하고 무례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두 사람은 한바탕 폭풍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게 된다.

이는 "체면 회복과 상호 조정"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당혹감과 체면 손실을 겪은 후에야 인간은 다시 새로운 균형선을 찾고 그것을 유지한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모두 자신들의 오만과 편견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성숙해져간다.


(6)스캔들과 공공질서의 회복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진정한 위기는 따로 있었으니, 바로 엘리자베스의 막내 여동생 리디아가 벌인 스캔들이다. 리디아는 철없이도 멋모르고 군인 위컴과 함께 가출해버린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둘이 야반도주한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베넷 가족은 패닉에 빠진다. 당시 규범으로는 여자가 혼전 동거를 하다니, 가문의 명예와 체면이 땅에 떨어질 일이다. 베넷 부인은 기절초풍하고 아버지 베넷 씨는 딸을 찾아 당장 런던으로 떠난다. 공공질서 차원에서도 이런 스캔들은 커뮤니티 전체의 수군거림과 비난을 불러일으킬 큰 사건이었다.

리디아의 탈주는 그 사회의 상호작용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위험 행동이었다. 고프먼 식으로 보자면 이 행동은 공공질서의 위반일까 아니면 모험적 행동일까. 아마 둘 다에 해당할 것 같지만 '일상성'이 있는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모험적 행동에 가깝다. 고프먼의 공공질서 개념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된 규칙이며, 그 규칙을 못 지키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면 야반도주 같은 행동은 일종의 사회적 도박이다. 리디아는 어려서부터 제멋대로였고 스릴을 좇는 성향이 있었는데, 이는 고프먼이 말한 (모험적) "행동"에서 젊은 혈기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다.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충분히 모르거나 알더라도 일단 운명적인 로맨스를 좇고 본 것이다. 그러나 대가는 냉혹했다. 베넷 가문의 체면 추락과 사회적 소외 위기가 닥쳤다.

다행히도 이 위험한 상황을 수습한 것은 다아시였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그녀의 가족이 파멸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다아시는 몰래 뛰어다니며 위컴을 찾아내 그에게 막대한 빚을 청산해주고 리디아와의 결혼을 강제했다. 겉으로는 엘리자베스의 삼촌이 나서서 해결한 것처럼 꾸몄지만, 실은 다아시가 모든 비용과 교섭을 떠맡았다. 은밀한 체면 살리기 공작을 펼친 셈이다.


고프먼에 따르면 사람이 체면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 주변의 도덕적 인간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그 체면을 회복시켜주기 위해 뛰어든다. 다아시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다. 평소 오만해 보였던 그가 정작 사랑하는 이를 위해선 뒤에서 묵묵히 공을 들여 체면과 질서를 복구했다. 결국 리디아는 위컴과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명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형식적이나마 결혼을 했다는 사실 덕분에 베넷 가문의 사회적 존립은 간신히 지켜진다. 마을 사람들도 "결국 결혼을 시켰으니 다행"이라며 더 이상의 뒷말은 삼킨다. 완전히 잃어버릴 뻔했던 체면과 공공질서가 회복된 순간이다.

리디아 커플이 나타났을 때 엘리자베스는 기쁨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리디아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결혼반지를 자랑하며 떠들어 대지만, 엘리자베스는 속으로 "이 아이는 부끄러움이라는 걸 모르나" 한탄한다. 고프먼 이론으로 보면 리디아는 사회적 체면 감각이 거의 없는 인물이다. 망신스러운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는 어떤 면에서 "상호작용 질서를 유지할 도덕적 노력"이 결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아시는 이런 리디아까지도 책임지며 자신의 품격(처신)을 한 단계 높였다. 이후 그는 자신이 이 일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지만(진정한 신사는 생색내지 않는 법이니까), 엘리자베스는 곧 다아시가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다아시를 향한 존경과 사랑이 깊어지는 건 당연했다.



해피엔딩과 사회적 균형의 회복


모든 위기가 지나고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다. 빙리는 다시 마을로 돌아와 제인에게 정식으로 청혼하고, 두 사람은 행복한 약혼을 한다. 베넷 부인은 기쁨에 겨워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한편 다아시도 용기를 내어 엘리자베스에게 두 번째 청혼을 한다. 이번에는 첫 번째와 달리 진심 어린 겸손함과 애정을 담아 프로포즈한다. 엘리자베스 역시 환한 얼굴로 승낙한다. 드디어 주인공 커플이 맺어지는 순간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장면에서 둘은 서로의 가식이나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편견 없는 눈으로 다아시의 품성을 존중하게 되었고, 다아시는 오만을 버리고 엘리자베스를 평등한 파트너로 대한다. 둘 다 사회적 체면과 허영을 내려놓고 진솔한 자아로 만났다. 두 사람은 상호작용 의례의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로 마주해도 안전한 사이가 되었다. 상대방이 내 체면을 깨트리지 않을 거란 신뢰가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처럼 계산된 행동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캐서린 부인과의 충돌 장면에서는 당혹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재확인할 수 있다. 다아시의 이모 캐서린 부인은 조카가 엘리자베스와 결혼한다는 풍문을 듣고 노발대발하며 직접 엘리자베스를 찾아와 모욕을 퍼붓는다. "감히 네가 우리 집안에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약속해!"라고 윽박지르지만, 엘리자베스는 차분히 "그 어떤 약속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받아친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신분 차를 뛰어넘은 대담한 대응이었다. 이 충돌은 일종의 의례적인 최종 결투처럼 보인다.

캐서린 부인은 본인의 체면을 세우려 했지만 도리어 망신(당혹감)을 당해 분노하며 떠나고,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존엄(face)을 잃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다. 이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순리대로 흐르는 것 같으나 오히려 사회적 계급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는 역설이다. 이 충돌 순간 캐서린 부인은 자신의 일상적인 역할을 버릴 수 없기에 엘리자베스를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화를 내며 떠난다. 엘리자베스는 결국 결혼을 하기에 이 둘의 관계는 결국 적정 선에서 타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마 결혼 후에도 마주칠 일이 있을 텐데, 감정의 앙금은 완벽하게 아물기는 힘들 것이다. 흔적이 남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당혹감은 깨진 질서의 흔적을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 다른 체계의 조직 원리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방지한다. 또 이를 복원하는 일련의 의례를 촉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구조를 보호한다.


어찌되었건 결국 모든 오해와 갈등은 해소되고 두 커플—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제인과 빙리—가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처음엔 체면과 오만으로 가득했던 다아시는 이제 따뜻한 남편으로 변모했고, 엘리자베스도 상대를 올바르게 알아보는 현명한 아내로 성장했다. 주변 사람들도 제자리를 찾았다. 콜린스와 샬럿은 현실적인 가정을 꾸렸고, 리디아와 위컴은 비록 철없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게 두었다. 모두가 각자의 사회적 얼굴을 새롭게 정의받은 셈이다.



나가며


고프먼의 여섯 가지 개념이 어떻게 녹아있었는지 정리해보자. 체면은 인물들의 자존심과 평판으로서 이야기 전체를 관통했다. 존대와 처신은 당대 예법과 인물들의 매너 차이를 통해 드러났다. 당혹감은 무도회장에서의 숱한 실수와 창피한 순간들—예를 들면 콜린스의 망신—속에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소외는 의도적으로 거리조절을 설계한 샬럿이나 다아시처럼 혼자 벽을 치던 사람이 변화하며 극복하는 모습에서 보였다. 공공질서는 배경 전반에 깔린 엄격한 사회 규범과 이를 지키기 위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으로 표현되었다. 마지막으로 '행동'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격렬한 충돌, 리디아의 일탈 사건처럼 극적인 순간들로 나타났고, 이를 통해 오히려 인물들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오만과 편견』은 로맨스 소설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의 지도라 할 만하다. 일상의 작은 예절부터 인생을 바꿀 큰 선택까지, 이 모든 장면에 체면과 의례의 심리가 숨어 있었다. 사회생활은 모두가 함께 추는 춤이고 우리는 서로 발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스텝을 맞춰가고 있다. 때로는 박자가 어긋나서 당혹감의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우리는 금세 사과하고 수습하면서 다시 춤을 이어간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도 처음엔 엇갈린 스텝으로 서로 상처 입었지만, 결국 솔직함과 존중이라는 호흡을 찾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 대화와 만남 속에서 어떤 사회적 무용담이 벌어지고 있는지 떠올려볼 수 있다. 사회학과 문학의 만남은 우리에게 일상을 다시 보는 눈을 선사한다.